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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천국 가는 날
전혜진 지음 / 래빗홀 / 2025년 4월
평점 :
김밥천국 가는 날 - 전혜진
뜨내기들의 도시, 역사가 오래된 곳이긴 하지만 조부모님 때부터 대대로 인천에 살았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전쟁 때의 피란민들, 공업단지로 직업을 구하러 왔던 사람들, 서울에 있는 직장에 다니면서 집값이 싼 인천에 집을 얻어 살게 된 사람들, 외국인도 많았다. 다양한 문화와 음식들이 뒤섞여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인천이다. 그리고 김밥천국은 바로 이 런 곳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 주안역 근처의 입시학원에 다니던 그 무렵의 김밥천국을, 어떤 사람에게 주안은, 성년을 맞이한 젊음이 주는 불온함과 흥분이 배어나는 곳이었다. 66-67p
인천 주안역 근처에 있던 ‘즉석김밥 김밥천국’이라는 가게에서 팔던 천 원 김밥, 500원 동전 두개로 배를 채울 수 있었던 김밥이다. 누구에게나 ‘김밥’이라는 음식이 갖는 상징성이 있을 것이다.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기 때문에 만드는 이의 정성이 부러 설명하지 않아도 눈에 보이고, 재료에 따라 맛이 달라지며 모양에 크기가 번거롭지 않게 손가락으로도 집어 먹을 수 있을 만큼 단순하고, 말마따나 ‘특별한’ 날에 주로 먹던 음식이다.
그런 김밥을, 단 돈 1천원에 먹을 수 있었던 곳.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어떤 시절의 내가 자정 무렵 주린 배를 잡고 들어서 라면과 김밥을 시켰던 그 순간으로 돌아갔다. 도토루 커피와 롯데리아 데리버거, 남포동 개미집과 이승학 돈가스… 어떤 시절의 나에게 나이테처럼 짙게 새겨진 음식이 있다. 그 중 김밥천국의 음식은 다양한 음식의 종류만큼 나의 기억속에서도 다양한 추억을 남아있다.
소설은 메뉴판같은 차례를 시작으로 김밥천국의 문을 열고 들어가 치즈 떡볶이 부터 오징어 덮밥, 쫄면을 끝으로 그 시절의 추억을 한아름 안겨다 주었다. ‘고작 김밥천국’, ‘하다못해 김밥천국’처럼 김밥천국이라는 식당을 설명하는 수식어는 볼품없다. 그것이 이 소설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대체되어 읽혔는데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낮아진 존재를 뜨끈한 국물과 고소한 냄새로 위로해주는 곳이 바로 김밥천국의 정체성이 아닐까 한다.
그 따뜻한 한끼로 오늘을 위로하고 내일을 기꺼이 맞이할 수 있었던 무수한 청춘들에게 그 시절의 김밥천국은 말 그대로 천국(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자유롭고 편안한 곳 - 네이버 어학사전)이었을 것이다. ‘무려 김밥천국’이 있어 그 시절의 나도 많은 위로를 받았다. 순간 속에 무심히 지워졌던 그 시절의 나를 추억할 수 있게 해주어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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