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인형의 집 푸른숲 작은 나무 14
김향이 지음, 한호진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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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형, 이제 어른이 된 나에겐 재미있게 놀 것도 아니고, 사실 이제 내가 아끼는 귀중품에 끼지도 않는다. 언제 갖고 놀았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누군가 갖고 논다면 피식 하고 웃을지도 모르는, 그렇게 난 어린 시절을 벗어나 누구나 인정하는 어른이고, 거칠고 힘든 삶을 살면서 동화보단 현실에 더욱 익숙해진 그렇고 그런 사림이다. 그래서인지 인형을 통해 상상을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고, 그리고 나만의 세상 속에서 동화를 꿈꾸지 않은 그런 사람이다. 오늘의 삶에만 걱정하고 꿈을 상실한 그런 사람인 것이다.
  다 큰 어린이 돼서 읽은 ‘꿈꾸는 인형의 집’은 그래서 묘하게 다가온다. 인형이란 어릴 때의 즐거웠던 소재를 중심으로 쓰인 것으로서, 재미있고 아름다운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장식된 동화였다. 아름다운 마음씨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모습의 어른은 무척 반가웠다. 그리고 피노키오, 소공녀 등 어렸을 때 들었던 반가운 동화 속의 캐릭터 이름들이 나올 때면, 아하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있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됐다. 어렸을 때, 그들의 동화 속 이야기로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어서, 힘들거나 즐거웠던 기억, 그게 나에게 다시 찾아왔다. 사람은 나이 먹는 것이 어렸을 때의 추억이 사라지면서 진행되는 것이겠지만, 마음 속 어딘가에 어린이의 마음과 독백을 그래도 언제나 간직하고 사나 보다.
  하지만 동화 속 이야기의 뒷면엔 또 다른 것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 속에 담긴 동화 같은 이야기는 또한 어른이 되어서 느낄 수 있는 사회적 현상과 그 뒤에 숨어있는 인간적인 탐욕과 복잡하고 어려운 인간관계까지 담겨있는 이야기다. 잔혹동화라고 할까?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당은 현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캐릭터들이었고, 주인공들이 겪는 고난은 이 시대는 물론 인간이 살아온 역사라는 시공간 속에서 있을 법한, 그리고 불명확한 파악이지만 있었을 것이라 확신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건들이었다. 만화의 주인공처럼 ‘꿈꾸는 인형의 집’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형의 이야기들 속에서 가해자는 세상이었고, 세상에 찌든 인물이었고, 자신의 불만을 남에게 강요하는 인물들이었다. 책 속에 담긴 세상은 결코 동화 같지는 못했다.
  동화는 그런 것 같다. 현실 속에서 비현실이 벌어졌으면 하는 인간의 갈망을 읽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현실에선 안 되기에 생각 속에서라도 이뤘으면 하는 상상을 통한 인간의 갈망, 그리고 동화 속 세상 속에서 어른으로서는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든 따뜻한 인간관계를 염원하고, 자신을 아껴주는 인물을 갈구하며, 그리고 자신의 착한 품성이 계속 성장하길 바라는 소박한 희망이 펼쳐지는 곳이 바로 동화라는 것에 담겨있다.
  어른이 읽는 소설이든, TV 드라마든 이런 속성이 유지되는 것을 보면 모든 문학은 동화에서 비롯된 것 같다. 마치 동화가 나이 먹어 어른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어른이 보는 세상을 담은 소설이나 TV 드라마, 연극 등에선 비극이 존재한다. 심지어 동요에서 비롯된 대중가요에서조차도 비극이 있고, 불만이 있고, 저주까지 있다. 하지만 동화나 동요엔 그런 것이 없다. 포근함과 사랑, 기대, 그리고 믿음이 존재한다. 성격이 변해버린 ‘벌거숭이’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인형들과 할머니의 손길이 숨쉬고 있다. 그만큼 깨끗하고 아름다운 세상이다.
  잊혀진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 복잡하게 변해버린 인간사에서 잊게 된 것들을 다시 동화를 통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이 상상의 산물이라 해도 그런 것들을 마주하면서 다시 한 번 생활의 미덕과 따뜻함을 부활시키고 싶다. 나도 동화 속의 인물들처럼 살고 싶다. 그리고 동화 속에 있는 것들이 바로 우릴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서의 행복, 그런 것들 속에 있기에 포기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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