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오버 2 - The Hangover Part II
영화
평점 :
현재상영


엉망진창인 세계에서 미국적인 가치를 내세우던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샤오린: 최후의 결전 - New Shaolin Temple
영화
평점 :
현재상영


 

  왠지 모르지만 유치해 보인다. 아니면 너무 진부한 주제의식이 담겨 있는 것도 같다. 개인이 아닌 조국과 집단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무래도 현대에선 받아들이기 힘들어졌다. 개인적인 것들을 희생한다 하더라도 국가 내의 특정 세력을 지원하고 있는, 그래서 사적 이익집단으로만 변한 정부를 생각한다면 왜 희생하느냐를 되물어 볼 상황이 현재의 한국의 모습이다. 한국을 위해 국가대표를 뛰었던 올림픽 영웅이 국적을 바꿔 한국팀과의 승부를 벼르고 있다. 이렇게 한국은 변했다. 국가에 대한 충성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이 속한 사회 공동체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에 대해 한국은 과거와 달라졌다. 한국인에게 사회를 위해 희생할 것인지 묻는 것 자체가 이미 의미는 없어졌다. 그래서일까? 이 중국 영화는 Old해 보였지만 그래도 뭔가 있어 보였고, 좀 부러웠다.
  이 영화, 중국의 정치적 상황까지 고려한다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중국인의 의식 역시 개인주의로 변하고 있는 시점이다. 여기에 중국 공산당 정권에 대한 비판도 국내외로 고조되고 있다. 영화를 영화 외적인 요소로 꼭 고려해야만 하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쟁 중이지만 대중을 상대로 많이들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매우 작위적인 주제의식도 솔직히 눈에 띈다. 의도된 공산당 정부의 계획에 의해 지원된 영화 정도로도 보였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중국인들이 알아서 고민할 문제이지 제 3국민들이 그런 것들을 고민할 필요는 없다. 중국은 변하고 있으며, 그 변화에 대한 선택은 그들이 선택할 문제다. 
 

 

  중국이 많이 변하긴 변했나 보다. 공산주의 국가라면 종교에 대해선 관용을 하지 않을 것으로 알았는데 영화의 제목엔 ‘소림’이란 단어가 나온다. 영화의 공간은 바로 소림사이고 시대는 반식민지화된 중국의 군벌시대였다.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중국국민들을 가혹하게 다뤘던 시대였다. 그런 시기, 혼란은 당연했고 그 누구도 믿지 못하고 배신이 다반사였던 시대였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의 캐릭터들은 시작부터 의형제로 맺어졌음에도 서로를 믿지 못하고 배신을 모의하고 서로를 죽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 과정에서 빚어진 오해와 가족의 불행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화려한 액션과 함께 전개됐다.
  언제나 느끼지만 무술영화는 과연 중국이다. 내용이나 구성이 어떻든 무술장면은 가히 핵폭탄 수준이었다. 그런 속에서 진행되는 한 인간의 반성과 성찰이 돋보였다. 한 군벌의 수장으로서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장군 ‘호우지에(유덕화)’의 가정사의 불행과 그의 몰락은 한 인간의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보는 듯 했다. 그런 과정에서 자신이 했던 긍정적이지 않은 과거를 돌아보면서 그가 왜 머리를 깎을 수밖에 없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자신의 과거를 돌아 봤을 때의 그의 심정은 참혹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모든 과거를 포기하고 새로운 생을 살고 싶었고 사죄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과거는 그의 새 출발을 결코 좌시하지 않았다. 몸은 경험의 축적이란 방장 스님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그것은 결코 과거와 단절할 수 없다는 인생의 철칙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과거의 호우지에로 돌아가야 했다. 비록 그는 군벌의 수장도 아니고, 총을 든 군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은 예전의 그런 모습을 지니지도 않았다. 편안함도 포근함도 없어진, 세상의 날 것에 그대로 노출된 채로 위태로운 그런 모습만은 갖고 있었다. 그런 가족을 상대하는 것은 한 인간으로서 그리 편안할 리가 없었다. 그는 하지만 과거와 달리 누군가를 위한 희생을 위해 현실과 부딪쳤다. 그의 인생에서 새로운 전기를 몸으로 직접 경험하는 것이다. 사죄하고 싶었고, 바꾸고 싶었으리라. 복수가 얼마나 큰 희생을 요구하는지를 직접 느꼈기에 그는 어떻든 나름의 노력으로 최악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도 마냥 행복한 끝을 이끌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런 전환의 몸부림 속에서 새로운 출발은 좀 더 긍정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는 얻었을 것 같다.  

