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떠나는 철학여행 하루에 떠나는 시리즈
김영범 지음 / 페퍼민트(숨비소리)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인문학의 위기라고 다들 이야기하고 있다면 아직도 인문학을 배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다. 역설적이게도 말이다. 철학도 이러긴 마찬가지다. 어쩌면 사회에 뭔가 도움이 되어야만 생존하는 기능주의적 경향이 지배하면서 이런 탄식이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인문학이나 철학도 인류가 생존하는 한 유지될 것이다. 형태와 모습, 혹은 공부하는 대상이 달라질 뿐,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에겐 어떤 나침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삶은 쉽지 않으며, 그 속에서 겪게 되는 인간적 고통은 스트레스든 트라우마든 끊임 없이 지속되기 때문이리라. 다만 현재 철학의 인기는 좀 사그라졌지만 말이다.
  이런 위기의식으로 태어났던 것 같다. 그래서 몇 천 년인지도 감이 안 잡히는 철학의 역사를 단권화 한 것은 물론 책제목을 ‘하루에 떠나는’이란 관형절을 붙인 것 같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런 작업은 불안하고 불안전할 수밖에 없는 작업이다. 저자의 욕심이 과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혹은 위기에 처한 철학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나름대로의 처방을 내린 것인지도 모른다. 불가능하지만 이렇게 해야만 하는 고민, 어느 정도 느껴졌다.
  이렇게 아니라도 철학은 생존할 수 있다. 새로운 영역이 생길 때, 이것을 철학의 한 분야로 인식하거나 명명하면 역시나 철학은 계속 유지될 것이다. 중세에 신을 다뤘지만 오늘날엔 언어를 다루지 않나? 대상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철학이란 단어가 유지된다면 그것도 좋은 생존방식이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래도 일관성이 필요할 것 같다. 과거로부터 같은 단어가 유지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말이다. 저자 김영범은 그런 고민을 안고 소박하지만 효과적인 방식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수많은 철학가들을 읊어 내려갔다. 그런데 철학가들의 생각을 나열하는 방식이 재미있다. 차이 속에 숨겨진 경쟁의식이 바로 그 방식이다.
  책 속에서 철학가들이 칼과 방패를 들고 싸우는 장면이 나오지 않아, 자칫 철학가들 사이의 경쟁이 잘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철학자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경쟁관계를 형성한다. 진리를 찾고 그것을 다른 이들과 공유한다는 것이 지식인의 사명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비현실적인 공상일 것이다. 모든 이들의 마음은 물론 경험도 다른데 그런 것을 일치할 것이라 짐작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이 탐구하는 인간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이 책은 무척 위험한 줄타기 몇 개를 하고 있지만 그들간의 경쟁을 기반으로 해서 풍성하면서도 치밀한 내용을 담았다.
  깜짝 놀랐다. 아주 과거의 철학자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잊혀진 것이 아니라 아예 있지도 않은 존재들이다. 설사 이름은 들어본 적은 있지만 어느 교과서에 짧게 나왔을 뿐, 시험용 아니면 접하기 힘든 그런 철학자들이다. 기껏 몇 페이지(심지어 어떤 철학자들은 딸랑 2페이지에만 담겨있을 정도였다)에 담긴 이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 내용까지 작은 것이 아니었다. 철학을 업으로 삼은 이의 혜안이 제대로 빛을 발하는 순간들을 목격할 때마다, 지금의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독특한 것이 아니었고 과거의 어느 이가 이미 그에 대해 탐구했고 그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했다는 것을 보게 됐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뛰어난 문장력으로 너무 풍부해서 두꺼운 책으로도 담기 힘든 그들의 고민 어린 이야기를 적절한 구체적 상황들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단 몇 줄로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쉽게 풀어줬다는 점이다. 철학은 어려운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의 이론이 되기 위해 무수한 고민과 전제, 추리 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단 하루 동안 만들어질 수 없기에 인간의 체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내용들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기술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많은 것들을 극도의 추상화를 하면서도 이 책을 읽는 이들이 쉽게 이해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의 능력이 힘든 과정을 통해 얻어진 것은 당연하겠지만 저자의 천부적 능력이 부러울 뿐이다.
  책 속의 철학가들은 비록 서양이란 영역에 국한된 것이지만 신과 인간의 싸움에서 이제 인간과 인간, 혹은 인간 스스로의 문제점으로 향하고 있는 것 같다. 어차피 기능적인 요긴함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밖에 없는 철학이라고 본다면 많은 시간의 변화 속에서 인간의 요구를 위해 철학도 부단하게 변화를 겪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공동체 내에서 살아야만 하는 인간은 공동체의 요구를 따르면서도 그 요구에 반대되는 욕망을 갖기 마련이다. 자유란 말은 어쩌면 공동체에 대한 반항으로 생긴 말인 것 같다. 개인이란 단어도 집단이 없다면 생길 수 없는 단어다. 그런데 공동체는 끊임없이 변했다. 폴리스에서, 신성이 존재하는 중세의 교회에서, 이제 거대 도시 속에서 자본주의란 가치관에 매몰된 도시문명으로까지 집단의 모습은 계속 변했다. 이런 공동체의 변화에 힘들어 하는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철학의 반응도 적절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변했다. 적자생존의 법칙이 잘 어울리는 영역이다.
  하지만 인간은 아직도 아프다. 그런 점에서 철학은 만병통치약을 만들기는 힘들 것 같다. 아니 불가능할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치료약을 갖고 나오지 않기 때문이며, 철학의 심도 있는 치료약을 정신적인 숙련을 통해야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선택된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책에 담긴 철학자들의 이야기는 들을 만하며, 심각하게 고민할 시간을 줄일 수 있으며, 또한 참고할 만하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후배의 특권이 참 좋다. 또한 과거의 어느 인물의 고민은 지금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들이란 점이다. 흘러간 옛 노래도 다시 듣는다면 좋을 수 있는 그런 감흥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즐거움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임을 모든 이가 알 것이다. 어설프게 알고 있는 니체의 책들을 꼭 읽어 보고 싶은 충동이 들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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