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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들의 인문학
조이엘 지음 / 섬타임즈 / 2024년 5월
평점 :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 책 참 묘하다.
부제처럼 왼쪽에 '역사의 파편에서 현재를 읽다'라고 되어 있는데 정말 역사, 정치, 종교를 거침없이 넘나들면서 바른말을 해대는 터라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고 웃음이 파! 하고 터지기도 했다.
이 작가님 머지?? 하고 약력을 살펴보았다.
조이엘 작가
조이엘 작가 약력에서도 유머와 독특함이 담겨있다.
서울대 출신인데 많이 먹고 놀고 자면서 인생을 낭비했다고 한다. 그러다 인생책을 만나 독서인으로 바뀌었고 새로운 인생을 사셨다는데 그 '인생책'이 뭔지 참 궁금하다.
인생을 살면서 깨달은 건 1) 노안은 생각보다 빨리 온다 2) 고전보다 유익한 책이 많다 3) 사람의 운명은 인명재처, 아내에 달려있단다. 마지막 세 번째 깨달음이 참 마음에 든다.
지금 제주에 사시면서 글을 쓰신다는데 <1센티 인문학>등 인문학 책도 많이 내셨지만 <아내를 우러러 딱 한 부끄럽기를>을 쓰셨다고 한다. 그 딱 한 점은 뭘까?? 이 작가님, 참 궁금증을 유발하시는 분이다.
퇴계 이황에서 시작하는 이야기
총 164편의 짤막한 글들로 이뤄져 있는데 이 내용들이 단편적인 것들이 아니고 물 흐르듯 잘 이어져 있다.
갑자기 첫 스타트부터 신선했다.
퇴계 이황 어르신이 선조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사직서를 올리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임금과의 대화 후 경복궁 편전에서 읊은 시 한 소절에서 시작해서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의 가르침을 풀어내다 그의 가는 길을 현대 지리로 풀어 설명한다.
명동대로, 자택, 찐 서울과 그냥 서울, 한남동과 지금은 사라졌다는 저자도, 미사리, 경기도 양평, 여주까지 길과 이어지는 이야기도 재미나다.
"조선시대 서울(한성부)는 두 개의 지역으로 구분되었다. 4대 문과 4소문을 연결한 도성 안은 '찐 서울', 도성에서 4km 밖까지는 '그냥 서울'이었다.
그냥 서울은 찐 서울에 식량을 공급하는 근교 농업 지역(왕십리 등)이었고 상업이 번성했으며(서강, 마포, 용산), 도성 안에서 금지된 무속이 행해지는 해방구였다."(54p)
"한남역 교차로에서 응봉 삼거리까지 4.5km 도로 이름이 독서당로다. 독서당로 주변은 한강 조망이 예술이고 도심과 가까워 조선시대 돈 많은 '인사'들이 별장을 지어 쉬는 곳으로 유명했다. 그 전통을 이어받아 요즘 돈 많은 '인싸'들도 한남더힐에 모여 산다." (57p)
양평 마스코트가 청개구리인 이유
새롭게 알게되어 재미있었던 건 이괄의 난의 주인공 이괄네 집 이야기였다.
여주 토박이 이괄은 30대 서울 시장을 지낼 정도로 잘 나갔는데 아버지 말은 무조건 반대하는 청개구리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풍수지리에 빠져 본인이 용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열심히 공부를 했다고 한다.
양평 용문산 앞 떠드렁산에 거꾸로 묻히면 승천 확률을 100%로 확신했다고 하는데 죽기 직전 아들이 워낙 청개구리이니 고민하다 이렇게 유언을 남겼단다.
'떠드렁산에 묻을 것, 시신은 뒤집지 말 것.'
그러나 아들은 이번만큼은 그대로 따라서 난은 성공하지 못했다나 뭐라나?
그래서 양평의 마스코트가 청개구리라고 한다. 이제부터는 양평 마스코트 볼 때마다 떠드렁산과 이괄의 스토리가 생각날 것 같다.
역사 다시보기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 책을 읽으며 허균과 광해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허균은 홍길동전의 저자이자 조선시대 대표 문인으로 기억하고 있었고, 광해군은 군으로 강등되었지만 그래도 명나라와의 실리적 외교를 했던 왕이라 기억했었는데 다각도로 기록들을 현실에 맞게끔 재구성해 보여주니 인물이 입체적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요약하면 인성이 문제. 특히 허균은 입신양명을 위해 소위 말하면 댓글 부대를 운영하였다고 하니 말 다했다 싶다.
얼마 전에 창덕궁엘 다녀왔다. 창덕궁의 창과 궁궐 안을 보며 "예술적 감각이 상당하구나."하고 감탄만 했었는데 지금 보니 시기가 시기다.
왜군에 쫓겨 피난 갔다 돌아온 왕이 지내야 하니 창덕궁을 어려운 살림에도 창덕궁을 신축 수준으로 리모델링 했는데 집주인이 입주를 거부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후 경운궁 리모델링, 창경궁 중건을 했음에도 입주하지 않고 경덕궁과 인경국 신축을 지시하였단다.
이어지는 저자의 이야기에 빵 터졌다.
이쯤에서 광해군에게 묻고 싶은 것 두 가지.
"들어가 살지도 않을 궁궐을 왜 그렇게 지으셨어요?"
"가장 중요한 경복궁은 왜 폐허로 방치하셨어요?"
임금이건 대통령이건, 독재자들은 백성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에겐 우리 마음대로 추정할 권리가 있다.
17세기나 21세기나, 군주가 이상한 행동을 반복하는 이유는 네 가지 중 하나다.
-머리가 나쁘다.
-머리가 아프다.
-배후에 법사가 있다.
-부인 배후에 법사가 있다.
비선조직과 왕
왜 이런 일이 역사적으로 계속 반복되는지 모르겠다.
집권 2년 차이던 1609년, 경연을 거부하는 광해군에게 30대 중반 젊은 관료, 사간원 정언 김치언이 말 그대로 정언을 올린다.
"전하께서 저희들과는 토론할 생각이 없으시고 매일 궁궐 밀실에서 광핵관(광해군 핵심 관계자)만 만나시니 참으로 걱정입니다."
광해군이 발끈해서 대답하는데 참 광해스럽다.
"니가 봤어?"
경연은 임금과 신하들이 '공적으로' 소통하는 자리다.
광해군은 '사적 소통에만 몰입했다. 그가 소통한 부류다.
-비선조직 광핵관
-무당들
-김상궁
기억하지 않은 역사, 청산하지 않은 역사는 반복한다.
징글징글하게 반복한다.
과거 청산 요구에는 분노와 복수심이 끼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깔끔히 청산해야 하는 이유는, 청산하지 않은 과거는 어지간하면 돌아오는데 더 나쁜 모습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기억하지 않은 역사, 청산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참 마음을 울렸다.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고, 그 실수를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 않나.
최근 과거사를 다룬 소설들을 읽으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된다.
우리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지금이라도 잘 해나가기 위해,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아픈 역사라 할지라도 들여다보고 정리를 잘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사소한 것에 시작해서 사소하지 않은 메시지를 던지는 인문학 책이었다.
정치색, 종교색에 따라 호불호가 있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정치와 종교의 잣대로 이야기 하고 있지 않다. 정치와 종교 모두 사람에 대한 사랑이 기본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재미있고 유익한 인문학 강의를 들은 느낌이다.
이 책은 섬타임즈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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