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의 중력에 맞서 - 과학이 내게 알려준 삶의 가치에 대하여
정인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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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관련책은 어렵다는 생각에 항상 그 외곽에 걸쳐 있는 도서만 들췄는데, 이 책을 읽으니 과학의 편견이 좀 물렁해지고 예상한 것보다 과학이 인간의 존재와 삶에 대해 많은 현답을 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총 5부로 나뉘어 자존과 사랑, 행복과 예술, 건강과 노화, 생명과 죽음에 대해 70여권의 과학책을 꺼내들어 다양하고 유용하게 보여준다. 한 권의 책이지만 읽고나면 70권의 책을 만났다는 느낌이 드는 든든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자존과 사랑, 건강과 노화였다. 자존에서 나는 뇌과학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인간의 존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과학적으로 인간의 한계와 생물학적 불평등을 인정하는 것이 자신을 이해하는 출발점(20p)'이라는 말의 뜻을 아주 정확하게 깨닫게 되었다.

처음부터 우리 모두는 크던 작던 그 차이로 인해 생물학적인 불평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이것을 인정하고 시작하면 지금 사회에서 평등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깔끔하게 한계와 생물학적 불평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되는데 괜히 '차이'로 순화해서 능력중심으로 사회분위기를 조성하고 과열경쟁을 유발해 더 피로한 사회를 만든다는 것이다. 오히려 사회는 생물학적 불평등을 인정하고 환경과 생활을 변화해야 한다. 이것은 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타인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사회적 제도를 개선할 필요를 느끼게 되면 원치 않은 유전자로 인한 비만, 우울증, 알코올 중독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회복의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다.어떤게 진짜 원인이고 어디서 대책을 모의할수 있을 것인지 바로 알려주는 부분이었다.

저자는 계속해서 과학을 통해 '나' 라는 인간을 바라보게 하고 과학적인 관점으로 사회와 삶을 사유하게 한다. 즉,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자각하게 한다.

저자가 말하는 뇌과학을 차근차근 읽어내려가다 보면, 인류의 지성인 과학이 이상하게 차갑기보다 따뜻해 보인다. 과학을 이야기하지만 곧 이것을 통해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고, 이해가 되면 자연스럽게 사랑의 감정이 함께오기 때문일까. 과학이 인간에게 주는 긍정적인 영향과 결과물이 보여져 즐겁게 읽었다.

또한 생명이 모두 존엄한 것이 아니라, 태어나 살면서 얻어지는 경험과 노력하는 관계 속에서 학습된다고 말한다. 존엄이 거져 얻어지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때문에 존엄성을 가지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고, 평생에 걸쳐 그것이 부서지거나 망가지지 않도록 더 나은 존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내라고 말한다. 이런 말들이 얼마나 용기를 주고 위로를 주는지, 너무나 많아서 리뷰에 다 담을 수 없는게 속상하다.

대부분 뇌과학과 생물학, 진화론을 기본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어렵지 않고 이해하기 쉽고, 오히려 인문학과 심리학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모호하고 추상적인 느낌에서 과학적인 사실과 근거가 토대로 들어가니 기존에 가지고 있던 얇은 지식들이 더욱 단단해지고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삶과 맺는 죽음에 대하여 깊은 사유와 통찰까지 느낄 수 있다.

작가와 연구자, 과학과 인문학, 대중서와 전문서 사이에서 저자는 우왕좌왕 헤매고 있었다고 말하지만 이런 경계선 안에 서 있는 자만이 바라볼 수 있는 고유한 통찰이 분명 있다. <내 생의 중력에 맞서>는 정인경 작가가 오랜시간동안 연구하고 인간과 생의 가치에 중점을 두고 깊이 생각한 사유가 글로 빛나는 걸 볼 수 있다.

책을 덮으며 내 생의 중력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내가 나로 태어나 삶을 통과하는 곳곳에 만나 읽었던 책들이 머리속에 잊지 않고 계속해서 남았으면 좋겠다. 이어서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많아졌다.


※ 이 책은 '하니포터2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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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통당한 몸 - 이라크에서 버마까지, 역사의 방관자이기를 거부한 여성들의 이야기
크리스티나 램 지음, 강경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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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정도 예상하고 책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잔혹함과 극단적인 단면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것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너무나 힘들었고, 페이지마다 그 무게가 버겁게 느껴졌다.

