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황홀
명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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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도라의 상자에서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던 희망.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절망적인 순간들을 어떻게든 견뎌내기 위해 꾸역꾸역 그 희망이란 것을 잡아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희망이 결국 나에게 붙잡힐 것인지 아닌지는 끝까지 알 수 없으리라. 눈의 황홀 이라는 예쁜 제목에 홀려 구입한  책, 이 책의 단편들을 하나 하나 읽을 때마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열심히 살아내는 삶을 보고 싶었기에.

 

표제작인 <눈의 황홀>은 꽃을 만드는  장인의 삶을 이어받은 여자, 장애를 가지고 치열하게 살아냈음에도 그 치열한 삶이 부끄러운 여자의 이야기다. 예술가의 삶과 여인의 삶에 대한 생각, 인간으로서 당연히 느끼게 되는 여러 욕망에 대한 생각들을 해 보았다. 이외에도 책 속에는 비극적인? 혹은 절망적인? 결코 녹녹하지 않은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있다. 바이러스가 창궐한 도시에서 이를 태우는 직업을 가진 남자, 억울한 누명을 쓴 아버지를 둔 소년,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자, 계속 변신해야 하는 흙덩어리 등. 그리고 신기했다, 난 분명 소설을 읽고 있는데, 그들이 옆에서 지나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이 참 따뜻했다. 결국 또 다시 살아가게 되는 여러 삶들을 통해 위로받은 걸까?

 

 해고된 언론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숲의 고요> 라는 작품에서 주인공은 남편이 잘라내는 목련 가지를 불편하게 바라본다.

 

  '죽어서 떨어진 것인지 누군가 잘라낸 것인지, 알 수 없다. 불필요하면 잘라야 한다. 필요해 의해 잘린 것들은 울화가 없을까. '

 

그러나 잘려진 가지처럼 현실에서 내쳐진 남편에겐 차마 말 할 수 없어 입을 다문다. 그런 그녀는 텃밭의 넘쳐나는 푸성귀를 몰래 땅에 묻어버리며 비죽 튀어나오는 잔혹함을 마주하기도 한다. 점점 무기력해지는 남편과 둔탁해 지는 현실에도 그녀는 수척했던 가지가 새 순을 돋우는 것처럼, 그 뿌리가 더 단단해진 것처럼 다시 삶의 의지를 붙든다.

 

모든 사람의 삶은 아름답다고 했다. 새삼, 책을 통해 그것을 깨닫는다.

"작살 끝에는 바다가 있고, 바다의 끝에는 계절이 있다."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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