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신료 전쟁 - 세계화, 제국주의, 주식회사를 탄생시킨 향신료 탐욕사
최광용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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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회사에 일하던 저자는 스리랑카를 시작으로 해외 여러 나라에서 일하며 향신료에 대한 흥미를 갖고 이야기를 구상하게 된다.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80여개국을 돌아다니며 쌓인 연구들이 책 한권을 통해 다양한 시각으로 압축되어 나온다.

아직 향신료가 많이 발전되지 않았던 중세 유럽에서는 후추 한알이 진주 한알보다 비쌌다. 이 진귀한 기호품인 향신료의 매력은 유럽을 넘어 세계의 역사를 바꿔놓는다. 역사를 볼때 전쟁이나 전염병, 의학적인 접근으로 많이 바라봤었는데, 향신료를 통해 세계사를 보니 더 새롭고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포루투갈 vs 네덜란드, 스페인 vs 영국에서 네덜란드와 영국이 승리하고 이후 본격적으로 향신료 무역전쟁이 시작된다.

원정 항해를 시작한 드레이크는 영국여왕의 원조를 받으며 스페인의 배를 약탈하고 여러대의 대포를 바다에 던지면서까지 엄청난 양의 향신료를 공수하여 배에 싣고 영국으로 금의환향한다.

전쟁 약탈자 노릇만하다 향신료를 가지고 장사를 하려하니 지식이 필요했고 이때부터 영국은 교역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한다. 무적으로 여겨지던 스페인의 몰락으로 영국은 대영제국의 초기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결국 피로 물든 향신료 제도에서 최후의 승자는 영국이 된다. 신기하게도 세계사를 보다보면 미국 이전에 모든 전쟁과 지배, 탐욕으로 인한 숨겨진 악의 끝에는 항상 영국이 있는 듯하다.

향신료 쟁탈전을 읽으며 16세기 대항해 시대를 엿보고, 먼 곳으로 향신료를 찾아 떠나는 모험가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반대로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피폐해지는 질투에 체념과 혐오가 떠오르기도 한다. 피비린내 나는 탐욕의 역사가 지금의 것을 누리게 해준게 사실이지만, 그 과정에 깔려 있는 살벌한 욕망과 바닥을 볼 수 없는 이기는 좀 끔찍스럽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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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 - 폐 끼치는 게 두려운 사람을 위한 자기 허용 심리학
이지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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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나의 관계도 힘들지만, 나와 나의 관계는 더 어려운 것 같다. 아마도 타인 속에서 바라보는 나와 내 안의 진짜 모습이 일치하지 않아 그런 듯 하다.

나의 기질은 겁 많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다. 지금까지 노력해서 다듬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만이었나... 이 책을 읽으며 무조건 불안을 누르기 위해 만들어진 다른 얼굴로 덮어 씌우려고 했던 일들이 잘못된 방법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지식을 쌓고 아는 것이 늘어날수록 더 겁이 나고 쓸데없이 윤리와 도덕적인 잣대만 높아져 매일이 피로했다. 사회와 타인의 기준에 맞추기보다 내 안에 진짜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쓸데없는 부스러기들이 털어지고 가벼워진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며 읽었다.

지금 내 마음 상태에 많은 도움이 된 책이다.


실제로 사회적으로 고립되었을때 활성화 되는 뇌의 영역은 신체적 고통을 느낄 때와 동일한 부위라고 한다.

55p

건강한 사람이란 아무런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충분히 흔들리고 왜 그렇게 흔들리는지 자기 마음을 찾아가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12p

상처에 대해서도 너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상처는 아프긴하지만, 나의 모든 것을 파괴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잘 보수한 상처는 보다 나은 내가 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12p

불안은 현재와 미래의 간격이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기다리고 있기보다 미래의 일을 현재로 만드는 것. 즉 현재에 뛰어들어 망설이던 일을 시도해 볼 때 불안이 멈출 수 있다.

