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다커
앨리스 피니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립된 공간 안에서 마지막 반전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나가는 소설이다. 예상하지 못한 결말에 혼자 충격 받아서 다 읽고도 앞으로 돌아가 계속 줄거리를 되짚어보게 만든다.


주인공 데이지 다커는 심장이 자주 멈춰 마치 숙명처럼 죽음의 위기를 겪어야 하는 아이로 태어난다. 아이의 가족은 생각보다 더 끔찍했다. 데이지에게는 두 언니가 더 있었는데 엄마는 자신보다 언니들을 편애하고 차별했으며, 아빠는 엄마와 이혼 후 아예 죽은 딸 취급했다.


첫째 언니 로즈는 아름답고 똑똑했으나 자신만을 생각했고, 둘째 언니 릴리는 누구보다 허영심이 강하고 이기적이며 오만하고 사악하기까지 했다. 특히 릴리는 어릴때부터 데이지에게 장난을 넘어 심한 모욕과 수치를 주는 인물이다. 다행히 데이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할머니. 그녀만이 데이지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사랑해주며 인정해줬다.


긴 시간이 흘러 할머니의 8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콘월 해안의 외딴 섬 '시글라스' 저택으로 가족들이 모이게 된다. 이 섬은 밀물이 들어오면 8시간은 육지와 완전히 단절되는 고립된 장소다. 하지만 위선적인 가족들 사이에서 늘 소외감을 느끼며 자랐던 데이지에게 할머니가 계신 시글라스는 편안한 집과 같았다.


이제 할머니의 생일 파티가 시작되어야 할 자정, 갑자기 할머니가 주방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고 벽에는 가족들의 죄를 묻는 이상한 글 적혀 있었다. 남겨진 식구들은 처음엔 당황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한 사람씩 죽어가자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사람은 입체적이라 상황에 따라 좋은 사람이기도 했다가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에 묘사된 데이지의 가족들은 순수한 이기와 악으로 만든 형상 같았다.

엄마는 릴리가 나에게 진심으로 사과한 줄 알고 착하다며 칭찬했다.

나말고 릴리의 말을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냥 바다에 빠져 죽지 그랬어."

136p

타인이 아니라 가족이라서 상처가 더 크다. 단순히 범인이 누군지 밝히는 것을 넘어 유년시절의 상처가 한 인간의 영혼을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 차갑게 묘사한다. 하지만 이것은 일부분에 불과하고 더 큰 비밀과 거짓말이 뒤에 기다리고 있다. 아무리 깊이 감추려해도 진실을 드러나고 누군가 이 가족들에게 죄를 심판한다.

공간이 주는 공포도 한 몫한다. 밀물에 잠기는 섬, 벽에 걸린 수많은 시계, 어둡고 고립된 저택인 시글라스는 이야기의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해주는 분위기를 잡아준다.

숨겨진 진실을 다 알고 나면, 충격을 넘어 슬퍼진다. 가족 안에서 뒤틀린 관계가 서로의 영혼에 얼마나 날카로운 칼이 될 수 있는지 보는 것 같아 서늘하고 또 안타깝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과 사랑과 꽃과
나태주 지음 / OTD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과 사랑과 꽃과>는 나태주 시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시선집이다. 화려한 언어도, 복잡하고 어려운 사유도 없다. 대신 편안하고 익숙한 아주 작은 말들로 사람과 사랑, 그리고 꽃처럼 스쳐 지나가는 삶의 순간들을 붙잡아 둔다. 그 순간들은 아직 오지 않은 것도 있고, 이미 지나간 것들도 있다.

삶에서 가장 많이 머무는 대상은 결국 '사람'인 것일까. 거창하고 멀리있는 관계가 아니라 가까이 있는 사람, 짧게 지나갔으나 마음속에 남은 사람들을 바라보고 생각하며 시인은 사랑을 대단한 감정으로 끌어올리지 않는다. 우물에 비친 내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는 느낌. 그래서 읽다 보면 시 속의 사랑은 늘 이해의 허들이 낮고 편안하다.

문장은 짧고 쉽다. 하지만 그 쉬움이 이 시집의 가장 큰 힘이다. 아무 준비 없이 펼쳐도 마음 한 쪽에 닿는 구절이 있고, 바쁜 하루 중간에 읽어도 감정이 무너지지 않는다. 어쩌면 시는 삶을 견대게 해주는 풍경인 것 같다. 보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풍경...