<관통당한 몸>이라는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이 역시나 전쟁은 여성에게 끊임없는 고통의 나락을 주고 있었다. 오랫동안 종군기자로 활동한 저자 크리스티나 램은 이 책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위안부부터 독일 여성에 대한 소련군대의 성폭행, 1994년 르완다 집단강간, 보스니아의 강간 수용소, 보코하람의 나이지리아 여학생 납치까지, 전쟁으로 인해 여성들의 몸과 마음이 폐허가 되는 참담함을 모두 담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 참담함과 충격적인 사실, 끔찍하고 잔학한 행위들은 강간이 전쟁 범죄로, 무기로 얼마나 많은 전시 강간 피해자들을 만들어냈고, 수많은 여성의 삶을 파괴했는지 기록한다. 이 기록들이 읽기에 감정적으로 소화하기에 너무나 어렵고 떨리지만 그래도 견뎌내며 끝까지 읽어냈다. 그리고 책을 덮으며 그동안 무지했던 나에게 분노하고, 세계 모두가 가장 방치된 전쟁범죄로 무관심하게 내버려뒀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분노가 일었다.

이제 이 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난 후의 나는 확실히 바뀌었고, 자각한 느낌이 들었다. 당장 개인이 무언가를 바꿀 수 없더라도 관심을 가지고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한폭 나아간 느낌이 들었다.

세계 곳곳의 전시 강간 생존자들의 인터뷰들을 읽어내려가며 사람이 염소처럼 팔려다니고, 자살하고, 학대당하며 성노예로 거래되고,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강간과 성폭행으로 인해 인권같은 건 바닥으로 추락하고 수치심과 모멸감을 넘어 남자의 성기가 공포를 낳는 무기로 생각되고 여성들은 아주 천천히 느리게 살해당하는 마치 지옥불을 통과하는 긴 터널에 함께 서있는 기분이 들게 한다.

최악의 이야기는 이미 읽었다고 생각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정말 바닥 없는 절망과 공포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나중에는 페이지를 넘기기가 두렵기까지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싶지 않은 일이거나, 너무 충격적이거나, 불편하고 혐오스런 진실은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성폭력과 강간은 특히나 그렇고 그 특성상 증거도 없을때가 많아 피해자가 그 일을 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으면 범죄가 성립되지도 않는다. 판결을 내리는 검사나 판사들도 주로 남자여서그런지 대량학살에 비해 성폭력을 중요하게 보지 않으며 오히려 피해 여성들이 화를 '자초했다'는 투의 말을 할때마저 있다고 한다. 절망적이다.

ISIS, 알카에다, 보코하람등 무장단체의 비인간적이고 상상을 뛰어넘는 극단적인 폭력성을 보면서 (특히 보코하람) 왜 이들이 이지경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생각을 안해볼 수 없었다. 이들에게는 심각한 수준의 빈곤과 문맹률, 기후 변화로 인한 작물 생산량 감소등으로 생존을 위해 전쟁을 하고 강탈하며 그 모든 표현법으로 극한의 폭력을 보여줬다. 이들은 살인과 학살, 파괴, 폭파를 자신의 종교적인 임무의 하나라고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고 더러운 손으로 여성의 작은 존엄까지도 잔혹하게 살해했다.

고향이 폐허가 되고 남편과 자식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살해되고 강간 당한다.(심지어 품에 있던 8개월의 아기도 살해한다) 하루 아침에 딸이 납치되고 목에 탄환을 두른 테러리스트 옆에 자신의 소중한 아이가 있는 모습을 비디오로 보며 제발 어떤 형태로도 괜찮으니 돌아오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어머니도 본다. 이게 지금 내가 살고있는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맞는지 계속 실감나지 않는다.

가늠할 수 없는 아픔과 상실의 고통, 내겐 평상시와 다름없는 오늘이 누군가에게는 죽지 못해 사는 지옥이라는걸 깨닫는다. 내가 이 나라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저들은 내가 될수 있고 내가 저들이 되어 전쟁 속에서 가족을 잃고 강간과 구타를 받고 있을 수도 있었다. 읽으면서 끊임없이 여성들에게 나를 이입하고 투영할 수 밖에 없었다.

