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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문법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소준철 지음 / 푸른숲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가난의 문법이라기에 가난에 대한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가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들의 가난에는 다 사연이 있었다. 그리고 가난은 그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 아니었으며 이 가난을 해결하거나 하지 못하는 사회 구조와 정책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기회를 주는 내용이었다. 이 책은 75세의 재활용을 줍는 여성이라는 가상 인물을 만들어 그들의 삶을 따라가면서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가상의 인물인 영자씨의 시간대별 하루 일과와 함께 저자의 그에 대한 사회 문제(또는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들을 수 있다. 영자씨의 이야기는 한 편의 소설과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녀의 삶은 소설이 아니다. 70세 이상의 재활용을 줍는 여럿의 여성에 대한 사연을 모아 그들이 특정되지 않도록 잘 섞은 이야기라고 한다. 누군가의 실제 사연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하지만 실제 이야기에 바탕이 있어 허구성 따위는 없는 그녀의 이야기이다.
영자씨의 하루는 시간의 정함없이 재활용을 줍는 것으로 시작해서 끝을 맺는다. 재활용을 줍는다는 것은 가난의 상징이 되어버렸지만 이 가난은 그녀가 만들어 낸 가난이 아니다. 영자씨가 태어나고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했고, 가정과 일을 병행하며 집안을 꾸려나갔다. 여러 명인 자식들도 다 장성해서 자신의 가정을 꾸렸지만 그들에게 문제가 생길 때마다 영자씨는 가진 돈을 모아 도왔고, 결국 평생 모은 돈으로 마련한 집조차 사라지게 된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최근에 TV에서 본 나이든 부모의 재산을 지킬 수 있는 제도가 떠오르기도 했고, 자식들이 노부모의 재산을 미리 물려받고 돌보지 않는다는 기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이런 사회 문제들이 개인의 몫이 아니라 사회가 제도적으로 뒷받침 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더 확고해 졌다.
영자씨는 사회보험제도가 확립되기 전에 이미 노년층으로 진입한 세대로, 딱히 제도적인 도움을 받는 것이 어려웠다. 자식이 일정 수준의 수입이 있으면 노부모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활용을 줍는다는 것은 영자씨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경쟁하는 일이라서 그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많은 무게를 감당하기에는 여성의 몸으로 쉽지 않았고, 행여 잠시나마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재활용을 모아둔 카트를 밖에라도 세워두면 누군가가 훔쳐가기도 한다고 한다. 이 책은 노년층에 대한 사회복지, 사회정책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재활용 수집을 할 수밖에 없는 도시 구조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다. 재활용 수집은 노인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전문적인 업체가 따로 있지만 차가 들어가기 쉽지 않은 주택가 골목길의 경우는 업체보다는 재활용 수집을 하는 노인들이 더 발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점차 잘 닦여진 사회보장제도로 앞으로의 노년층은 조금 더 나아진 생활을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현재 노년층에 대한 고민이 절실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에서 제공하는 사회복지로 삶이 이어지기는 하지만 생의 마지막 단계인 노년기의 모습이 풍요롭지는 않아도 가난이라는 단어로 명시되는 것이 아직 갈 길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복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책은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우리의 미래, 또는 우리 부모 세대의 미래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될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