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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평점 :
사는게 왜 이리도 힘이드는지, 책을 읽으면서 행복하고 싶었다. 책속에서는 행복만 가득하길 바라면서 책을 읽으려 했다. 그런데 왜 조정래 선생의 책을 집었들었는지 모르겠다. 읽기 전부터 이책이 어떤 책인지 알면서도 책을 잡았다. 이렇게 가슴이 아플것을 책을 읽기 전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읽고는, 이 짓누르는 무게를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내 삶도, 복천 영감의 삶도 왜 이리 힘이 들고 무거운지 모르겠다. 알면서도, 한줄기 희망이 있었다. 책장을 넘기기 몇 페이지 전에 내 눈에는 희망이 보였다. 그래, 이젠 이 영감님도 잘 살아야지. 소설인데. 소설 속에서라도 잘 살아야지 하고 희망을 했건만, <1973년 발표, 2011년 7월 전면 개작>이라는 <끝>을 대신하는 글귀 위에는 삶의 고단함만 남아있었다.

워디 죄럴 짓고 잡아 짓간디. 다 자석 새끼덜 먹여살릴랑께 죄도 짓고 못된 짓도 허는 것이제. 이 시상 부모넌 다 자석덜 땀세 뻔히 암스롱도 죄인이 되는 것잉께. 그 자석덜이 몸 성히 크고 잘되는 것으로 부모 죄가 씻어지는 것인디. 자석덜 위해 한평상 고상허고 애쓰다가 죽는 것이 부모가 헐도리고 보람이니께 요까짓 일임사 죄가 되면 을매나 될라고. p.179
칼갈이는 하는 복천영감은 서울 냄새를 싫어한다. 진저리치게 싫어한다. 서울로 올라오면 무언가 될 줄 알았다. 아무리 그가 어린시절 박진사 집 첩과 눈이 맞았어도, 남들 다하기에 인민군을 따라다니고 감옥에서 5년을 살았어도, 발이 썪어들어가는 아내를 위해서 몇마지기의 논을 다 없애고, 아내가 죽은 후 남의 집 소를 팔아서 도망을 쳤어도, 서울로 올라오면 열심히 일해서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빚도 갚고, 팔아버린 소값도 치르고 사람답게 살 수 있을것 같았다. 하지만, 서울살이는 쉬운게 아니었다. 지게꾼도, 땅콩장수도, 눈감으로 코 베가는 서울은 사람 살곳이 아니었다. 그래도, 복천 영감은 살아야 했다. 금쪽같은 자식들 때문에 살아야 했다. 과외 한번 안해도 공부잘하는 아들놈과, 아버지 생각에 가슴 저미면서 일을 하는 딸내미때문에 살아야 했다.
생각할수록 서럽고 원통한 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사람은 죄진 일이 없이 어쩌면 그리도 가혹한 벌을 받는지 모를 일이었다. 가난한 것은 죄가 아닌데도 가난한 사람은 그리도 모진 설움과 학대를 벌로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옛날 자신이 그러했고, 지금 그 아가씨가 또 당하고 있었다. p.247
열심히만 살면 살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배운것 없고, 빽없는 사람은 어디에도 발 붙일 곳이 없는 곳이 서울이었다. 그곳에서 칼갈이를 시작하고 처음 만난 아가씨에게서는 고향냄새가 났었다. 그 아가씨가 5년만에 영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복천 영감만 가슴 아프고 찢어지는 줄 알았더니, 아가씨의 이야기는 그 못지 않게 서럽고 원통하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는데, 가난한 사람은 죄진 일도 없이 왜 이리 가혹한 벌을 받는지. 그도, 아가씨도 모른다. 왜 이런 설움과 학대를 받고 있는지 말이다. 죄를 져서 기름 가마솥에 처박힐것이 무서워 높은 담을 쌓고, 그것도 모자라 뾰족한 가시를 덩쿨째 치고 사는 사람들은 저리도 잘 사는데, 진저리나는 서울 냄새를 풍기면서 저리도 잘사는데, 왜 이 가난을 뭉게고 있는 그는 이리도 힘이들까.
조정래 선생이 이야기를 한다. 40년의 시공이 무색할 만큼 변한 것이 없는 서민들의 삶과 애환의 기록이라고 말이다. 아이들 밥그릇 싸움으로 정신이 없던 오늘, 이 변함 없는 삶의 애환이 가슴을 누른다.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고대합니다."라고 선생이 이야기를 한다. 그런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복천영감과 같은 삶이, 식모살이를 했던 아가씨와 같은 삶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무작정 상경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복천 영감. 가슴이 먹먹함은 복천 영감 때문이 아니었다. 남겨진 오누이를 어찌 할까? 이 아이들 생각에 소설임을 알면서도, 지금은 이렇게 힘들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너지듯 가슴이 아팠다. 이 녀석들을 어이할까. 이 심성 고운 녀석들을... 조금만 살펴주고 조금만 힘을주면 일어설 수 있는 이 아이들을... 다 체념한 복천영감의 말이 심장을 무너지게 만든다.
비렁뱅이 짓거리 허는 사람만 비렁뱅이제 그 자석덜언 비렁뱅이가 아닌법잉께. 비렁뱅이 되라고 비렁뱅이 짓거리 혀서 먹여살리는 것이 아니랑께. 이 애비는 무신 짓얼 혀서라도 느그덜 밥 안 굶기고 살릴 팅게. ... 허기넌 사람 사는 한평생이 이러나저러나 빙신응 빙신인디. 그려도 배부른 빙신이 낫고 권세 있는 빙신이 난 법잉께. P.282~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