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
필립 그랭베르 지음, 홍은주 옮김 / 다른세상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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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절교, 다리가 세 개뿐인 스툴, 이 말들이 떠오르자 가슴이 벌렁거린다.

우리가 둘도 없는 친구였던 시간 동안 나는 만도에게 무엇이었나? 머릿속을 스치는 대답을 나는 애써 내친다.

하지만 애써 그 생각은 확신으로 바뀐다. 만도를 저렇게 만든 건 우리의 파국이다.  - p.152

 

두 소년이 등장한다. 둘은 어린시절 몽소 공원의 놀이터에서 처음 만난 후, 죽어서도 변치 않을 우정을 약속한다.

고요하고 평온하게 흘러가는 나날들, 만도와 두의 완변한 우정은 만도의 일기소에 스냅사진처럼 추억의 앨범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스페인 해안의 암벽에서 보냈던 여름, 페르사레즈 묘지에서의 산책, 영국으로 떠난 졸업 여행, 모든 추억에는 '함께'라는 단어가 붙었다.

 

너의 일기에는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 속에 그려진, 너무나 완벽한 우리의 우정,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포르말린 용액에 담긴 박제처럼.

 

우정. 그들의 우정사이로 언제 그림자가 비치는지 그걸 찾고 있었다.

제목이 [악연]이었으니 말이다. 왜 악연일까?

남자 아이들의 우정이 이렇게 끈적끈적하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무엇을까를 생각하면서 나는 그림자를 찾았다.

얼핏 스쳐 지나가는 그림자. 루가 말하는 서로가 함께 하지 않았던 시간들을 만도가 어떻게 일기에 쓰고 있는지 궁금했다.

내 일상이 아닌, 만도와 루의 일상을 스냅사진처럼 적은 만도의 일기.

 

어렵다.

옮긴이의 말처럼 필립 그랭베르는 '폭로'방식에 능란한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이 '폭로'가 내게 와닿는 것이 어렵다.

이 자그마한 책은 현란하지도, 숨 가쁜 전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옮긴이의 말처럼 담백하다.

너무 담백해서 언제나 좀 거칠게 이야기가 끌어나갈까 궁금하다.

결국은 자잘한 '징조들'을 구석구석 흘려 두긴 했지만, 그 징조들을 패치워크한 이불보를 들여다 보듯 보기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책을 덮고나서도 프시코폴트 교수의 말들이 귓전에서 자꾸 울리지만,

그 여운으로 이 책을 말하기가 힘이든다.

루가 알고 있던 만도. 만도가 알고 있던 루..

이들의 이야기는 이 두사람의 이야기였을까? 아님 혼자만의 이야기였을까?

정말 이들을 '악연'이라는 굴레로 엮어버리는 것이 가능한것일까?

아... 어렵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남으로 행복해지는 그런 인연들만 가능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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