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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러지는 말들 - 사회언어학자가 펼쳐 보이는 낯선 한국어의 세계,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백승주 지음 / 타인의사유 / 2022년 4월
평점 :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미끄러지는 말들', 저자의 문체가 정말 미끄러지듯이 마지막 페이지를 향해 달려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한국어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저자가 생각하는 '말'이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다. 더불어 궁금했던 점은 한국어 교육에 대한 현실과 미래였다. 저자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에게 언어, 즉 말이라는 것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주 출신인 저자는 제 1의 언어이자 혀는, 제주 방언이다. 어떤 때는 표준말로 답을 할지, 제주말로 답을 할지 고민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마치 기분이 좀 고조되면 자신에게 익숙한 말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여성의 언어, 남성의 언어도 혀로 구분된다. 비규정적인 언어는 여성보다 남성에게 조금 더 관대하다.
한국어 교육을 하면서 경험한 이야기 중의 하나인, 기름을 가득 채우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최대한 정확한 한국어를 가르치려는 한국어 교사들의 노력을 안다. 하지만 언어는 실생활에서 가장 많이 늘게 된다고 하지 않는가. 저자가 '이빠이'를 모를까봐 학생이 가르쳐준다. 가득 넣는 것이 아니라 '이빠이' 채우는 것이라고. 언어, 한국어, 말에 대한 이야기가 서로 엉키면서 하나의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어떤 언어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지라는 생각말이다. 저자는 적어도 우리가 망가뜨리고 있는 한글로 인해 세종대왕이 무덤에서 통곡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저 그것은 의미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어 교육에 대한 부분도 뺴놓을 수 없다. 한국어 교육을 하면 아주 쉬운 일상생활의 문장들로 수업을 구성하게 된다. 하지만 그 문장들은 베트남 이주 여성에게 전혀 도움이 되는 문장들이 아니었다. 그녀의 공간은 시장과 집 밖에 없는데, 한국어 교재에서 가르치는 말들은 대학로, 신촌 등 그녀가 갈 수 없는 곳들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차별이었다.
한국어, 언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 주는 책이었다. 영어가 아닌 한국어는 우리의 말이니까 우리가 그냥 잘 사용하면 되지, 이런 생각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미끄러지듯이 여러 곳의 장소를 흘러들어가며 그곳의 현실을 살펴본 기분이 드는 책이었다. 우리가 쓰는 언어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