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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사화 ㅣ 조선 핏빛 4대 사화 3
한국인물사연구원 지음 / 타오름 / 2011년 2월
평점 :
조선 4대 사화중 세번째, 이야기. <기묘사화>를 만났다. 중종 10년에 일어난 또한번에 사림의 화. <기묘사화>, 피 냄새가 진동하는 갑자사화 다음에 만나서 그런지, 서정적인 기질이 있었던 문장파들이 구민 도학파 제거 음모에서도, 결과는 참혹했지만 방법에 있어서는 낭만적이었다. 작가의 말처럼 기묘사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화와 달리 조선 문학사의 배경에 대한 이해를 함께 해야 하며, 문장을 우선한 정치에서 정치를 학문으로 전환시키고자 하던 시점에서 빚어진 아픈 상처의 단면임에 틀림이 없다.
기묘사화는 1515년(중종10년)에 왕비를 책립할 당시 조신간의 대립과 알력, 조광조가 추구한 지치주의 정치를 위해 대량 등용된 신진 사류에 대한 불만, 도의론을 앞세워 사장파를 도외시한 사림파의 배타적인 태도에 대한 훈구파의 증어가 밑바닥에 깔린 반정공신 위훈 삭제 사건을 도화선으로 조광조를 위시한 개혁을 추진한 사림파의 몰락이었는데, 무오사화와 같이 훈구파와 신진사류간의 반목과 배격에서 일어난 것이지만 정치적 음모가 도사린 정쟁이었다는 점과 갑자사화와 같이 정치적 투쟁목적이나 이념이 없었다.
진성대군은 중종반란으로 임금이 된후, 부인 신씨를 폐비시키고, 정경왕후 윤씨와 대혼을 치루지만, 원자를 낳고 한달만에 정경왕후가 죽는다. 정경왕후의 죽음은 국모를 잃은 슬픔보다 어린 원자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큰 문제로 대두되어지는데, 이를 기회로 폐비신씨를 왕후로 추대하는 조광조를 주축으로 한 일파, 신씨의 복위를 반대하고 후궁 중의 하나를 중전으로 책봉케 하려는 남곤과 심정을 주축으로 한 수구세력, 그리고 윤지임의 딸을 중전으로 끌어올리려는 윤임과 김안로 일파로 나뉘게 된다. 이 와중에 중종은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지 않아서 그런지 끊임없이 갈팡질팡한다. 신진세력과 수구세력의 반목중에 나타나 입안에 혀처럼 굴던 김안로에게 혹할때는 모든것을 다 줄듯이 행동을 하고, 하루가 다르게 벼슬을 열어주고, 효혜공주와 김안로의 아들 김희는 국혼을 하기도 한다. 시간이 흘러 자신이 수구세력들에 손안에 놀아난다고 생각한 중종은 이번엔 바른말을 하는 조광조에게 빠져든다.
조광조는 밝은 왕도 정치를 이상으로 여기는 인물로, 중종에게 상소를 올리기 시작할 무렵 중종은 왕위에 오른지 10년, 보령이 서른이 되어 소신있는 임금노릇을 해보고 싶어했을때였다. 그러니 조광조가 눈에 들어왔을것이다. 불교, 선교등은 일체 사교라 보고 고려조 이후 정몽주와 문성공 안유가 제창한 유학만을 왕도로 생각하는 조광조와 훌륭한임금이 되어 자기 손으로 주나라와 같은 문명국을 만들어 보고 싶어하던 중종이 얼마나 잘 맞았겠는가? 그렇게 조광조는 임금의 총애를 받는다. 성규놘에 정몽주를 모시는 것과 소격서의 폐지로 중종은 일약 팔도에 그 이름을 크게 날리고 아울러 조광조도 선비들이 추앙하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너무 많이 그렇게 되어버렸다. 중종은 국정 전반에 관한 무슨 일이든지 조광조의 말만을 따르기 시작했다. 조광조는 어떻든 중종을 해동의 요임금이 되게 해 보리라고 다짐을 한 사람이었고, 중종은 태평성국을 원하지만 여전히 수구세력에 손위에서 나오지 못한 임금이었다. 아무리 임금이 신임을 한다고 해도, 이 임금의 마음이 돌아가버리면 그 또한 바람앞에 촛불일 뿐이다. 임금의 신임이 높아지자 조광조를 몰아내기 위한 남곤과 심정의 모의가 일기 시작한다.
주초위왕(走肖爲王). 趙씨 성을 가진이가 왕이 된다는 파자가 궁중의 나뭇잎에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온 나라의 인심이 모두 조광조에게 돌아갔다는데, 나뭇잎에 이런 문장이 쓰여진다는건 반역을 이야기한다. 조광조를 투옥시키자 성균관 유생 1천여 명은 광화문에 모여 조광조의 무죄를 호소한다. 중종입장에서는 그를 두둔하는 자가 많을수록 더 무서워지고, 능주로 귀양을 보년 조광조는 곧 사사되고, 그와 뜻을 함께하던 김정, 기준, 한충, 김식등 귀양갔다 사형당하거나 자결한다. 그밖에 김구, 박세희등 수십명이 귀양을 떠나고, 이들을 두둔한 이들은 파직되는데, 이렇게 기묘사화에서 희생된 조신들을 기묘명현이라 했다. 꿀로 나뭇잎에 글을쓰고 벌레가 파먹게 만든것을 반역의 징조라 여긴 중종. 어쩌면 알면서도 조광조에게 몰리는 민심이 무서웠을지도 모른다. 반정으로 왕이 된 인물이니 말이다. 조광조가 계속해서 중종의 신임을 받았다면, 더 많은 변화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 역시 만약에일뿐이다. 이렇게 역사는 다시 또 돌고 돈다. 해동의 요임금 밑의 신화를 꿈꾸던 조광조와 태평성국을 꿈꾸던 중종. 그들이 만약 지금 이시대에 만났다면 세상이 또 바꼈을까하는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