여성학적인 관점을 넘어서서 끝에 가선 인감혐오가 올라온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남성이 여성에게 가한 비인간적인 끔찍한 범죄의 진실을 바라보며 인간의 존엄은 뭘까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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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을 까는 여자들 - 환멸나는 세상을 뒤집을 ‘이대녀’들의 목소리
신민주.노서영.로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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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읽으면서 놀람과 분노가 느껴지며 생각과 할말이 많이 떠올랐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는 왠지 이것에 대하여 단 한줄도 제대로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판을 까는 여자들>은 한줄로 요약하면, '이대녀(20대 여성)가 바라보는 정치와 사회'다. 당연히 페미니즘이 중심이 되고 여성의 목소리 중심으로 모든 주장과 글이 풀어져 있는 책이다. 이런 책은 뚜렷한 목적과 방향성을 가지고 출발하기 때문에 이슈에 무관심하거나, 기준이 없거나, 아예 처음부터 비판할 목적으로 읽는다면 의미가 없는 시간들이 될 수 있겠다.

공저로 나온 이 책은 90년대생 이대녀인 신민주, 노서영, 로라가 이대녀들이 정치와 사회의 영역에서 더 많은 결정권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글이다. 내용에서 여러가지 사건들과 팩트들을 체크하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적인 오류와 불합리한 투명한 벽에 부딪힐 수 밖에 없는 현상들을 글로 풀어나간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정치가 이대녀를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게 만들어야하지만, 동시에 이대녀를 마음대로 해석하고 하나의 단일 집단으로 축약하려는 욕심들에 저항해야한다고 말하기 위함이었다.

어디서나 성폭력은 벌어지고 있었고, 임신과 출산의 늪이 있었다. 결코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이 문제는 사회적인 지원과 기회가 필요한데도 항상 다른 것에 밀려 지지부진하다. 요근래 페미니즘이 떠오르며 묘하게 남자와 여자로 편을 먹어 서로를 깎아내리고 애들마냥 떼를 쓰는 모습을 보면서 순수한 개념의 운동이 개인으로 축소되고 변질된 것 같아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페미라는 말만 뜨면 사람들은 듣기 싫어하고 지겹다고 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기피 당하지만 사실상 변한 건 없어 보인다. 되려 페미니즘은 폄하되고 무시되며, 완전히 배제당하는 듯 보인다. 불편한 진실이 사회적 약자에게 나와서 그런 것 일까. 약자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조롱과 공격의 형태로 될돌려 치는 것인가. 이게 가장 크게 바뀌려면 정치가 바뀌어야하는데 남자 중심의 정치 사회이기 때문에 그 벽은 높아만 보인다. N번방은 이슈화되는데 1년은 꼬박 걸렸는데, 보복기획으로 만든 '알페스 이용자를 처벌해달라'는 청원에 실제로 4일만에 국회가 응담을 한 모습만 봐도 그 벽이 굳건하고 넘기 힘들겠다는 판단이 든다.

계속 읽어나갈수록 '팩트가 주장을 앞서지 못한다(137P)'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불편하지 않고, 혐오스럽지 않고, 듣고싶은 것이 팩트가 되는 세상에서 점점 여성은 소외되고 무력해진다. 아무것도 할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오래된 무력감은 여성에게 사회적 불안감과 위화감을 주게 된다.

나는 삼십대 초반까지 직장을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 여성의 위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었다. 내게 오는 우울감과 무기력감,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무지로부터 말이다. 이후에 여러 경험과 다양한 글과 말로 그것이 개인의 문제가 다가 아니고 내가 통과하는 시대와 사회의 구조적인 영향 아래 뿌리 깊은 편견과 관습으로 자리잡은 것들이라는 걸 깨달았다. 결국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질 않으니 같은 여성이 그 벽을 깨고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것이 이 책을 통해 읽혔다.

아침부터 대선 결과에 집 분위기가 무겁다. 아무일도 손에 잡히질 않아 청소하고 멍 때리며 앉아있다가 다시 힘을 내어 리뷰를 써본다. 이번 선거에서 이대남과 이대녀의 표도 양쪽으로 완전히 갈렸다고 한다. 앞으로 뻔히 보일 미래에 벌써부터 맥이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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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달리기
조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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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나눈 가족이 아닌 완전한 타인이 주는 유산. 이것은 시한부 판정 받은 레즈비언인 '성희'가 중년이 되어 그동안 스쳐갔던 연인들의 조카들에게 주는 보상이었다. 딱히 이 이아들이 성희의 인생에 중요한 역할을 해준것은 아니기에 그녀가 아이들에게 보내는 유산이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이모인 '성희'는 아이들에게 주기적으로 편지를 보낸다. 편지속에는 아이들이 해결해야하는 크고작은 미션들이 담겨있고 미션이 달성되는 순간 적절한 보상을 약속한다. 한창 성장과정인 아이들은 이 미션을 통해 정체되고 고여있던 짐과 장애를 한단계 넘어가게 된다.

