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예술가의 초상, 알폰스 무하 위대한 예술가 2
김은해 지음 / 컬처그라퍼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놀이하는 인간’이란 의미를 지닌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참 부러운 표현이다. 자신의 취미와 즐거움을 생존을 위한 생활 속에서도 실현한다는 것, 이것의 성공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행복이자, 이상적인 세상을 산 것이리라. 그러나 쉽지 않은 곡예다. 그렇게 쉬웠다면 자신의 취미를 살려 프로게이머가 된 이들 역시 행복해야 하는데 마냥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취미와 경제적 삶, 이 둘은 이율배반적인 극과 극이다. 경제적 삶은 자신만의 즐거움만을 위해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회는 관계를 맺고 산다. 그 관계가 가족과 같은 일차원적인 관계가 아닌 이차원적인 관계라면 그 속엔 거래가 존재하며, 그 거래는 상대의 만족을 위해 자신의 만족이나 꿈을 상실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생존이란 문제에 부딪힐 때, 혹은 가장이란 생활인이 될 때, 만나게 되는 타인은 언제나 타인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요구하며, 그에 합당한 것을 받을 때, 그 대가를 지불한다. 그 대가로 생활하는 것이 생활인이고 보면, 취미는 결국 어느 순간 상품이 된다. 상대의 만족을 위해 자신의 만족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직장생활이고 돈 버는 것이고, 그게 생활인이다. 그런 사회 속에서 과연 취미가 곧 생활이 되는 것이 마냥 즐거울 리는 없을 것이다. 돈 벌기 위해 희생해야 하는 이런 쉽지 않은 운명을 체코의 어떤 유명 미술가가 거역했다고 한다.
  ‘성공한 예술가의 초상, 알폰스 무하’는 순박해 보이는 어느 이방인 예술가의 성공담을 다룬다. 그렇다고 이 책은 그의 성공담과 인생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가 그린 그림들의 매력을 촘촘히 써내려 간다. 작가 본인의 개인적인 판단과 그녀의 페미니스트적인 인식과 판단이 무하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감동을 막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어쩌면 현실적인 내막에 대해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의 인생과 작품들에 대한 착실한 설명은 무하를 모르는 사람에겐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저자의 판단은 아마도 무하의 인생은 ‘호모 루덴스’로 파악하면서 현대인들의 이상적 인간형으로 다루는 듯 하다. 그의 인생은 그렇게 멋지게 보인다. 동유럽 슬라브 출신인 미술가 ‘무하’에 대한 이야기는 신데렐라 스토리 같다. 일종의 문명 후진국에서 파리로 온 어느 이방인의 성공 스토리가 말이다. 분명 그는 성공했고, 자타가 인정하는 유명 미술가가 됐다. 그의 성공은 아마도 대중성의 의미를 잘 파악한 그의 탁월한 이지와 감성의 산물일 것이다. 파리 시절부터 그린 그의 포스터는 환상과 성적 요소의 극대화된 조화에 기인한 것 같다. 우선 아름답고 신비하다. 또한 여성의 매력을 통한 그의 접근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여기까지 그는 개인적인 성공을 위해 치달은 생활인일 뿐이다. 그의 그림이 아르누보든 상징주의이면서도 치장에 충실한 그런 작품이든 그의 작품은 성공을 거뒀고, 자신의 생활을 굳건히 만든 개인적 성공의 스토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현대인들 역시 이런 성공에 목말랐고, 그것을 위해 오늘도 밤새워가면서 몸을 혹사하면서 일한다. 사실 성공이 아니라 자기 처자식을 굶게 하지 않으려는 남자 가장들의 절박함이 있는 것을 보면 성공만을 위해 몸을 축내면서 산다고 볼 수 없다. 그냥 하루하루를 버티기 위해 산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인 성공담을 갖고 있는 무하는 하루 생존이 급한 개인에게도 멋진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의 성공담이 개인적 안위를 위한 것이었고, 그것이 어쩔 수 없는 개인적 목적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적 고충이 있었다면, 그의 다음 인생은 좀 더 공동체적인 것으로 향하고 있다. 어쩌면 그의 매력적인 포스터는 자신의 취미를 생활의 기반으로 삼았을 때 무엇인가 허전했고, 그래서 그것은 결국 마냥 성공을 빼곤 마냥 행복한 것이 아니었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즉 아쉬운 개인사란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인 안위에 중심을 두는 것을 뭐라 할 수 없지만 대가의 품격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성공을 발판 삼아 진정으로 원하는 것으로 향한 것 같다. 그래서 성공이 롤모델이 되는 시대에 살면서 개인적 성공담을 만들어주는 것 이상으로 그는 체코를 비롯한 슬라브 공동체를 위한 헌신을 한다. 그에게 돈벌이가 아닌 예술가로서의 품격과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서의 노력이 빛을 본다. 어쩌면 이런 노력으로 인해 그는 진정한 사랑을 받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의 초창기 작품에선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시대적 고충을 안으려는 그의 시대적 성찰인의 매력을 함께 보게 된다. 그리고 그런 행위로 인해 그의 그림은 단순히 예쁜 그림으로서가 아니라 점점 발전하는 한 인간의 단면을 볼 수 있는 것 같아 좋아 보였다.
  그의 조국 체코는 참 다사다난한 나라다. 오랜 동안의 내전과 식민지, 그리고 심지어 한 나라에서 둘로 나뉘는 불운까지 짊어진 그런 나라다. 분명 하나 된 슬라브를 염원했던 그에 입장에선 달가울 리 없는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모든 이들의 평화를 위해 노력했단 점이다. 일의 성패는 한 인간으로서는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노력하는 것 자체도 소중한 것이리라. 그의 노력은 <슬라브 서사시> 연작들을 분명 아름다운 작품으로서뿐만 아니라 시대적 의미를 지닌 걸작으로 불리게 할 것이다. 그런 것이야말로 무하를 성공한 한 인물로서 자리매김하는 이유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