  


  이 영화, 정치, 사회적 관계를 고려해서 본다면 그 나름의 의미도 있을 것이다. 영화 구성상 할 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인간의 비극과 성찰을 중심으로 본다 하더라도 전혀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특히 한 인간이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면서 얻게 된 의미 있는 바람은 한 인간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할 가치일 것이다. 어떻든 누군가를 희생시킨다면 그 상처는 함께 살고 있는 누군가의 슬픔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그 슬픔은 결국 모든 이들의 아픔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용서도 필요하고 성찰도 요구되는 것이다. 유덕화의 한층 물오른 연기력을 감상해서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헤어 드레서 - The Hairdress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슬픈 현실을 유쾌하게 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8월 4주

  언제나 세상은 멍에이고 굴레다. 그래서 인간은 지금까지 자유를 위해 싸워왔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했다. 도전하기 위해선 이전의 모습에서 탈피해야 하고 변해야 한다. 좀 더 적극적으로 말이다. 변화에 대한 이런 도전이 여성이라고 예외일 수 없으며, 어느 면에선 더욱 강조되고 있다.  새로운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자세는 오늘날 여성들의 새로운 미덕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런 도전에 대해 세상은 아직도 구태의연한 방식을 고수하기도 하며, 여성과 마찰을 빚기도 한다. 그래서일 것 같다. 최근 세상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여성들을 다루는 영화들이 눈에 띈다. 이런 여성영화들 속에서의 여성들은 다양한 색깔을 보여준다. 여성의 특성으로 세상을 살아가려는 영화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세상의 편견과 싸우는 여성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모습의 다양한 여성들은 현재의 여성을 보여주면서 미래에 어떤 여성들이 등장할지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것들은 단순히 여성만을 위한 영화가 아닌, 현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을 위한 영화이기도 하다. 대규모의 블록버스터들이 영화계를 주름잡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 영화들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겠지만 그래도 한 번 관심을 갖고 볼만한 영화들이 아닌가 싶다. 그런 영화 중에 주목할 만한 여성영화들로 '헤어드레서,' '사라의 열쇠,' 그리고 '심장이 뛰네'이 있다
 


헤어 드레서 

 



  남성도 마찬가지겠지만 뚱보라는 이미지는 여성들에겐 저주에 가까울 것이다. 중국 영화에서도 다루었지만 남자는 능력이라면 여자는 용모라는 것은 어느 면에서 인류가 살면서 가장 확실하게 느끼고 있는 세상의 이치다. 그런 점에서 살이 쪘다는 것은 여자에겐 치명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여성 영화에선 살 찐 여성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바그다드 카페]에 이어 이번엔 [헤어 드레서]도 그런 현실을 보여준다.
  여자 주인공 ‘카피’는 성격도 좋고 삶도 긍정적으로 살지만 문제는 살이 쪘단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 한 가지 문제를 적극적으로 타개하면서 영화는 즐거운 유쾌함을 보여준다. 그녀의 활력 바이러스가 그녀 주의에 퍼지면서 많은 이들의 고민이 해결되고 있다. 또한 영화는 그녀만 보여주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그렇겠지만 베트남 출신 불법 이민자들의 슬픈 모습도 담고 있고, 뚱뚱한 여성, 나이 많은 이혼녀에 대한 사회적 냉대도 다루고 있다. 솔직히 이혼녀에 대한 대처방식은 한국만이 예외는 아닌 듯싶다. 그래서 이혼은 좀 위험한 선택인 것 같다. 아무튼 영화는 어려운 타개 방식을 낭만적이면서도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사라의 열쇠 

