엄마와 십대 딸 사이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수지 쉘렌버거. 캐시 고울러 지음, 정미우 옮김 / 지상사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난 마마걸이다.  아니 마마걸이고 싶어한다. 지금까지 엄마와의 사이의 문제가 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남들 다 지난다는 사춘기도 힘들게 자식들 먹여살리는 부모 앞에선 보일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나의 사춘기는 어른이 되어 지나가 버렸다. 그래서 딸과의 마찰에 대한 부분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전히 예순이 넘어 일흔이 되어 가는 엄마에게 난 전화를 걸고 친구에게 이야기 하듯 이야기를 한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아니라 엄마가 잘했구나, 내가 사춘기라는 것을 그냥 지나친 것이 아니라, 엄마가 나를 도왔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 엄마는 한번도 내게 NO를 외치신 적이 없으신 것 같다. 항상 나의 말의 귀 기울여 주시고, 토닥여주시고 함께 기도해 주셨다.  난 모든 선택이 엄마가 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모든 선택은 엄마를 통한 나의 선택이었다.

 

사랑하는 딸아이가 십대가 되었다.  여전히 태어나서 아장아장 걷던 모습이 떠오르는데, 딸아이가 어느날 남자 친구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TV드라마를 보면서 뽀뽀를 해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는 충격이었다.  내 아이가 이렇게 컸구나.  내가 느끼고  있던 내 딸아이가 내 감성보다 훨씬 커 있었다.  책을 통해서 어떻게 대처를 해야하는 줄 알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한테서 나간 말은 "왜?"라는 말이었다.  왜 뽀뽀를 하고 싶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지..  내 머릿속으로 하려고 생각했던 말은 입으로 튀어나온 그런 말이 아니었는데, 그런 말이 나오고 말았다.  이렇게 아이와의 관계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부모, 특히 엄마를 위하 책 <엄마와 십대 딸 사이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딸아이의 입장과 엄마의 입장을 참 잘 정리해놓은 책을 만났다.  아이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아이가 아주 어린 아이이거나, 아니면 나와 대등한 30대의 여인으로 착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다 이해를 했으리리, 아님은 그걸 아직 알 나이가 아니지 하고 치부해 버린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지은이 수지 쉘렌버거와 캐시 고울러는 자신들의 이야기와 함께 [포커스 온 더 페밀리 브리오]를 통해 전해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지금의 10대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데, 두명의 저자는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엄마한테 이야기를 하길 원한다고. 그런데 그것이 어려워서 전혀 알지 못하는 자신들에게 이야기를 한다고.  심지어 아이들 중에는 스포츠 브라가 무엇인지, 탐폰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서도 묻는다고 한다.

 

나는 나의 아이에게 어떤 엄마일까?  책에서 처럼 딸은 엄마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엄마와 딸은 '하나'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다는 말이다.  엄마 뱃속에서, 특히 엄마와 같은 성별의 딸아아는 엄마의 성품을 거의 그대로 물려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왜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을까?  딸이 엄마에게 원하는것, 필요로 하는것과 함께 엄마에게는 말하지 않는 자신들의 삶과 궁금증을 이 책은 이야기해주고 있다.  외로워서 아이를 낳고 싶다는 아이의 글을 읽으면서, 남자친구와의 밤늦은 데이트를 인정하는 부모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무섭고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아이를 저렇게 둘 수 있을까?  그런데, 나는 괜찮은가?  아이의 말을 들어준다고 하면서, 엄마는 너무나 바쁘다. 정말 그렇다. 빨래를 하고 옷을 널고, 청소와 음식을 만들면서 아이가 하는 말을 듣고 있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니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세탁실에서 빨래를 할떄 우리 아이는 옆에서 조잘거린다.  나는 아이의 목소리만 듣고 대답을 한다.  아이에 이야기를 다 들었다고 자부했는데, 책에선 아니란다.  그래서 아이들이 외롭단다.  


세상이 점점 더 험학해 지고 무서워 지고 있다.  딸을, 너무나 사랑스럽고 예쁜 딸을 지킬 수 있는건 엄마 밖에는 없다.  딸에 모든것을 알 수 있는, 알고 있는, 엄마 밖에는 없다.  15가지로 분류를 하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이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반성한다.  그리고 아이의 잘하는 점을 독려해 줘야지,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아이를 안아줘야지 하는 생각을하게된다.  기독교 가정의 아이들이 많이 상처받고 외로워한다는 내용을 보면서, 내 아이들, 그리고 내 아이의 친구들을 보듬어 줘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아이들이 바로서야 미래가 바로설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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