부모보다 나은 역할을 해주는 타인. 굳이 이런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쳐 아이들마다 맞춤 케어를 해주고 스스로의 인생에 주체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게 훈련시키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책 소개처럼 세대를 뛰어넘는 정서적 공동체를 보여주고 싶었던걸까. 후반으로 갈 수록 약간의 억지스러움이 느껴졌다.

다만, 가족이 아닌 타인이 주는 마음이라는 설정이 따뜻해서 좋았다. 평생을 마음이라는 것을 가지고 살아간다는게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렵다. '색이 변하고, 찌그러지고, 끊어지고, 뭉개지고,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34p)' 그리고 혼자서 그것을 유지하고 다스리기는 더 힘들다. 여러번 형태와 질감이 변하고 무너질텐데, 그때 다가오는 타인의 따뜻한 마음이 따뜻한 감정을 공유하고 다시 걸을 수 있게 보듬어준다.

또 하나 좋았던 것은 읽으며 어른이든 아이든 똑같이 한사람의 몫으로 존중받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에서도 계속해서 비춰준다.


사람이라면 태어나 죽기까지 길 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게 된다. 곧 죽을 늙은 노인이 갓 태어난 아기에게 삶의 희망을 얻고 기대어 살아갈 수도 있는 것처럼, 혈연관계가 아닌 다른 세대라도 서로의 삶에 아주 중요한 터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의 모든 관계는 버릴것이 없고 말도 행동도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 이 책은 '하니포터2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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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 않다
최다혜 지음 / 씨네21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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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지현, 강은영, 이지은 세 여성의 이야기다. 일러스트레이터, 시간강사, 무명작가로 스스로 선택하여 하고자 하는 길에 들어섰으나 여러가지 제약으로 좌절하고 타협도 하고 계속 살아가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일상을 그림과 글에 담았다.

그 제약들은 어찌보면 평범하고 진부하다 하겠다만, 그래서 더 살에 와 닿는 고통이었다. 생활비를 벌어야하기에 다른 사람의 책만 만들고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낼 수 없는 경제적인 여건, 돈도 명예도 없는 시간강사를 하며 좋아하는 것을 붙들고 버티고 있건만 유학을 간다거나 박사할 여유가 없는 말그대로 보따리 장사만으로 그칠 수 밖에 없던 여건, 무명작가로 어떻게든 자신만의 작품을 이어가려고 하지만 겨우 생활하고 있는데 자꾸만 집에서 손을 벌리는 형편에 결국 타협할 수 밖에 없는 여건.

이 세명의 이야기는 결국 작가의 이야기였다. 경험에서 나오는 진짜의 것들이라 아무리 설정이였다고 해도 몰입도와 공감은 다른 것들과 비교할 수 없겠다.


작가는 이 책을 작업하며 자연스럽게 자신이 '김지현', '강은영', '이지은' 으로 분리되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자신을 닮은 이들이 안쓰러워 보였고, 그들이 그저 살아가기만을 바랬다고 한다.

몰입하여 읽으며 너무 빨리 넘어가는 페이지가 미안했다. 한 컷마다 그려지는 자신의 표정을 겹쳐그리며 작가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책을 덮으며 난 또 삶에 대해서 생각한다. 가진게 있건 없건, 삶에서는 반드시 한번 이상은 불행이 찾아오게 되는데, 불행이라는게 참 눈치도 없고 무례하고 뜬근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지 한번은 무너지게 한다. 어느 누구도 초연하게 마주보고 지나갈 수 없는 일이다. 휘둘리고 찢겨지고 상처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안쓰럽다기보다 끊어지지 않고 계속한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한번 접고 변형된 꿈이라도 계속해서 이어가는 것. 그냥 제자리에서 버티기밖에 못할지라도 가진것 안에서 꿈을 계속 꾸는 것.

작가는 고통스러웠을지 몰라도 읽고 난 후의 나는 위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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