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법칙 민음사 모던 클래식 35
러셀 뱅크스 지음, 안명희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20세기 미국 최고의 소설은 단연코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내가 하는 말은 아니다. 학창시절부터 그렇게 외워왔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20세기 최고소설은 하면 <호밀밭의 파수꾼>이라고

나온다. 성장소설이 얼마나 아픈가를 보여주는 그런 책.

<호밀밭의 파수꾼>과 <허클베리핀>의 뒤를 잇는 급진적인 성장소설이 <거리의 법칙>이다.

<거리의 법칙>이라는 역본보다는 <Rule of te Bone>이 더 어울리는 책, <거리의 법칙>

 

홀든 콜필드 처럼 소설속 채피를 보는 작가의 시선은 다분히 방관자적이다.

열네 살 소년 채피.

이 아이가 예뻐보이지가 않는다. 아니 동정조차도 일지가 않았다. 처음엔 그랬다.

모호크 머리에 피어싱을 여기저기 하고 마리화나를 팔면서 폭주족들과 함께 하는 아이.

스물 스물 엄마가 가지고 있는 옛날 동전을 전당포에서 마리화나 살 돈으로 바꾸는 아이.

이 아이가 열네 살이란다.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 그럼에도 자꾸 이 갸날픈 아이에게 눈이 간다.

더 망가지지 말기를 바라게 된다.

그리고, 아이에 말을 듣게 된다.

 

대체로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 이유는 바로 엄마와 양아버지, 선생님을 비롯해

모든 어른들이 나를 힘으로 제압하면서 그것이 바로 나를 위한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수작이다. 빌어먹을.... p. 213

 

채피가 이야기 한다.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런데 채피에 말이 틀리지 않음에 가슴이 아프다.

이 작은 아이를 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만을 바라보는 엄마와 미친 양아버지때문에 분노한다.

 

집을 나와 러스와 어울리면서 자연스레 진짜 범죄를 배우는 채피. 뼈 모양 문신을 팔에 새긴 채피는 자신에게 '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으면 다시 태어난 기분을 느낀다. 본. <Rule of the Bone>

고치 속 웅크린 소년, 본은 그렇게 자라난다. 러스와 헤어지고 잘 곳을 찾아 전전하던 채피는 자메이카인 아이맨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행복을 느낀다. 잘 모르겠다. 아이맨을 보면서 본이 느끼는 자신을 바로 보는 법을.

그게 정답일까?

정답은 없다. 하지만, 누구 이 아이에게 정답을 알려주는 이가 있었던가?

자메이카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더 허황되고 알수 없는 이야기들.

환각과 현실이 뒤죽박죽이 되고, 자아를 찾기위해 애쓰는 본이, 아니 채피가 보이지만, 내눈에 채피는 알지 않아도

되는 너무나 많은 어두운세상을 너무나 빨리 알아버렸다.

<피플>은 본을 1990년대 뉴욕 주 북부를 배경으로 새로 쓴 <허클베리 핀>이라고 말한다.

어린시절 읽었던 허크 역시, 어쩌면 이 시대에 방치해뒀다면 본과 같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방관자의 눈으로 지켜보는 본이나,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이나 이 두 아이가 내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작가는 끝까지 본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본이 자메이카를 떠났다 할지라도, 그의 삶이 그리 녹녹하지는 않을것 같다.

10대는 아름답다고 한다. 그들의 세계는 너무나 광대하고 그들의 미래는 알수가 없기에 10대는 신비하다고도 한다.

그 아름다운 10대의 아이들.

본을 보고 러스를 보고, 홀든을 떠올리면서

내 가슴은 무겁다.

혹시, 내 주변에 있는 본을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아이라고 눈 감고 지나쳐버린건 아닌지 말이다.

아님, 내 아이들이 본이 될까봐 그것이 무서운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 가슴은 사랑으로 부풀어 오를 것이고 나는 더 강해지고 내 정신은 더 맑아질 것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다면 아이맨에게 의견을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거대하고 차디찬 우주의 정적을 가로지르는 그의 목소리를 들 을 수 있을 것이다. 본, 네게 달렸어.

이 대답이 바로 내가 원하는 전부이다.     -p. 476

 

사족 하나, 통으로 된 이 글이 이렇게 잘 읽히는걸 보면 러셀 뱅크스의 장력은 확실히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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