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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환의 다시 만난 한국사 ㅣ 나의 두 번째 교과서 시즌3
정재환 지음, EBS 제작팀 기획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3월
평점 :
요즘 우리 역사를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차 만난 책이다. 어릴 때 국사, 세계사를 제일 좋아했던 학생이었지만 시간이 많이 흐르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특히 근현대사는 스치듯 지나가며 배운 세대라 다시 한번 배우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정재환 씨는 나에게는 개그맨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제2의 커리어를 멋지게 이어가고 있었을까?
30대 중반에 한글사랑에 빠져 2000년 한글문화연대를 결성하고 다시 학업을 이어가 결국 역사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니 대단하신 분이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책임연구원 및 한글문화연대 한국어 학교 교장 등으로 활동 중이라고 한다.
이번 책은 한국사에서 주먹도끼, 단군신화, 삼국통일, 팔만대장경, 고려청자, 훈민정음, 수원 화성, 갑신정변, 만민 공동회, 조선어학회의 10가지 핵심 장면을 통해 역사를 돌아본다. 역사란 결국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내용 중 와닿았던 내용 위주로 정리해 보았다.
1978년 연천군 돌도끼 발견으로 동아시아 지역 열등성이 깨지다.
1970년 대까지 모비우스 교수가 제창한 모비우스 라인(문화적 경계선을 기준으로 서쪽의 주먹도끼 문화권은 진보적이고, 동아시아 지역은 열등했다는 설)이 정설로 받아지고 있었단다. 이렇게 잘못된 학설을 깰 수 있었던 첫 역사적 발견이 바로 연천군 전곡리의 돌도끼 유적이다. 전곡리 주먹도끼는 30만-50만 년 전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2025년 현재 아시아 세계기록유산 최다 보유국이고, 전 세계로 따져도 네 번째로 많은 세계기록유산 보유국입니다. 이는 대한민국이 역사 이래 인류 공통의 유산으로 가치 있는 많은 기록을 생산한 나라이고, 그 기록 유산의 소중한 가치를 잘 지키고 보존해 온 나라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방문자가 전 세계 기준 3위에 올랐다. 이것은 단순히 K 문화 열풍이 아니라 한국의 기록 유산이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동방의 작은 나라가 가지고 있는 문화의 힘이 이다지도 크다니... K 컬처의 붐은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팔만대장경의 경판 수는 8만 1258장으로 경판을 모두 쌓으면 백두산보다 높고(3200미터), 길이로 이으면 60km가 된다고 한다. 5200만 자가 쓰여 있어 매일 8시간 읽어도 30년이 걸린다니 놀랍다. 700년 동안이나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것도 다 과학적인 기반을 토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란다. 아직 실물을 보지 못했는데 언젠가 합천 해인사에 꼭 한 번 가봐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책에는 고려청자를 되찾은 스토리가 그려져 있는데 몰랐던 사실이라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바로 고려청자 애호가이자 수집가였던 존 개스비라는 영국 변호사로부터 자산을 거의 투자해 사들이고 박물관을 만든 전형필 이야기다.
전형필은 1906년 종로 태생으로, 대대로 다이아몬드 수저였다.
증조부가 종 2품이었고, 아버지는 중추원 의관으로 수도권, 충청도 일대의 토지에서 수만 석을 추수하는 대지주였던 그는 24살에 만석꾼이 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부모로 받은 유산으로 불상, 그림, 고서적, 도자기 등 예술품을 모았고 개스비로부터 현재 국보로 지정된 청자 기린형 뚜껑 향, 국보 청자 오리모양 연적, 국보 청자 상감연지언양문 정병, 국보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국보 청자 참외 모양 병 등 20점을 매입하였다고 한다. 현재 이 작품들은 서울과 대구에 위치한 간송 미술관에 소장 중이다. 이런 선조들의 노력으로 우리가 지금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아직 감상할 수 있다니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정조의 수원화성은 아버지인 사도세자인 원침을 호위하기 위해 신도시 화성과 성곽을 건설했다.
놀라운 사실은 화성 건립은 당초 10년 계획으로 시작한 대역사였으나 놀랍게도 2년 9개월 만에 끝났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건립할 수 있었을까?
물론 정조가 과학적 고증을 통해 만들었던 거중기, 녹로 등의 기구들의 역할이 크기도 했지만 숨은 공로는 바로 정당한 임금 지급이었다고 한다.
정조는 백성의 살림살이, 민생을 돌보겠다는 확고한 의지로 모두 임금을 받았고, 특히 전문 인력들은 단순노동자보다 더 많은 임금을 주어 전국에서 일꾼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즉 신도시 화성 건조에는 정조의 목표인 '호호부실 인인화(집집마다 부유하게 하고, 사람마다 화락하게 하는 것)의 결과라는 것이다.
언어는 민족의 얼에 얼마나 큰 기둥이 되는 걸까?
우리는 언어가 곧 사고를 창조하는 틀이라는 걸 이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에 그렇게 한글 말살 정책을 펼쳤던 것이겠지.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님의 말씀이다.
주시경 선생은 언어와 국가를 공동체로 인식하고 1896년, 20세에 최초의 국문 신문 독립신문에 교보원으로 참여하기 시작하여 1897년 독립신문에 한문을 폐지하고 국문을 전용해야 하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횡서해야 한다는 <국문론>을 발표하였다고 한다. 이어 1908년 국어 연구회를 설립하고 나라가 망하자 제자 김두영, 권덕규, 이규영 등과 함께 '말모이' 편찬을 시작하였다.
조선어 사전 편찬은 1929년 각계 인사 108인을 규합해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해 1930년 철자법 제정에 착수하고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 1936년에는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발표했다. 하지만 40년 이후 독립운동 단체로 규정되며 모두 고초를 당하다 이윤재, 한징 등이 고문으로 옥사하기도 하였다.
광복 이후 풀려난 그들을 목격한 한 아이는 당시 들것에 실려오고 부축해서 나오는 이들의 모습이 마치 미라 같았다고 증언했다는데 더 놀라운 건 바로 다음날 안국동 불교 선학원에서 모여 학회 재건을 논하고 8월 25일 임시총회를 열어 조선어학회를 재건했다고 한다.
진짜 눈물이 난다. 우리말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깊었으면 죽을 고초를 당하고도 우리 국민을 위해 이렇게 희생하셨을까....
결국 1929년 시작한 조선어 사전은 1957년 10월 9일 한글날 마침내 큰사전 6권을 완간하는 위업을 이뤘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한글을 이렇게 편하게 쓸 수 있는 데는 모두 나라와 국어를 지키신 영웅들의 덕분인 것 같다.
얼마 전 종로에서 이회영 가옥에 갔다가 대대손손, 가족 모두 독립투사였던 걸 보고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내가 몰랐던 역사 속 위인들이 얼마나 많을까? 앞으로 역사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봐야겠다.
10가지 핵심 장면으로 대한민국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든 정재환의 다시 만난 한국사 리뷰였습니다.
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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