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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부님, 쫄리 신부님 - 수단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 이야기 ㅣ 스코프 누구누구 시리즈 5
이채윤 지음 / 스코프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2010년 2월, 아프리카 수단 남쪽의 작은 마을 톤즈. 남 수단의 자랑인 톤즈 브라스 밴드가 마을을 행진했다. 선두에선 소년들은 한 남자의 사진을 들고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 한 남자… 마을 사람들은 톤즈의 아버지였던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딩카족이다. 남과 북으로 나뉜 수단의 오랜 내전 속에서 그들의 삶은 분노와 증오 그리고 가난과 질병으로 얼룩졌다. 목숨을 걸고 가족과 소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딩카족. 강인함과 용맹함의 상징인 종족 딩카족에게 눈물은 가장 큰 수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들이 울고 말았다. 모든 것이 메마른 땅 톤즈에서 눈물의 배웅을 받으며 이 세상 마지막 길을 떠난 사람, 마흔 여덟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故 이태석 신부다. 톤즈의 아버지이자, 의사였고, 선생님, 지휘자, 건축가였던 쫄리 신부님, 이태석…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온몸 다해 그들을 사랑했던 헌신적인 그의 삶이 스크린에서 펼쳐졌다.

이태석 신부님이 어떤 분이신지 몰랐다. TV로도 반영이 되었다고 하는데, TV가 없는 관계로 드라마나, 영화를 즐기지 않는 이유도 있었지만, 책을 읽고 있으니, <울지마 톤즈>를 본 사람들이 꽤나 되는지, 한마디씩 던진다. 이런 분이 돌아가셔서 가슴 아프다고 말이다. 책을 다 읽고 난후에, 쫄리 신부님. 이요셉 신부님이 궁금했다. 그래서 찾아서 보고는 아이들과 함께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눈물 바람을 일으켰다. 영화도 영화이지만, 신부님이 쓰신 책<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도 궁금하다. 내게는 말이다. 하지만, 우선은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혀봐야겠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쉽게 이태석 신부님을 알수 있게 해준다.

(사진 출처 - 영화, 울지마 톤즈 홈피)
불쌍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부산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의 형제는 10남매다. 홀어머니가 아이들을 삯바느질로 키우셨음에도 아이들은 싸움한번 하지않고 씩씩하게 자랐다. 그리고 공부도 잘했다. 학교에서 주는 상은 거의 다 받아왔으니 말이다. 작은 부산아이가 커서 의대를 들어갔다. 군의관으로 제대하고 아이는 신부가 되기로 작정했다. 형과, 누나과 벌써 신부님과 수녀님이 되셔서, 어머니의 반대가 있으셨지만, 주님이 주신 소명을 버릴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신부가 되어 남수단, 톤즈로 향했다. 수단은 한낮의 기온이 50도나 되는 곳이다. 거기에 소말리아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가자 가난한 나라이다. 그중 남수단은 북수단과 달리 더욱 열악하다. 내전으로 고통받고, 지하자원때문에 북수단의 억압으로 어깨한번 펼 수 없는 그런곳이 남수단이고, 남수단의 오지가 톤즈다. 그곳에 그가갔다.
수단의 슈바이처. 톤즈의 유일한 의사가 그였다. 이요셉신부님을 만나면 산다는 소문이 퍼졌고, 2-3일을 걸어서 신부님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이 하루 200~300명이 넘었다. 그는 그들을 버릴수 없었다. 그림을 그리고 병원을 짓기 시작했다. 남수단에는 병원을 지을 어떤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시멘트로 벽돌을 만들어, 병원을 지웠다. 그들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딩카어를 배웠다. 밤에 오는 환자들도 그냥두지 않았다. 그는 진심을 다했다. 그들의 병들고 가난한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는 그런 사람이 이요셉 신부, JOHNLEE 신부님. 쫄리 신부님이었다.
브라스밴드의 단장. 그에겐 재능이 있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독학으로 풍금을 배웠다. 풍금을 배우고 나니, 다른 악기들을 다룰 수 있었다. 기타를 연주하고 다른 악기들을 수월하게 연주했다. 중학교때 <묵상>이라는 곡을 만들었으니 그의 재능이 뛰어나다. 그는 음악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이 평안을 찾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음악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오랜 전쟁으로 폭력적인 아이들에게 말이다. 톤즈의 아이들에겐 음악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피리.기타, 오르간으로 시작한 음악반은 4년 뒤 10개의 악기로 구성된 35명 규머의 브라스 밴드로 성장했다. 음악은 총과 칼을 녹일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잘 웃는 수학 선생님. 병원을 짓기 시작하면서 쫄리신부님은 헤메고 다니는 아이들로 가슴이 아팠다. 아무것도 없는곳. 그곳에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평균 나이 열여덟. 그들의 눈은 반짝였다. 성당앞 망고 나무 그늘아래서 시작된'돈 보스코 초등학교'는 8년만에 중. 고등학교까지 갖춘 1천 5백여명을 가르치는 정규 학교가 되었다. 달빛으로 공부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전기가 들지 않는 톤즈에 태양열 자가 발전기의 용량을 키웠다. 30분만. 30분만 더를 외치는 아이들. 공부를 너무나 하고 싶어 하는 그 아이들을 위해서 발전기를 가동하고 교사를 구하기 힘들어서 신부님은 자신이 좋아했던 수학과 음악을 가르쳤다. 이렇게 톤즈의 아이들은 상처가 아물고 자신들의 미래를 꿈꾼다.
그리고 수크란바바(고맙습니다, 아버지) 그는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한센병 환자를 돌보고, 그들의 뭉그러지고 아픈 발이 가슴아파 한사람 한사람의 발을 그려 샌들을 만들어 주는 사람. 백신을 보관하기 위해 손수 태양열 자가 발전기를 설치하고, 아이들 을 위해 용량을 늘리는 사람. 전쟁터로 나가는 아이들을 위해 밤새워 기도하는 사람. 말기 암으로 마지막 생명을 불태우는 순간에도 톤즈 마을 사람들에게 더 해줄 것이 없는지를 살펴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톤즈사람들은 울었다. 떠나버린 아버지가 그리워 울었다.
이태석 신부. 톤즈 사람들이 쫀리 신부라 불리던 사람. 그가 떠난 톤즈의 병원은 오후 1시간 되면 문이 닫힌단다. 소명없이 어느 의사가 그 오지로 찾아 들겠는가. 그가 머물었던 그곳엔 아직도 그를 그리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2미터가 넘는 장신의 사람들이 그의 사진에 입을 맞추고 그를 그리워 한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그를 아버지라 칭한다. 그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았다고 말이다. 어떤이는 이야기한다. 그가 아닌 자신이 먼저 하나님께 가야만 했다고. 그는 할일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이다. 자식과 하나님을 이기지 못해 신부 서품을 받고, 아프리카로 가겠다는 아들을 떠나 보내 버린 여든이 넘은 노모는 여전히 그를 가슴에도 뭍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를 지금에야 알아버린 나는, 나와 내 자식만을 바라보고 살아옴을 너무나 주님일에 안일했음을 회개한다. 베품과 나눔의 향기를 전한 톤즈의 천사, 이태석 신부, 쫄리 신부님을 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