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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기담집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 / 부커 / 2024년 7월
평점 :
역시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기묘한 이야기는 순식간에 빠져들게 된다. 열 여섯개의 짧은 이야기들은 몽환적이면서 강렬하다. 단순히 자극적이기만 한게 아니라 인간과 삶의 뒤틀린 이면을 담고 있어서 억지스럽다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크게 들지 않는다.
삶의 뒤틀린 이면이란 세상의 차별과 인간이 가진 추악한 욕망, 본성에서 보여지는 불길하고 잔혹한 면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것에 이야기라는 상상력을 옷 입혀 표현하니 한여름에 등줄기가 서늘해질 수 밖에.
돈에 눈이 멀어 쌍둥이 형을 죽이고 형 행세를 하며 계속해서 죄를 저지르는 사형수의 이야기 <쌍생아>와 자신이 만든 의자 안으로 들어가 기괴한 상상을 하는 추한 얼굴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인 <인간 의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곳에 거울은 없지만 세수나 목욕을 할 때면 형은 물위에 제 그림자가 되어 나타났습니다. 식사를 할 때는 심지어 된장국에까지 그 초췌한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그 밖에도 식기라든지 빛나는 쇠붙이 표면처럼 크든 작든 뭔가가 비치는 곳에는 반드시 징그러울 정도로 모습을 드러냈고, 심지어는 제 그림자조차도 저를 위협했습니다. 그러니 결국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마침내 제 육체를 들여다보는 것도 두려워졌습니다. 죽은 형과는 주름 하나, 근육 하나까지도 똑같은 이 육체가 너무도 무서워졌습니다.
선생님은 경험이 있으실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인간에게는 자신의 혈육을 증오하는 감정이 있습니다.
전 셔츠만 걸치고 밑바닥에 장치한 출입구를 열고 의자 속으로 기어 들어갔습니다. 참으로 기묘하더군요. 캄캄하고 답답해서 마치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듯 이상한 기분이었습니다. 하긴 무덤과 다를 바 없겠지요.
비슷한 구조로 반복되는 단편들이면 지루했을텐데, 인물과 관계, 결말의 형태가 각각 풍성하고 농도도 짙다.
세상의 상식과는 먼 기괴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이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그것이 아주 잘 맞아떨어진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 끔찍해', '어떻게 이럴수가' 하는 탄식이 나오는 상상의 이야기들이 사실 현실의 소재로 만들어졌기에 아마도 작가는 이것을 꼬집어 독자에게 세상의 민낯을 보여주고 싶었던게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