시선집을 덮고 나면,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조금 더 잘 보아야 겠다는 마음, 지나간 것을 애써가며 미워하고 후회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감, 그리고 하루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풍경 하나만 오래 보고 지나가도 괜찮겠다는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소란스럽지 않고 부담 없이 권할 수 있는 책이다.

인상적인 점 중 하나는 각 시 아래에 덧붙여진 독자들의 시평이다. 시를 읽고 떠올린 생각과 감정을 짧은 문장으로 적어놓았는데, 그 문장들이 시를 해설하거나 규정하기보다 또 하나의 사유로 곁에 놓인다. 혼자 시를 읽고 있는 시간이면서도, 동시에 여러 사람과 같은 시를 두고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든다.

이 시평들 덕분에 시는 책 안에 고정되지 않는다. 나와 타인의 시선과 사유를 만나며 조금씩 다른 결로 확장되고, 같은 시가 사람마다 다른 방향으로 읽힌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 열린 시들은 시인이 던진 말 위에 독자들이 각자의 시간을 포개어 놓은 방식으로 시선집을 더욱 따뜻하게 만든다.


----------

지금 사람들 너나없이

살기 힘들다, 지쳤다, 고달프다,

심지어 화가 난다고까지 말을 한다

그렇지만 이 대목에서도

우리가 마땅히 기댈 말과

부탁할 마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밥을 먹어야 하고

잠을 자야 하고 일을 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낌없이 사랑해야 하고

조금은 더 참아낼 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소망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기다림의 까치발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날마다 아침이 오는 까닭이고

봄과 가을 사계절이 있는 까닭이고

어린것들이 우리와 함께하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통령의 독서 - 한 권의 책이 리더의 말과 글이 되기까지
신동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말도 안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책 읽는 대통령을 간절히 상상하고 기대하며 읽은 책이다.

한 사람의 말과 글에는 그가 통과해 온 수많은 책들의 흔적이 남는다. 걸어온 독서의 길이 생각의 토대가 되고 사유의 방향성이 되는 것이다. 일반인에게도 책의 영향이 이렇게 큰데, 한나라의 지도자가 쓰는 언어에는 그 특성이 더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저자인 신동호 시인은 문재인 전 대통령 시기에 연설 비서관으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에서 역대 대통령들의 여러 연설문과 담화문, 기고문을 인용한다.

대통령의 연설이 어떤 사실에 근거해 주제에 논리적으로 다가가는지를 보여주고, 불특정 다수의 국민들에게 어떻게 공감을 주고, 지도자의 말에 어떤 식으로 신뢰감을 심어줄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실재로 읽다보면 연설문 한 줄을 쓰기 위해 서너권의 책을 탐독해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될 정도로 잘 연마해서 나온 문장들이 많았다.

지도자의 말과 사상은 너무나 중요해서 그에게 영감을 준 책은 국가의 운명을 바꾸기도 하는 것이다. 현 대통령이 유튜브 음모론에 빠져 한밤중에 국회와 국민에게 총을 들이댄 사건만 봐도 그 좁게 편향된 시야와 사고를 가진 지도자가 얼마나 위험한 오류에 빠질 수 있는지 단번에 보여준다.

읽으면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많이 떠올렸다. 옥중에서 <제3의 물결>을 읽으며 앞으로 정보 대국이 될 대한민국을 설레여하며 설계한 김대중 대통령과 바쁜 국정 업무 속에서도 책을 놓지 않고 읽었다던 애서가인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하는 책은 지도자로서의 지혜와 국민들의 마음에 연결될 수 있는 창이었던 것 같다.

그립고, 꼭 다시 되찾고 싶은 지도자의 모습이다.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다른 세계를 만나기 위해서는 스스로 책장을 넘기는 수고를 거쳐야 한다.

28p

민주주의는 온갖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야 하는 운명이다. 아니,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못마땅하더라도 일단 함께하도록 해야 하는, 고난의 정치체다. 힘으로 억누를 수 없고, 기만과 거짓이 잠시는 통할지 모르나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41p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린 새롭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 30년 정신과 전문의가 들려주는 5060 마음 성장
김녹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노후에 관련한 모든 것에 관심이 아주 많다. 특히 노년의 경제, 건강, 마음가짐에 대해서.

