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많은 시작 민음사 모던 클래식 37
존 맥그리거 지음, 이수영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그냥 지나가 버릴 수도 있었다. 문이 조금 열려 있지 않을 수도 있었다. 엘리너가 새 커피 기계를 붙들고 씨름하다가 갑자기 기계가 쉬익 큰소리를

내서 데이비드의 주의를 끌지 않을 수도 있었다. 데이비드에게 남은 돈이 없을 수도, 문을 조금 더 열고 아직 주문받냐고 물어볼 용기가 없을 수도 있었다.

박물관 배치를 잘못 알아서 전시실도 다 못 보고 기차 시간에 맞춰 돌아가기 위해 서두르느라, 찻집에 들를 여유가 없을 수도 있었다.

이런 것들아, 하나씩 제대로 들어맞았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 P.92

 

민음사의 모던클래식 시리즈 37번 <너무나 많은 시작>

이 시리즈를 좋아한다.

요즘 유행하는 막장도, 판타지도 모던클래식에는 없다.

포악마저도 잔잔하게 그려지고, 그걸 읽는 사람들 맘조차도 평화롭게 만드는 요상한 힘을 가지고 있다.

<거리의 법칙>이 그랬고, <녹턴>이 그랬다.

읽기 쉬운 책들은 분명 아니다. 행간의 간격외에는 흐름을 놓쳐버리면 누구의 말인지 조차도 분간할수가 없다.

처음 모던시리즈를 접했을때는 주제 사라마구의 책이 생각났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읽기가 수월하다.

물음표도 행간도 있으니 말이다.

 

데이비드의 꿈은 박물관에서 일하는 거였다.  아주 어린시절부터.

그리고 그는 큐레이터가 된다. 그의 삶은 흔히들 이야기하는 보통의 삶이었다. 자연스럽게 인연을 만나고, 그녀와 결혼도 하게 된다.

직장동료와의 잠깐의 외도도 있고, 사랑스런 딸도 있다.

그런 그가 어느날 아무 예고없이 자신의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친모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데이비드는 자신의 인생을 보여 줄 수 있는 물품들을 하나둘 모으기 시작한다.

이 소설의 각 장 제목은 쉰다섯 살이 된 데이비드가 친모를 찾아가는 여행 전에 준비한 물건들의 목록이다.

사소한 물건들 안에 농축된 수많은 시작들. 데이비드는 이렇게 만들어진 (가상의) 개인 박물관 속으로 친모를 초대하고 싶어 한다.

 

첫장은 데이비드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를 낳은 열다섯살 소녀, 메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리고 넘어가자 마자 데이비드가 나온다.

그래서 연결을 짓지 못했다. 왜 이 소녀의 이야기가 나왔을까?

끊임없이, 메리의 이름과 그녀의 가족 이름을 기억하려 애쓴다. 혹시, 소설속 누군가와 데이비드가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하고 말이다.

흔들리는 일상속에서 데이비드는 과거를 찾기위해 사진, 편지, 물품등 자신과 관계된 기록물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나이가 들어간다.

 

어린아이였을때부터의 데이비드의 모습부터, 그가 한 아이의 아빠가 되고, 그의 딸이 숙녀가 되었을때,

그가 모으고 있는 모든 잡다하지만, 소중한 추억사이를 맥그리거는 데이비드 삶의 큐레이터가 되어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섬세한 일상의 모습들 속에서 나는 데이비드를 본다.

맥그리거와 함께 데이비드를 본다.

진실의 작은 일부분들이 하나둘씩 보여질때마다 이 속에서 또다른 진실을 찾으려 하는건 요즘 너무나 많이 나오는 얽히고 섥혀있는

드라마나 영화, 그리고 책들의 영향일것이다.

<너무나 많은 시작>에는 그런 내용은 없다.

하지만 책 표지의 수 많은 종류의 열쇠들처럼, 시작하기 위해 문을 열수 있는 방법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지금도 우리들 삶은 이길이 옳은지 저길이 옳은지 택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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