  



  어쩌면 여성 영화에서 가장 진부한 소재 중 하나가 전쟁과 여성과의 관계를 다룬 영화일 것 같다. 거의 전쟁 속에서 사회적 타자인 여성들의 피해가 가장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 같다. 전쟁에 졌을 경우 사회적, 정신적 고통을 특히 여성들이 감내하는 경우를 많이 다루고 있는데 그런 과정 속에서 여성의 강점과 용서 등이 제재로 다루어진다. 이 영화 역시 그런 류의 영화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유태인이 겪었던 것을 기본 테제로 설정, 독일군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던 유태인의 어느 오누이의 비극이 그 시작이다. 문제는 이 영화는 특정 시점만을 다루지 않고 과거와 현재가 서로 교차되면서 그 비극을 다루고 있단 점이다. 자신들과 다른 민족과 문화를 공격하면서 그들의 인권 자체를 말살하려 했던 과정 속에서 남동생을 잃은 주인공 ‘사라’의 진실 찾기가 주내용이다. 동생 죽음과 자신에게 가해졌던 고통에 대한 트라우마를 간직하며,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그러면서도 아무도 밝히기를 거부했던 과거의 참혹한 진실을 밝혀내면서 희생자들의 아픔을 자신의 비극으로 승화시키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분명 주목할만한 영화로 만든다.  



심장이 뛰네   

 

 


  설정 자체가 슬프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날 포르노 배우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이라 여자 주인공이 포르노 배우가 되려고 한다는 설정은 어색하지만 분명 사실적이기도 하다. 자칫 잘못하면 여성들을 조롱하는 분위기가 있지 않을까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이러니와 역설 등을 통해 오늘의 여성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여성영화 특유의 호소력이 있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상실하고 불안한 오늘을 살고 있는 30대의 주인공 ‘주리’의 모습은 골드 미스라고 칭송되고 있는 노처녀들의 고통을 보여주고 있단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특히 시작부터 주인공과 관객을 잇기 위해 “요즘 그대는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시작하는 질문은 주인공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닌 오늘의 여성의 이야기임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등장하는 형편없는 오늘의 삼순이인 주리의 고난은 분명 관객들에게 찡한 그 무엇을 전달해 주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일종의 성장통과 어른으로 되어가는 과정은 분명 현재의 많은 여성들이 실제 경험하고 있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인상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종병기 활 - War of the Arrow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는 50만 포로들의 분노를 담고 있다.
  비록 과거의 일이지만 영화 속에선 국민을 지키지 못한 국가와 왕, 그리고 집권층은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당했다. 무엇보다 정부와 집권층은 자신들의 책임은 방관한 채, 곤란에 처한 백성들 보고 각자 알아서 살아 돌아오라고만 했다. 무시하기엔 결코 작지 않은 숫자인 50만 포로는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도 적지 않지만 당시엔 굉장한 인구숫자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에 대한 안위를 걱정하지 않았던 조선정부를 보면서 50만 포로의 고난과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무책임한 정부,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의 시대배경은 인조반정 때인데 차라리 매우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든다. 정부의 그렇게 역설하는 신자유주의가 요구하는 극단적인 경쟁은 말할 것도 없고 계속 축소되는 복지예산이나 서민들을 위한 공적 영역을 보면 이 영화, 왠지 모르게 시대를 초월한 상황과 분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제목에 ‘최종병기’란 단어가 들어갔는지 모른다. 최종이란 어휘는 더 이상 쓸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의미일 것이기 때문이다. 즉 정부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활이라는 마지막 수단을 써서 백성들이 각자 알아서 생존하란 이야기처럼 들린다. 영화 ‘활’은 무책임하고 무례한 정부에 의해 비참한 현실을 당한 백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시작부터 불운한 죽음으로부터 시작하는 ‘최종병기: 활’은 어쩌면 주인공과 백성들의 불운을 암시하는 듯 하다. 인조반정이란 음울한 역사적 사건으로 시작된 이 영화는 당시의 극우보수층이라 할 수 있는 서인이 국제적으로 세련된 외교를 운영하고 있었던 광해군을 몰아내면서 조선은 위태로운 친명대청 강경책을 시작하게 된 때를 역사적 배경으로 담고 있다. 영화는 언젠가 있을 전쟁을 의미하는 ‘9년’이란 발언을 통해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지만 역적집안으로 몰린 어느 남매의 불운한 미래를 암시한다.
  역적이란 주홍글씨는 ‘남이’와 ‘자인’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역적으로 분류되는 순간, 그들이 품을 희망은 무가치한 것이며, 언제나 숨어 살며 자신들을 드러낼 수 없기에, 세상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자신들을 결코 꿈꿀 수 없다. 양반으로서 과거를 쳐서 입신양명할 수 없었고, 누구나 다 하는 결혼을 통해 가족을 형성하는 기쁨조차, 상대 가문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에 감히 시도할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들은 살아 있지만, 결코 알려져선 안 되는 사람들이었고, 어쩌면 이미 죽은 사람들로 기억될 이들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비극인 것이다.
  이런 그들에게 잠깐 행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기회도 순식간이었고, 그들에게 행복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잠깐의 행복도 놓치는 그 순간을 단순한 운으로 돌릴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올바른 토론과 상대를 인정하는 자세가 없었던 조선정부와 기득권의 편협한 사고방식뿐만 아니라 국토를 결코 지킬 수 없으면서도 각종 특혜를 챙긴 기득권들의 무책임이 남매의 불행을 이끈 가장 큰 원인이었고, 이런 문제가 결코 남이와 자인에게만 덮친 것이 아니란 점이다.  

