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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 2010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 수상작
에릭 파이 지음, 백선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매년 아이와 함께 보는 공연중에 김성녀님의 모노드라마가있다. 1인 50인역을 하는 김성녀님에게도 반하지만, 이야기의 내용이 가슴을 적셔와서 몇해전부터 빠지지않고 보려고 노력하는 극이다. 이 모노드라마를 10년 계약을 하셨다고 했기에, 아마 그 시간동안 아이들과 함께 극을 볼것이다. 그 극의 이름이 <벽속의 요정>이다. 1950년대 말 일본을 배경으로 늦은밤 아이는 벽속에서 사람의 말소리를 듣고, 벽속에 있는 사람을 요정이라 여기면서 자란다. 좌우익의 이념대립속 반정부 인사로 몰리던 아버지가 벽속에서 50년을 숨어 지내면서 아이에 수호천사가 되어 주는 내용이다. 원작은 일본인이 아니었는데, 극은 일본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 것이라 다분히 동양적이었다.

<나가사키>의 소개글을 읽으면서 <벽속의 요정>을 떠올린것은 아마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럽원작을 일본인이 다시 만든 작품과, 일본 이야기를 유럽인의 눈을 통해서 들여다본 반대의 이야기. 거기에 남에게 들키지 않기위해서 숨어있는 자들의 모습의 조마조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가사키>는 여러 신문에 보도되었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쓴 소설로, 남의 집에 몰래 숨어 살던 한 일본 여성의 실화를 담고 있는데, 2010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 수상작이다. 루이터 통신 기자로 일본에 머물렀던 에릭파이가 “한 오십대 독신 남성이 부엌에서 음식물이 없어지고 있음을 알고 놀랐다”는 2008년 어느 신문 기사의 첫머리가 이 글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굉장히 얇다. 30분 정도면 책한권을 다 읽을수 있을 정도로 책의 두께가 얇다. 그속에 들어가 있는 내용도 단순하다. 56세 독신남 시무라와 이름을 알수 없는 58세의 여인. 이 두사람이 자신의 관점으로 쓴 글이 나오고 그녀가 왜 그럴수 밖에 없었는가가 나온다.
시무라 고보. 56세의 독신남. 결혼한 여동생이 있으며, 서로 왕래가 거의 없다. 나가사키시의 기상청에서 위성사진을 보면서 어선들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태풍 발생 여부를 체크하는 일을 하는 기상관측사. 매일 8시에 출근하여 6시 반쯤 퇴근하여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독신으로 살면서 일종의 규칙들을 만들어놓은 셈이다. 회사에서는 혼자 점심을 먹고, 퇴근 후에는 동료들과 술자리를 하지 않는 편으로 사교적인 성격이 못 된다. 자신의 집에서 음식이 사라지는 등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자 아침에 먹고 남은 과일 주스의 높이를 적어놓는 등 꽤 꼼꼼하고 치밀한 스타일이다.
벽장속의 여인. 58세의 여성. 16세에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서 자랐다. 일자리를 잃고 (나이 때문에) 취업이 어렵자 이웃들 보기가 부끄러워 살던 지역을 벗어나 노숙 생활을 시작한다.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한 가을, 우연히 잠겨 있지 않은 시무라의 집에 들어가게 되고, 벽장에 숨어 살면서 자신처럼 외로운 처지의 시무라를 연민한다. 후반부의 편지에서 시무라의 집이 본인이 8살부터 16살까지 행복하게 살았던 집이었음을 밝힌다.
내용은 단순하다. 조금씩 음식이 사라지고,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집주인 시무라 고보는 집안에 캠을 설치한다. 그리고 그녀를 발견한다. 볕 좋은 어느날 자신이 출근하고 난 후 나타나는 그녀. 밥솥으로 밥을하고 커피물을 올려놓는 그녀는 58세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는 너무나 행복한 표정과 움직임으로 집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가 1년 가까이 이 집에 자신과 함께 동거함을 알아버린다. 이 두 사람의 일상은 삭막하다. 원자폭탄의 폐허를 딛고 살아난 잿빛 도시. 나가사키. 작가는 몇차례나 나가사키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눈에 띄지 않는' 두 존재가 나가사키라는 도시에서 살아간다. 폭탄에 잿더미가 되었던 나가사키에서 말이다. 굉장히 단순하지만 이 작품이 지금 눈길을 끄는것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문제로 일본 열도가 들끓고 있는 가운데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폐허의 도시는 다시 살아났으니 말이다. 일본이란 나라의 기묘한 이야기. 거대한 나라가 아님에도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는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그 곳. 일본. 1945년 8월 9일 원폭이 터졌던 그곳에 그들에 기묘한 동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