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사용설명서 - 인간은 역사를 어떻게 이용하고 악용하는가
마거릿 맥밀런 지음, 권민 옮김 / 공존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간만에 공감이 가는 역사론 책을 만났다.  

역사서, 특히 한국사 책을 읽을 때마다 엄한 교훈에 좀 불편했다. 많은 역사서가 우리 과거의 사건과 그 속의 인물들(특히 근현대사 쪽)에 대하여 이렇게 했어야 했다고 질책하거나 잘했다고 칭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른바 포폄(褒貶)의 역사학이요, 도덕주의 사관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것이 역사를 탐구하는 제1의 실용적 목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역사의 교훈이 이것이라고 역사연구자가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좀 아니다 싶다. 역사 서술과 해석에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역사연구자가 무슨 교훈을 독자에게 명시해줄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역사 연구자는 역사를 만들어간 사람에 비하면 일개 서생, 책상물림 아닌가. 역사사건 속의 인물을 위인으로 숭배하거나 반대로 죄인으로 단죄하는 것은 도덕의 영역이지 역사학의 영역은 아니리라.

이 책을 읽고서 역시 역사 쓰기와 읽기는 겸손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를 사용하고 즐기되 언제나 신중하라는 저자의 조언을 나는 역사를 겸손히 돌아보라는 말로 해석하고 싶다. 

흔히 현실의 상대를 공격하거나 역사 인물을 폄훼하는데 역사를 사용한다. 악의 축! 파시스트! 공산주의자 혹은 빨갱이! 친일파!...등으로 낙인찍거나 폄훼하는 것이 그것이다. 저자는 부시가 9.11테러 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공격하는 것을 보고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하면서 세계 도처에서 벌어진 역사 오용, 아니 의도적인 역사 악용의 사례를 든다. 과거 한 때 자기 땅이었다는 사실(이것도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을 들어 이웃 나라와 벌인 영토 분쟁(유고 내전), 테러리스트를 옹호하는 나라니까 응징한다는 전쟁(부시의 이라크침략)... 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렀는가

영국의 작가 존 케리가 이렇게 말했다 한다. "역사의 가장 유용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 틀렸거나 불명예스러운 목표를 과거 세대들이 얼마나 열심히 정직하고 고통스럽게 추구했는지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것이다."(이 책 248쪽)   

저자는 우리나라에서의 역사 오용, 악용은 언급하지 않았지만(중국, 일본에 관해서는 비중있게 언급했다), 우리나라라고 예외겠는가. 겸손한 역사 쓰기와 읽기의 필요성을 이 책에서 깨닫는다면 좋으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