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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평점 :
룰루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곰출판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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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보고있길래 그렇게 재밌나? 싶은 마음 반, 과학서 같은 이름 옆에 상실, 사랑, 질서 라는 부제를 보고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들어있는 건가 싶었던 마음 반으로 펼쳤다.
● 만듦새
오래된 동화책 같은 표지와 섬뜩한 삽화들이 각 단락을 뒤로 숨기고 독자들을 마주한다. 점점 서늘해지는 내용과 잘 어울린다.
표지에 영어가 한글보다 더 크게 자리했다. 원제를 살리고 싶었던 맘을 알겠다. 영어 제목이 좀 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느끼는 파괴력을 잘 담고 있다.
● 내용
속에서 정리가 되는 책은 아니다. 그냥 모든 문장이 뭉텅이로 나를 고양시키고 마지막에 터트리는 책이었다.
이 책의 분야는 의미없다. 알라딘에는 과학-기초과학, 과학-과학자의 생애 과학-생명과학 또는 에세이-외국에세이 에세이-자연에세이로 분류되어 있는데 사실 어느 곳에 넣어도 말이 된다.
따라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소화시켜야 할 책이었다.
이 책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 저자, 혼란, 질서, 분류, 물고기, 파괴되는 않는 것, 우생학, 노예제도, 과학적 사고, 비과학적 사과 등 여러 가지 키워드로 직조되어있다.
혼란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과 저자가 혼란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차이점은 평생 잘 피한 줄 알았던 조던은 혼란에 찢겼고 저자는 혼란한 채로 어찌저찌 가끔 웃으면서 살아간다.
저자는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 무너진 적 없어 보이는 데이비스 스타 조던에 집착한다. 그의 모든 책을 뒤진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은 초반에는 마치 끝없는 열정을 지닌 자처럼 묘사된다.
그 열정은 순수한 모습이었다가 병적인 집착인가? 하는 의심을 살짝 거쳐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는 철학적 사고를 지나 교만을 지나쳐 찌그러진다.
자신이 평생을 집착해 온 질서=물고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그는 괴상하게 비틀린 내면으로 죽는다.
생의 마지막에서 자신이 그렇게 자부한 자신의 일과 자신의 근본까지 틀렸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내가 읽은 그는 마치 머릿속에 속도를 멈출 수 없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 쉽게 정리하고 명명하는 것에 끌린 것은 아닐지 궁금했다.
(사실은 그가 충동성과 속도를 제어하는 것이 어려운 어떤 뇌질병 환자는 아니었을지 의심하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는 개념이 흥미로웠다. 슬픔을 이겨내는 것과는 다른 포기할 수 없는 어떤 것. 좀 더 원초적이고 소명에 가깝고 열망하는 어떤 것. 이런 단어는 매력적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의 무력함을 느낄때는 강박적인 수집이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완모식 표본에 관해서는 아주 중요한 규칙이 하나 있다. 만약 완모식 표본이 소실되어도 새로운 표본을 그 성스러운 유리단지 대체해서 넣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신모식 표본은 최초의 완모식 표본이 상실되었거나 파괴된 후에 그 종을 대표하는 표본 역할을 하도록 선택된 표본을 말한다. 신모직 표본은 완모식 표본보다 더 낮은 지위를 부여받는다. ”
이 책을 읽다보면 말이라는 게 또 뭘 그렇게 중요한가 싶지만, 과학자에게 시를 사랑하는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참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