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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하다 죽으리
이수광 지음 / 창해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問汝何所恩 所恩北海湄 (문여하소은 소은북해미)
묻노니 그대는 무엇을 그리워하는가 나는 북쪽 바닷가 미인을 그리워한다네
애절한 사랑이 끊임없이 나온다. 북쪽 바닷가 미인을 그리워하는 누군가의 노래가 책한권을 채우고 있다. 애닿고 애닿게 그리워하는 미인은 누구이며, 미인을 그리워하는 님은 또 누구이길래 이리도 애절하게 그리워하고 있을까? 거기에 이 책의 제목이 『그리워하다 죽으리 』다. 지금 시대라면 비소가 딱 어울리는 제목일 듯 한데, 책 한권을 통틀어 그리워하고 있는 이가 조선시대 사람이고, 님을 향한 사랑에 이야기가 가슴을 절절하게 울리게 만든다.

김려는 1797년(정조 21년) 강이천의 옥사에 말려들어 재판도 받지 않고 함경도 부령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귀양길에서 겪은 혹독한 고초와 부령에서 만난 연희와의 사랑 이야기는 각각 『감담일기』와『사유악부』에 남아 있다. 『사유악부』는 총 290여편의 한시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김려가 32세때 함경도 부령에서 유배살이를 할때 배수첩으로 있던 기생 연희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읊은 시이다. 그의 시속 연인인 연희가 소설 『그리워하다 죽으리 』에서 연화로 다시 태어났다. 배수첩이란 유배객의 시중을 드는 여인을 말하는데, 연화는 금기서화에 능하고 문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절세미인이었으며 ,더욱이 조선시대 북부지방의 기생들과 같이 무예도 능했다. 이조참의 이광표의 소실로 한양에 왔다가 파혼 당한 연화는 시인 김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파혼 당한 관기 신분인 연화는 고향인 함경도 부령으로 돌아가야 하고, 김려는 경남 진해로 유배를 떠나게 되어 두 사람 사이에는 3천리의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함경도에서 경상남도까지 편지가 닿는 데에 300일. 그럼에도 그들은 평생을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오랜 세월 동안의 유배가 해제된 뒤 김려는 연화를 찾아 부령으로 무작정 길을 떠난다. 부령으로 가는 길, 한때 유배길이었던 그 길을 되짚어 가며 김려는 일생을 바쳐 사랑한 여인, 연화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으로 고통스럽다. 한편 부령의 연화는 평생 김려를 기다리며 수절을 하다가 곤욕을 치르고 죽음의 문턱 앞에 와 있다.
흔히알고 있는, 선비들의 님은 왕이거나 나라다. 충의를 기본으로 하는 유교중심의 나라에서 님은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김려라는 시인은 나라가 아닌, 자신이 사랑하는 기생에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선비가 기생의 언행록을 지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녀로 인해서, 그 사랑의 힘으로 『사유악부』를 남겼다니 그들의 사랑이 어떠했을까? 소설은 소설이기에 앞부분을 추가하여, 이 둘을 첫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버렸다. 그래서 그 둘의 사랑을 더욱 더 애절하게 만들어 버렸다. 유배로 인한 함경도 부령과 경상도 진해, 3천리란다. 그길을 나는 알지 못한다. 얼마나 먼길인지 알지 못하나, 그들이 쓴 편지가 님에게 가는 시간이 300일이라니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오랜 기다림. 깊은 그리움. 유배가 풀리고 아들은 아버지가 벼슬길에 나가길 원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사랑을 찾아 길을 떠난다. 유배객 시절에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아내도 죽은 초로의 선비가 님을 향해 길을 떠난다.
김려의 시에 의하면 백두산의 맑고 맑은 정기를 받고 2천 년 만에 태어난 여인이란다. 황폐해진 정신으로 삶의 의욕조차 잃고 있을때 "앵두가 붉어요, 내 입술이 더 붉어요?"하고 애교를 부리며 다가온 여인이었고, 그를 위하여 관기임에도 불구하고 수절을 한 여인이었다. 시인이 그녀를 위해 쓴 『사유악부』와 픽션의 결합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진실이고, 허구인지를 알수 없게 만들 정도로 이수광 작가의 글은 힘이있다. 인터넷책방에서 두달동안 연재되었다는 이 글의 누적 조회수가 1백만 회를 돌파했단다. 작가에 이야기처럼 김려와 지연화, 두 연인의 가슴 아픈 사랑만을 그리고자 한것은 적중한듯 하다. 가족은 안중에도 없고, 사랑만 바라본다고 욕할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리워하다 죽어가는 연화와 그녀를 찾아 떠나는 김려의 길로 인해 가슴 절절해 오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