정신과 전문의면서 동화 작가인 저자가 들려주는 '나이듦'은 마음의 나이가 몸의 나이를 자연스럽게 뒤따라 가는 일이다. 즉, 나이듦에 대한 마음 공부를 따로 해보자는 것.

100세 시대에서 50대와 60대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노후의 삶과 질, 만족도가 달라질 것이 분명하기에 미리 공부함으로 노년기의 삶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와 이 시기를 잘 받아들이는 태도를 만들어 두는 것이다.

어느 순간 어떤 동기로 인생의 성적표를 받아보게 되는 날, 그때 다시 다잡으려면 너무 늦기에,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노후를 살아내기 위한 지혜로운 마음공부가 되겠다.

저자는 책에서 나이듦을 관계와 감정, 지혜, 죽음의 시각에서 살펴본다. 자신이 진료했던 경험도 예시로 들면서 관찰하고 사유한 것들에 관해 정리한다.

어쩌면 한 전문의 개인의 주관적인 해석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나는 여기에 수록된 사례들에서 나오는 인물들에게 마치 내 이야기처럼 독자가 많은 공감을 하리라 예상된다. 그리고 저자의 주관적인 사유가 조금 더 긍정적인 해법을 찾아내는데 영향을 줄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상실과 쇠퇴의 시간'이 아니라 나이에 편견을 깨고 계속해서 성장하고 능동적으로 삶을 꾸려가는 노년의 삶을 그려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책이다. 개인적으로 지금 새롭게 시작할 일을 앞두고 있는 내게 늦지 않았다는 위로와 용기가 된 책이다.


흔히 50이후의 삶을 '상실과 쇠퇴의 시간' 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러한 관점은 그 시간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바깥에서 바라 본 풍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5p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 반대로 성장이 끝날 때 늙는다. 그럼 성장하는 나이가 몇살까지인가? 쭉 살아보니 75세까지는 성장하더라.

33p

건강한 가정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 관계가 적절한 경계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82p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라앉는 마음
홍기훈 지음 / 득수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이 아니라 조사기록이나 특집 다큐멘터리를 본 기분이 든다. 그만큼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노력한 작가의 방대한 사전 조사가 느껴진다. 한가지도 놓치지 않으려는 치밀함이 보여 감탄하며 읽었다.

시애틀에서 기자로 활동하는 주인공은 동료를 대신해 기사 하나를 맡게 된다. 급하게 러시아로 날아가 예정된 인터뷰를 여러차례 하면서 사건에 대해 깊숙히 들어가게 된다.

2000년의 여름, 러시아 해군 북방함대 소속 핵 잠수함인 K-141 쿠르스크가 항구를 떠난다. 그리고 훈련 도중 갑작스레 통신이 끊긴다. 해군본부가 침몰 사고를 인지한 건 거의 열두 시간이 흐른뒤, 생존자는 이미 없었고 구출하기도 전에 모든 게 끝이 났다.

2년 뒤에 발표한 공식 사고 보고서에 의하면 침몰 원인은 잠수함에 실린 무게 4.5톤 중어뢰의 심각한 결함이었다. 용접 부실로 그 틈에서 연료가 새어나와 폭발했다는 것. 이로 인해 118명의 승조원이 희생되었다.

이미 20년 전에 일어난 이 사건은 러시아 정부에서 너무나 심플하게 결론 짖고 조사를 끝마쳤다. 기자인 주인공은 7명의 인터뷰이를 만나면서 그 증언에서 사고의 진실과 남은 유가족들의 슬픔과 절규를 느끼게 된다. 특히 남편을 잃은 부인의 증언은 무겁고 암담했다.

마치 러시아판 세월호를 보는 느낌이다. 상황과 배경은 다를지라도 국민을 지켜야 하는 국가가 미필적 고의로 수백명을 죽인 참담한 비극이라는 구조가 비슷해 보인다. 그래서 유가족들의 슬픔에 더 마음이 깊게 가 닿은 것도 있다.

사람은 눈 앞에 사랑하는 사람이 사고로 죽으면 분노와 슬픔 뒤에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 이해하고 납득해야 진심으로 슬퍼하고 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애도의 끝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유가족이 끝났다고 해야 끝나는 것. 그래야 그 뒤에 남은 삶이라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모두들 안녕,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 쿠르스크 승조원인 콜레스니코프의 유서 -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