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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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기담집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 / 부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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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기묘한 이야기는 순식간에 빠져들게 된다. 열 여섯개의 짧은 이야기들은 몽환적이면서 강렬하다. 단순히 자극적이기만 한게 아니라 인간과 삶의 뒤틀린 이면을 담고 있어서 억지스럽다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크게 들지 않는다.

삶의 뒤틀린 이면이란 세상의 차별과 인간이 가진 추악한 욕망, 본성에서 보여지는 불길하고 잔혹한 면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것에 이야기라는 상상력을 옷 입혀 표현하니 한여름에 등줄기가 서늘해질 수 밖에.

돈에 눈이 멀어 쌍둥이 형을 죽이고 형 행세를 하며 계속해서 죄를 저지르는 사형수의 이야기 <쌍생아>와 자신이 만든 의자 안으로 들어가 기괴한 상상을 하는 추한 얼굴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인 <인간 의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곳에 거울은 없지만 세수나 목욕을 할 때면 형은 물위에 제 그림자가 되어 나타났습니다. 식사를 할 때는 심지어 된장국에까지 그 초췌한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그 밖에도 식기라든지 빛나는 쇠붙이 표면처럼 크든 작든 뭔가가 비치는 곳에는 반드시 징그러울 정도로 모습을 드러냈고, 심지어는 제 그림자조차도 저를 위협했습니다. 그러니 결국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마침내 제 육체를 들여다보는 것도 두려워졌습니다. 죽은 형과는 주름 하나, 근육 하나까지도 똑같은 이 육체가 너무도 무서워졌습니다.

<쌍생아> _10p

선생님은 경험이 있으실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인간에게는 자신의 혈육을 증오하는 감정이 있습니다.

<쌍생아> _17p

전 셔츠만 걸치고 밑바닥에 장치한 출입구를 열고 의자 속으로 기어 들어갔습니다. 참으로 기묘하더군요. 캄캄하고 답답해서 마치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듯 이상한 기분이었습니다. 하긴 무덤과 다를 바 없겠지요.

<인간 의자> _93-94p

비슷한 구조로 반복되는 단편들이면 지루했을텐데, 인물과 관계, 결말의 형태가 각각 풍성하고 농도도 짙다.



세상의 상식과는 먼 기괴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이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그것이 아주 잘 맞아떨어진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 끔찍해', '어떻게 이럴수가' 하는 탄식이 나오는 상상의 이야기들이 사실 현실의 소재로 만들어졌기에 아마도 작가는 이것을 꼬집어 독자에게 세상의 민낯을 보여주고 싶었던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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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온 편지
찰스 디킨스 외 지음, 홍수연 외 옮김 / B612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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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마을에 조르간 선장이 도착한다. 바다에서 우연히 발견한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3년전에 마지막 항해를 떠나 소식도 없던 형의 편지였다.

편지를 받은 동생 알프레드는 그 내용이 가볍지 않다고 느낀다. 형의 행적에 대한 진실과 아버지의 명예, 그리고 사라진 5백 파운드의 행방을 알기 위해 알프레드는 선장과 함께 어머니와 약혼자가 있는 집을 떠난다. 여기까지가 1,2장의 스토리다.

바람이 많이 불고 춥고 황량한 황무지에서 알프레드와 선장이 겨우 찾아들어간 한 클럽 안은 여러 사람들이 자신의 모험담과 경험담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수상한 여관에서 큰일을 당할 뻔한 사건, 사랑과 배신, 사별, 유령등 일상에서 벗어난 기묘한 단절에 대해 말한다.

리뷰를 찾아보니 3장이 좀 난해하다고 하던데, 나는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이야기 속 이야기처럼 각각 다른 형태와 질감을 가진 짧은 이야기들이 풍부하게 섞여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밖으로 나가는 문에 막 다가갔을 때 집 뒤쪽으로 끌려가는 마차를 보았고, 여관 주인이 문간에 나타나서는 통로를 막아섰습니다. 그를 밀치고 나가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바같 계단에서 내 팔에 안겨 있던 작은 넬리가 떨어졌고, 여관 주인이 문을 세게 쾅 닫았습니다. 나는 의식을 잃고 그의 발치에 쓰러졌습니다.

