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예술 산책 - 작품으로 읽는 7가지 도시 이야기
박삼철 지음 / 나름북스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겉만 본다면 이 책은 예술작품들을 소개하는 에세이와 같다. 특히 도시란 글귀가 마음에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도시 속의 삶을 지옥에서의 삶처럼 묘사하는 책들이 서점을 장악한지 오래도, 그래서인지 일탈이니 도피니 하는 낭만성만을 강조하는 여행에세이가 역시나 인기인 요즘에 이 책은 매우 신선해 보였다. 무엇보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이 도시이고, 그것도 한국에서 가장 클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구가 매우 많은, 그래서 지옥이라고들 이야기되는 그런 도시에서 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삶이 그다지 우아하지 않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면서도 도시를 못 벗어나는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크게 드는 시점에서 이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도시를 볼 수 있으면 하는 마음에서, 어쩌면 도시를 사는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일종의 구원을 찾기 위해 시작된 이 책 읽기는 그러나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도 가게 됐다. 도리어 이 책은 지금까지 살고 온 도시에 새로운 기운을 불러 일으키는 공공미술에 대한 이야기와 그 작품들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책이다. 그리고 도시인들을 그렇게 만든 도시에 대해 날카로운 메스를 댄 그런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리 간편하게 읽을만한 책이 아니다.
  무겁다. 책의 두께를 아우르는 깊이 있는 철학과 독자들에게 의식의 변화와 행동을 요구하는 강한 주장까지 담고 있는, 그리 쉽지 않은 책이다. 획일화되고 수동적으로 된 공간으로 상징되는 근대 도시 속에서의 인간미를 찾으려는 도전이 이 책에 가득하다. 페이지 수로만 정의될 수 없는 탈근대인의 도전과 인식이 글과 그림 곳곳에 숨어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은 근대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에서 탈근대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인식을 소개한다. 에세이로 구분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 책은 현대 철학서이다. 다만 그런 내용을 밝히는 수단으로 도시 속의 예술 매체들이 사용됐다는 점이 특이한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도시 속에 숨겨진 예술작품들이 그리 간단한 작품처럼 다가오지 않았고 숙고를 요구하는 좀 고역을 요구하는 작품들로 다가온다. 참 세상 살기 힘든 것 같다. 편안하게 볼 수도 있던 것처럼 보인 작품들도 가장 원시적이고 힘든 사고력을 요구하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 아니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서로의 인생이 다르다는 본질적인 차이 이외에도 비판의 대상에 대한 인식을 서로 공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대를 살면서 근대의 고마움을 이제 너무 당연하다고 여기는 그럴 시간에 새로운 대안인 탈근대주의적인 기반 하에 과거를 비판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장점과 단점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비판이 이 책에선 생산적으로 작용하며, 많은 점에서 참고할 만하고, 또한 근대를 추진한 인간들이 꼭 받아들여야 할 많은 것들이 풍부하다. 작가의 현대적이고 탈근대적인 인식에서 비롯된 과거에 대한 분석과 비판은 사실 책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그래도 그런 시도를 하는 매력은 충분히 볼만 하고, 또한 예술에 담긴 다양한 삶의 인식과 철학은 들어 볼만 하다.
  이 책이 시도하고 있는 세상은 아직 오지 않은 것 같다. 다만 과거를 비판하면서 나온 새로운 인식은 그것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다시 비판을 받을 것이다. 어차피 이데올로기든 철학이든 허점투성이고, 또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한 측면 역시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세의 무지한 신의 세계를 비판하고 새로운 세상을 연 합리적 이성의 시대를 연 인간위주의 근대 역시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그 단점들이 회자되면서 비판의 꼭대기 위에 서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것은 조선의 성리학 역시 마찬가지였고, 탈근대 역시 그런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모더니즘이 비판하면서 등장한 혼이 없는 기계론이 이제 정신을 다시 부활시키며 등장한 탈근대에 의해 비판 받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인간들이 갖고 있는 상식과 이념의 대결 속에서도 도시 안에 제공된 공공미술들은 그래도 남아 있을 것이다. 도시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말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기꺼이 제공된 이 매력 있는 작품들은 각자의 이상을 담은 이념들과 그것들 간의 논쟁 속에서도 계속 말이다. 그에 대한 해석이 무엇이든 도시를 사는 사람들에게 그 작품들은 다양하면서도 풍족한 여유를 줄 것이다. 도시의 날카로운 생활의 고통 속에서 그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논쟁 너머에 있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여유, 바로 그것이 도시 속 작품들의 진정한 가치일 것이다. 인간은 유한하지만 이것들은 계속 남아 있으면서 다음의 세대에게 철학은 물론 여유도 많이 줬으면 한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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