 

 


  영화는 처음의 두 남매의 개인적이 불행을 넘어 청나라 장수와 남이의 불꽃 튀는 활싸움을 보여준다. 그들이 돌아오는 과정에서의 액션이 이 영화의 볼거리다. 특히 활이란 소재로 영화의 극적 재미를 이끄는 아이디어는 매우 색달랐고, 영화를 보면서 매우 효과적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정적일 것만 같은 무기 활이 액션과 상황에 따라 더없이 활력이 넘치고 Speedy한 매력을 갖고 있음을 이번에야 알았다. 순간성의 상징인 활은 지금까지 많은 액션영화에서도 사용하지 못했고 사용하기도 쉽지 않은 무기다. 아마도 무기로서의 활력이 덜한 것으로 평가됐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런 고정관념을 ‘최종병기: 활’은 멋지게 깨고 있다. 쫓고 쫓기는 긴장감 속에서 한 번에 모든 것을 거는 활의 매력은 지금까지 잘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거리감을 상쇄시키는 활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함은 물론 상대의 위치가 어디이든 언제나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무서운 무기다. 또한 박해일과 류승룡의 뛰어난 연기력이 이런 극적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확실히 연기자가 왜 중요한지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이런 멋진 장면들이 있지만 영화는 불운한 조선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들려주고 보여주는 50만 포로들의 운명은 활을 통해 살린 사람이 얼마가 되든 결국 개인적인 모험담일 뿐, 모든 이들을 위한 활동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비호를 받지 못한 국민들의 불행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책임을 방기하고 모른 채 하는 정부와 기득권들의 만행이 어떤 사태를 초래하는지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가장 믿음직한 존재가 되지 못한 정부와 과연 과거에만 있었는가 하는 점을 되새긴다면 이 영화, 너무 우울하고 그 비판정신이 무척 가슴 아프다. 그래도 이 영화는 희망을 준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려주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