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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관계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끝내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는 건 언어가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깨달음이 더 크고 명징했다. 물론 우린 둘 다 영어로 말한다. 하지만 단순히 미국영어와 영국 영어의 뉘앙스 차이 정도가 아니었다. 더 깊고 불안한 무엇인가가 우리 사이에 개입돼 있었다. - P.127

낯익은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근간에 읽은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를 다시 보는 느낌이 드는 그런 책을 만났다. 아니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의 책이 밝은 세상에서 나오는 그 순간부터 말이다. 밝은세상 책들을 좋아한다. 일주일에 몇번은 밝은세상 홈피에 들어가서 어떤 책이 나오나를 둘러보았기 때문에, <빅 픽처> 다음 작품으로 나오는 작품을 벌써 부터 알고 있었는데도, 책을 받는 순간 <빅 픽처>가 다시금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너무나 강렬한 이야기, 매력적인 이야기를 풀어낸 작가가 더글라스 케네디이니 말이다. 이번에 어떤 이야기로 나를 홀릴지, 홀림을 당할 준비는 다 됐다.
<은밀하게 변심한 남편은 낯선 남자보다 더 위험하다!> 이번엔 부부간의 이야기를 하나보다. 그렇게 읽기 시작했다. 자꾸 돌아보게 된다. 이 책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이 맞아? <빅 픽처>를 쓴 작가가 쓴 작품이란 말이야? <빅 픽처>에서 느껴졌던 흡입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완전히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주인공 샐리때문에 어찌나 짜증이 나는지 모른다. 그런데, 왜 내가 샐리때문에 이러고 있지? 중간부분까지 읽으면서 내가 샐리화 되어있는지, 토니화 되어있는지 모르는 이상한 일이 생겨버렸다. 이거 뭐야? 완벽하게 샐리의 입장으로만 말을 하고 있잖아? 오호... 대단하네. 대단하다는 것은 익히 알았지만, 더글라스 케네디의 필력에 혀를 내두룰 수 밖에 없다.
보스턴 포스트지의 카이로 특파원, 샐리 굿차일드는 소말리아로 긴급 취재를 가는 길에 영국 신문인 크로니클지 기자 토니 홉스와 동행하게 된다. 이 매력적이고 저돌적인데다, 로맨틱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 샐리는 임신을 하게 되고, 모든것을 버리고 토니를 따라 영국으로 가게 된다. 서른 후반에 찾아온 임식. 아무도 없는 곳에서의 임신은 그녀를 어두운 숲으로 끌고가고, 더욱이 난산으로 낳은 아들, 잭을 낳는다. 잭은 출산 중 뇌손상을 입었을까봐 몹시 걱정하던 샐리는 전형적인 산후우울증에 빠지고, 급격한 감정 변화, 히스테리, 불면증에 계속적으로 시달리는 가운데 심신이 피폐해간다. 하지만 샐리의 입원기간 중에도 토니는 야근과 잦은 해외출장을 하고, 퇴원 후에는 집필 중인 소설에 매달려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전혀 육아를 돕지 않는다.
아이를 낳아본 엄마들은 안다. 아이를 낳는 것은 특별한 기쁨이긴 하지만, 그와 함께 포기해야하는 것도 많다는 것도 말이다. 그뿐인가? 기댈곳이 없는 곳에서의 출산과 육아는 심신을 힘들게 만든다. 밤에 잠을 잘수도, 그렇다고 낮에 잠을 편안하게 잘수도 없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기때문에, 아이의 배넷짓과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모습에 황홀해하면서 삶을 지탱해 나간다. 그런데, 샐리에게 토니는 임신을 하고, 영국에 온 후, 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은밀하게 변심한 남편은 낯선 남자보다 더 위험하다!>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중반부까지의 샐리의 감정변화는 읽는 이 조차도 미치게 만든다. 그녀를 이해하면서도 그 심각한 감정변화에 적응을 할수가 없다. 그래서 그랬을까? 왠지 토니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너무나 완벽하게 샐리의 입장에서만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반부를 넘어서 부터 이야기는 긴장을 놓칠수가 없게 만든다. 이제부터 더글라스 케네디의 이야기 속, 롤러코스터에 동승할 때가 된 것이다. 중분부를 넘어서 책장을 덮을 때까지, 어떤것도 할 수가 없었다. 책을 읽는 일 이외에는. 그만큼 흡입력이 크다. 그리고 통쾌하다. 완벽하게 샐리에 눈으로만 본 세상을 통해서, 읽는 이를 샐리로 만들어 버린다. 이래서 책을 읽는다. 이 짜릿한 마력을 끊을 수가 없어서 말이다. 여성작가보다도 여성의 심리를 잘 표현한<위험한 관계>는 책을 덮자마자, 그의 차기작, <모멘트>를 궁금하게 만드는 그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