3장 클럽-나이트 (89p)

나는 그가 스스로 절벽에서 뛰어내렸거나, 실수로 넘어졌거나, 누군가에 의해 떠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나는 그가 아래쪽의 무언가에 의해 과도하게 끌렸다고 믿습니다. 그가 죽은 후 유품에서 발견된 작은 일기장에 기록한 내용을 들어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겁니다.

3장 클럽-나이트 (89p)

이야기 속에서 흘러가다 4장에 접어들면 어느정도 얘기가 정리된다. 죽은 줄 알았던 형의 행방을 알게 되고 아버지의 이름을 지키고, 돈까지 되찾는다. 이 책은 다수의 작가가 집필한 책이라고 한다. 1,2,4,5장은 찰스 디킨스와 윌키 콜린스가 쓰고, 3장은 그외 작가들과 함께 쓴 콜라보였다.

아직 현대 추리소설의 체계가 잡히지 않은 시기에 나온 최초의 것이자 여러가지 실험적인 동기를 담은 작품이라고 한다. 또한 상당히 구하기 어려운 완전한 영문 판본이라고 하니 그 희소성의 가치도 높은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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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마야 안젤루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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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여성 흑인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인 마야 앤절로의 타계 10주기를 맞아 이번에 나온 개정판이다. 초판번역이 2006년이라고 하니 벌써 20년전이다. 오래된 책임에도 세월의 풍화작용을 받지 않은 듯 읽혀지는 매끄러움은 시대감각에 맞게 공들여 번역한 노력 덕분일 것이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는 마야 앤절로의 자전적 소설이다. 같은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어린시절부터 인종과 젠더의 좁은 새장 안에 갇혀 자라난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설득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거울에 비친 소녀의 모습은 검정곱슬 머리에 몸집 큰 검둥이 계집애였다. 흑인 중에도 보수적인 남부의 흑인 여자아이로서 하루하루 성장한다는 것은 고통과 상처를 겹겹이 쌓아올리는 과정이었다. 받지 않고 느끼지 않아도 될 이 불필요한 모욕 속에서 이해하고 탐구할 시간도 충분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다행스러운 것은 이 경험들이 그녀 속에 있는 굴하지 않는 희망의 창으로 투사되어 전세계에서 사랑받는 미국의 현대 고전이 된 점이다.

부모님의 이혼, 어머니의 남자친구에게 당한 강간, 열여섯살에 미혼모가 되기까지 마야 앤절로의 유년시절을 따라가며 그녀가 느꼈을 부조리와 부당함, 차별에 대한 분노가 이후에 문학적인 유산과 인권운동으로 확장되고 표출된다.

누군가에게는 분노가 파멸로 들어가는 문이 될수 있는데도, 그녀는 쉬운 문이 아니라 좁은 문을 선택해 세상으로 걸어갔다. 그 점에서 작가의 근성과 담대함이 느껴진다. 육신은 새장 안에 갇혔을지라도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이야기가 되어 세상 끝까지 깊게가 닿았을 것이다.

접은 부채의 접힌부분처럼 끝도 없이 펼쳐지는 일 사이에서 도대체 무슨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어린아이들의 참고 견디는 재주는 다른 대안을 생각할 줄 모르는데서 비롯하는 법이다.

p176

아들이며 손자며 조카를 키우는 남부의 흑인 여자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교수대의 밧줄이 매달려 있었다. 조금이라도 일상에서 벗어난 일이 생기면 그것은 끔찍한 소식을 알리는 전조로 밝혀질지 모른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까지도 남부 흑인들은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사람들로 꼽힌다.

p178

어머니는 삶이 얼마나 짓궂은지 이해했고, 삶과 벌이는 싸움에 기쁨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또한 내가 허영을 쫓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히 알고 있었으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굴복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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