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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날들
조 앤 비어드 지음, 장현희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이 책은 독특하다.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모를 9개의 이야기가 끊어지듯 이어진다. 의식의 흐름대로 풀어내는 방식의 글은 익숙하지 않아 어지러운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순간에 몰입하여 그림 그리듯 묘사해 내는 그녀의 글은 여태껏 보지 못한 특유의 색과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뭐지? 이게 뭐지?" 하는 궁금증을 유발했다. 그리고 "아~ 이렇게도 글을 쓸 수 있구나." 하는 지극히 단순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비어드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생생해서 꼭 지금 일어나는 일인 듯 살아 숨 쉰다. 그녀와 그녀의 캐릭터(친구들, 낯선 사람들, 남편들, 살인자들, 오리들, 개들, 왜가리들) 사이의 경계는 그녀의 글과 독자 사이의 경계만큼이나 흐릿해서, 독자는 계속 그 경계를 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억의 힘이 누적되며 결국 독자 자신의 기억이 되는 것이다.
레이철 디워스킨, <로스앤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
미국의 에세이스트이자 소설가로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허물며 현대 산문 문학의 새 지평을 연 혁신적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셰리의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삶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아무 관련 없는 기억들이 하루에 한두 개씩 무작위로 떠오른다. 그 장면들은 뇌의 밑바닥에서 난데없이 나타나, 저프루더 필름처럼 강렬하고 고요하게 상영된다. 그녀는 그 장면들을 그냥 지켜볼 뿐이다.
59p
11일 후면 다 끝난다. 11일! 방 안에 혼자 남겨진 셰리는 끔찍한 슬픔에 신음한다. 이제 그녀는 불타는 배를 버리듯 자신을 버려야 한다. 세리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 상상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상상하기 위해서는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할 수 있는 최선은 자신이 떠나고 없는 지금의 세상을 그려보는 것, 하지만 그걸 그리는 사람도 여전히 그녀 자신이다.
100p
9개의 단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셰리는 말기 암에 걸린 셰리의 마지막 날들을 따라가고 있다. 암이 재발하자 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스러운 삶을 살아가던 셰리는 고통이 극한에 다다르자 가족과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죽음을 준비한다. 담담하게 삶의 끝을 향해 걸어가는 셰리의 모습과 흔들리는 내면이 잘 묘사되어 그녀의 선택을 지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나는 글쓰기는 몰라도, 읽는 건 잘 알았다. 그리고 논픽션 글쓰기 교육에 관해 얘기하자면, 솔직히 작가가 편집자나 선생님이나 다른 작가의 비평으로부터 배우는 건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글쓰기에 대한 배움은 출판된 작가들뿐 아니라 동료가 쓴 글을 읽는 데에서 온다. 읽은 것을 자신의 통찰력과 창의력을 발휘해 분석하고, 왜 그것이 성공적인 글인지, 또는 성공적이지 않다면 무엇이 부족한지 짚어내며 이루어진다. 지식은 그렇게 얻어진다. 느리고, 답답하며, 모호하고, 산만한 일이다. (중략)
모든 에세이, 모든 학술 강연, 모든 글쓰기 시도는 관찰과 세부 묘사를 통해 깊이가 생길 수 있고, 좋은 생각을 환기할 수 있으며, 우주 먼지와 발광하는 조각과, 어두운 영역을 내포할 수 있다.
178p
글은 이렇게 쓰는 거다. 글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며 기억과 이미지, 언어가 주도권을 잡게 두는 거다. 작가는 당신이니까 결정권은 당신에게 있고, 당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쓸 수 있다.
235p
이 글을 얼마나 길게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나의 생각을 다음 생각으로 잇고, 하나의 이미지를 다음 생각으로 이어가면 영원히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 (중략) 독자 또한 이야기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바란다. 이것은 단순히 사유하는 것이며, 집중된 사고다. 단어는 기억에 연결되고, 기억은 이미지에 연결된다. 그 이미지들은 서로 연결되어, 핵심에 있는, 아직은 흐릿하고 잡히지 않는 생각을 형성한다. 나는 그 생각을 배경에서 떼어내지 못한다.
242p
조 앤 비어드의 글은 생생하게 현장을 포착하는 묘사로 만들어진다. 그녀가 글을 통해 관찰과 세부 묘사의 중요성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책을 읽으면서 이것이 실제 사건일까?라는 궁금증이 생기지만 글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흐리지만 뚜렷하게 특정 이미지가 남는다.
그녀의 말대로 먼저 단어에 담긴 기억을 불러일으켜 이미지화한다. 이미지에서 연결되는 기억을 불러와 그림을 이어간다. 그러면 단어, 기억, 이미지가 이어져 한 편의 인상 깊은 글이 그려진다는 것이다.
언젠가 어느 날
너의 얼굴을 바라보면
축제의 날들이 남긴
슬프고도 사연 어린 흔적들을
발견하게 되었지
낸드 차두베디, <잔인한 축제의 시간>
9개의 에세이이자 소설을 읽고 나니 나면의 슬프고도 사연 어린 기억 속의 단어를 찾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세이를 쓰고 싶은 분들이 읽어보면 좋은 소설이자 에세이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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