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에 속지 마라, 블립>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블립 Bleep - 일상의 현실을 바꾸는 무한한 가능성의 발견
윌리암 안츠 외 지음, 박인재 옮김 / 지혜의나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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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자역학, 잘 모른다. 뉴튼의 만유인력은 물론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사실 알기 힘든 상황에서 양자역학은 감히 넘어 설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다. 개인적으로 아인쉬타인이 양자역학을 만들었거나, 최소한 비슷한 생각을 주장했다고까지 잘못 알았었다. 나의 이런 무지함이 있었기에 이 책은 그런 약점을 어느 정도 고쳐주는데 큰 도움을 줬다. 알고 싶었던 가려움을 제거해주는 좋은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그런 지식의 충족만을 담은 책이 아니었고 어느 정도 읽고 보면 그런 지식 쌓기에만 사용되는 도구는 아니었다. 이것은 인류가 지금까지 갖고 있던 패러다임이란 타성을 깨고 새로운 인식의 수단으로 가도록 이끌려는 의지를 담은 책이다. 그것도 혁명적으로 말이다.
  ‘블립,’ 제목부터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제목으로 본다면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그리고 내용 도입부는 난수표만 같기도 했다. 책 표지 뒷장에 블립에 대한 설명이 있었지만 그것이 이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 것도 아니었다. 도리어 더욱 혼란스러웠다. 어렴풋이 드러나는 저자의 의지가 드러나면서 내가 보는 세상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책 한 권에 내가 배웠던 지식과 지혜가 송두리째 무너진 것은 아니지만 뭔가 새로운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그 시작이 바로 양자역학에 대한 이해였고, 저자들은 물론 그들과 생각을 공유하는 인식의 기반이 이 양자역학이었다.
  양자역학, 매우 놀라웠다. 책 속에서 소개된 뉴튼의 절대시간, 절대공간이란 개념이 무너진 양자역학의 세상은 초미립자인 아원자의 세계다. 물질의 근본을 이루는 이 세계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 상식들이 모두 거짓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분법적인 구성을 통해 이해된 뉴튼의 물질세계는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관계를 이루는 예측 가능한 물질의 세계지만 그 물질을 이루는 원자 세계로 깊숙이 들어간다면 고체는 사라지고 파동과 같은 것들이 움직이는 세계이며, 원인과 결과가 아니라 양자도약이 벌어지는 기묘한 불확실의 세계이며, 멀리 떨어진 전자들끼리도 서로 연결이 되는 알다가도 모를 희한한 세계인 것이다. 특히 객관적일 것만 같은 연구자 혹은 관찰자의 상태에 따라 관찰대상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과연 객관이 가능한가 하는 질문까지 하게 된다. 즉 오늘의 현대인들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기본가정들이 흔들리는 영역이고, 그런 영역의 기반 하에 현재의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말 놀라웠다.
  이런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신비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견해를 피력한다. 이 아원자자적 세계를 기반으로 기존의 이론들의 한계를 지적한 다음, 그들의 세계관을 피력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물질은 사실 에너지 덩어리이고 인간의 의지를 통해서라면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그들의 주장은 신선할 뿐만 아니라 좀 과대망상에 가까운 생각이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런 과대망상이라는 생각이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정말이란 생각이 들었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선 조금 생각이 다르게 된다. 조금은 나도 신비주의에 발을 담근 느낌이다.
  이 책을 다루는 신비주의자들이 그렇다고 비현실적이란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은 현실에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수준 높은 인생을 살기를 권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려 했던 그 많은 철학자들의 고민과 성취를 공유하려는 것이다. 다만 과거와는 달리 이들은 철저히 과학에 기반을 두면서 일을 진행한다는 점이다. 특히 근대의 인식을 만든 뉴튼의 철학과 현대를 개창한 아인쉬타인의 관점으로는 도대체 설명이 가능하지 않은 양자역학에서의 발견을 통해 기존 패러다임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설명력이 높은 관점이나 패러다임을 통해 보다 멋진 인생을 만들려는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다. 과학의 힘을 빌어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은 근대가 가장 자주 다뤘던 내용이고 그것이 오늘을 만든 것이라면 이들의 시도 역시 매우 현대적이고,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책이 이야기하는 내용과 신념체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해서 모든 것이 바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신비주의자들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방법론들은 모두 지독하리만큼 힘든 인내와 고통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돈오점수를 요구하는 것이다. 돈오돈수란 개념도 있지만 아무래도 지적인 능력으로 육체는 물론 물질의 구조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고, 연습이 필요한 부분이다.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 분야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모든 것을 이루는 근간은 바로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과연 그런 노력을 통해 이 책의 신비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이뤄질지, 아니면 정말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자신의 생활을 바꿔야 할 이유는 명확히 알 수 있다. 현재의 방법으로는 우리들이 갖고 있는 고민은 물론 지금의 고통을 제거할 수는 없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또한 완벽한 성공을 할 수 없더라도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룰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통해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만 있다면 이 책, 그리고 이 책 속의 신비주의자들이 제안하는 방법도 가치는 있을 것이다. 꼭 도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살면서 고통을 갖고 있는 일반인도 이런 지혜를 통해 그들의 고통을 덜 수 있고, 노력만 하면 그럴 자격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주장, 경청할 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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