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치하야 아카네 지음, 박귀영 옮김 / 콤마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참 부끄럽게도, 역시 표지에 이끌려 구매하게 된 책.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좋은 선택이었노라 스스로 칭찬하게 만들기도 한 책.

 

이 책은 소개글 그대로, 서로의 가슴에 그림자로 남는 여섯 남녀의 이야기가 짧은 단편들로 연결되어 있다. 5년이나 동거한 오래된 애인과의 결혼을 앞두고 혼란을 겪는 여자와, 뚜렷한 손자국만 남긴채 뛰어내린 남자. 일에 매여 아내와의 거리감을 좁히지 못하는 서툰 남자, 아내이고 엄마이지만 여자가 되고 싶은 또 다른 여자. 온 몸에 상처를 외로움처럼 달고 있는 여자와 자신의 사랑을 꺼내기가 두려운 남자. 한 남자에게 휴식같은 사랑을 주지만 정작 자신은 그 사랑을 소유할수 없는 여자. 각 이야기에서 모든 인물들이 관계를 맺고 있다. 불륜의 연인으로, 직장 상사로, 이웃으로, 잠시의 연인으로, 친구로. 그래서 분명 단편집을 읽었음에도 마치 긴 호흡의 중편 소설을 읽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야기는 각각 이들의 시점에서, 혹은 주변 인물의 시선을 통해 지극히 현실적인 외로움들을 참 서먹하게 풀어낸다. 각각의 인물들은 모두 우리처럼, 저마다의 사연을, 외로움을, 아픔을,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그리고 분명 각기 다른 이야기임에도 인물들의 감정은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결혼을 앞두고 모든 것이 불확실한 여자의 망설임과 두려움은 한 남자의 결핍된 삶과 묘하게 잘 어울렸고, 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방황하는 여자의 상실감은 무의미한 섹스와 자해를 선택한 여자의 삶에도 비슷하게 흐르고 있었다. 정말 푹 빠져들어 단숨에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다 읽고 잊어버리기 전에 부랴부랴 수첩을 꺼내 몇 개의 문장을 옮겨 적었다. 담백하고 짧지만 삶의 이면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곱씹어 봤을 것만 같은 작가의 말들, 아니 글들. 나도 두고두고 생각해 보고 싶기에.

허무하고, 아련하고, 그러면서도 뭉클한 이야기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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