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통당한 몸 - 이라크에서 버마까지, 역사의 방관자이기를 거부한 여성들의 이야기
크리스티나 램 지음, 강경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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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정도 예상하고 책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잔혹함과 극단적인 단면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것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너무나 힘들었고, 페이지마다 그 무게가 버겁게 느껴졌다.

<관통당한 몸>이라는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이 역시나 전쟁은 여성에게 끊임없는 고통의 나락을 주고 있었다. 오랫동안 종군기자로 활동한 저자 크리스티나 램은 이 책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위안부부터 독일 여성에 대한 소련군대의 성폭행, 1994년 르완다 집단강간, 보스니아의 강간 수용소, 보코하람의 나이지리아 여학생 납치까지, 전쟁으로 인해 여성들의 몸과 마음이 폐허가 되는 참담함을 모두 담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 참담함과 충격적인 사실, 끔찍하고 잔학한 행위들은 강간이 전쟁 범죄로, 무기로 얼마나 많은 전시 강간 피해자들을 만들어냈고, 수많은 여성의 삶을 파괴했는지 기록한다. 이 기록들이 읽기에 감정적으로 소화하기에 너무나 어렵고 떨리지만 그래도 견뎌내며 끝까지 읽어냈다. 그리고 책을 덮으며 그동안 무지했던 나에게 분노하고, 세계 모두가 가장 방치된 전쟁범죄로 무관심하게 내버려뒀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분노가 일었다.

이제 이 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난 후의 나는 확실히 바뀌었고, 자각한 느낌이 들었다. 당장 개인이 무언가를 바꿀 수 없더라도 관심을 가지고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한폭 나아간 느낌이 들었다.

세계 곳곳의 전시 강간 생존자들의 인터뷰들을 읽어내려가며 사람이 염소처럼 팔려다니고, 자살하고, 학대당하며 성노예로 거래되고,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강간과 성폭행으로 인해 인권같은 건 바닥으로 추락하고 수치심과 모멸감을 넘어 남자의 성기가 공포를 낳는 무기로 생각되고 여성들은 아주 천천히 느리게 살해당하는 마치 지옥불을 통과하는 긴 터널에 함께 서있는 기분이 들게 한다.

최악의 이야기는 이미 읽었다고 생각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정말 바닥 없는 절망과 공포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나중에는 페이지를 넘기기가 두렵기까지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싶지 않은 일이거나, 너무 충격적이거나, 불편하고 혐오스런 진실은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성폭력과 강간은 특히나 그렇고 그 특성상 증거도 없을때가 많아 피해자가 그 일을 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으면 범죄가 성립되지도 않는다. 판결을 내리는 검사나 판사들도 주로 남자여서그런지 대량학살에 비해 성폭력을 중요하게 보지 않으며 오히려 피해 여성들이 화를 '자초했다'는 투의 말을 할때마저 있다고 한다. 절망적이다.

ISIS, 알카에다, 보코하람등 무장단체의 비인간적이고 상상을 뛰어넘는 극단적인 폭력성을 보면서 (특히 보코하람) 왜 이들이 이지경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생각을 안해볼 수 없었다. 이들에게는 심각한 수준의 빈곤과 문맹률, 기후 변화로 인한 작물 생산량 감소등으로 생존을 위해 전쟁을 하고 강탈하며 그 모든 표현법으로 극한의 폭력을 보여줬다. 이들은 살인과 학살, 파괴, 폭파를 자신의 종교적인 임무의 하나라고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고 더러운 손으로 여성의 작은 존엄까지도 잔혹하게 살해했다.

고향이 폐허가 되고 남편과 자식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살해되고 강간 당한다.(심지어 품에 있던 8개월의 아기도 살해한다) 하루 아침에 딸이 납치되고 목에 탄환을 두른 테러리스트 옆에 자신의 소중한 아이가 있는 모습을 비디오로 보며 제발 어떤 형태로도 괜찮으니 돌아오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어머니도 본다. 이게 지금 내가 살고있는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맞는지 계속 실감나지 않는다.

가늠할 수 없는 아픔과 상실의 고통, 내겐 평상시와 다름없는 오늘이 누군가에게는 죽지 못해 사는 지옥이라는걸 깨닫는다. 내가 이 나라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저들은 내가 될수 있고 내가 저들이 되어 전쟁 속에서 가족을 잃고 강간과 구타를 받고 있을 수도 있었다. 읽으면서 끊임없이 여성들에게 나를 이입하고 투영할 수 밖에 없었다.

여성학적인 관점을 넘어서서 끝에 가선 인감혐오가 올라온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남성이 여성에게 가한 비인간적인 끔찍한 범죄의 진실을 바라보며 인간의 존엄은 뭘까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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