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의 재구성 - 히트하는 영화의 진실 혹은 거짓
김희경 지음 / 지안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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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담당기자를 했던 저자가 미국에서 1년간 영화의 비즈니스적 측면에 대해 공부하면서, '도대체 어떤 영화가 히트할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자료를 모아(인터뷰 포함) 쓴 책이다. 헐리우드에선 '(영화가 히트할지 안 할지는,)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뭐 이건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닌가?  

어떤 영화가 히트할까? 답은 초반(개봉 1주일)에 붐을 일으키고, 입소문을 통해 퍼져나가야 하는 영화-라는데, 이건 사실 답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럼 곧바로, '그럼 어떤 영화가 초반에 붐을 일으키고 입소문을 타는데?' 라고 되물을 거고, 거기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어렴풋하게나마 힌트가 될 수 있는 건, 1.어떤 영환데? 라는 질문에 한 줄로 대답이 가능한 영화 2.모든 연령대를 만족시키는 영화-라는 정도. 저자는, 요즘은 영화의 성공과 실패가 단지 그 영화에만 달려있는 게 아니고 '극장'에도 많이 좌우되며, 영화가 점점 문화가 아니라 레져, 예술이 아니라 상품이 되어 간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님을, 책 말미에서 '픽사 스튜디오' 의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 이제까지 유일하게 100% 성공을 보여준 픽사 스튜디오의 비결은 엄청난 자본이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스타의 몸값이 영화의 성공과 별개로 천정부지로 치솟고, 그런 스타들조차도 매니져와 기획사라는 산업체 속에서 움직일 뿐이고, 일단 성공하면 비숫비숫한 영화가 양산되어 서로를 갉아먹게 되고, 우리나라의 경우 허접한 시나리오에도 관객이 너무나 너그러운 것 등 영화의 발전과는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점점 많아지지만, 이야기와 환상, 그리고 집단경험을 파는 영화가 앞으로도 쉬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또 헐리우드가 망하지 않으려면 소금 역할을 하는 마이너(인디펜던트 영화들)의 역할이 필수지만 이젠 그 둘의 경계도 흐려져가고 있다는 점 역시 영화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것 같다.(유튜브가 영화를 대신할 수 없을 것이므로) 

이 책은 영화의 흥행에 대한 책이지만, '컨텐츠가 아니라 컨텍스트가 문제다'라는 저자의 주장은, 요즘 같이 읽었던 '과학과 대중이 만날 때'의 메시지와 똑같은 것이다. 그건 아마도 다수의 대중을 상대로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메시지가 아닐까? 나도 수업을 정리할 때, '오늘 수업에서 제일 중요한 건 바로 이거야-' 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게 2개 이상을 넘어가면 안된다. 또 단원을 정리할 때도 마찬가지로 가장 중요한 1~2개 개념이나 문장으로 정리한다. 중학교 3년 동안 한 과목에만도 수 십개의 과목이 있을 텐데, 한 과목당 1개의 내용만 잊지 않아도 충분하지 않을까? 아니, 그 이상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컨텍스트가 중요하다는 말은, 학생들이 과연 수업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하는가를 알고 그것을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는 말도 되는데, 내 경험으로 보더라도 45분 내내 계속되는 지식의 전달은 절대 사절이다. 그럼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30분은 놀고(긴장을 푸는 시간) 15분 정도만 공부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 시간의 핵심적인 내용은 그 시간이면 족하다. 나머지 시간은? 뭔가 참여의 경험을 만들고, 머리를 굴리는 경험을 권장하고, 선생과 학생 간에 커뮤니케이션을 함으로써 수업이란 게 죽어있는 게 아니고 살아있는 거라는 걸 느끼게 하고--. 어디까지나 나의 바램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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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대중이 만날 때
브루스 르원스타인 외 지음, 김동광 옮김 / 궁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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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학진흥협회  '대중의 과학과 기술 이해 위원회'가, 과학커뮤니케이션이라는 주제로 연 워크숍에서 발표된 내용을 모은 책인 듯 하다. 그 워크숍에는 신문기자, TV다큐멘터리 제작자, 과학관 전시기획자, 과학클럽 조직자, 기업과 대학의 정보 책임자 및 연구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고 하는데,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말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가 중요하다', 즉, 수용자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령, TV에서 과학다큐를 보는 사람들이 그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특히 어떤 것을 궁금해하는가,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용어들을 잘 알고 있는가, 감각적으로 받아들여지고 기억에 남는가 등이 중요한데, 이는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지레짐작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처럼 보이는데도, 아직까지 제작자나 교육자들은 자신들이 말할 내용에만 정성을 쏟았지 수용자에 대한 이해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보기에 일반 '대중'들은 생각외로 과학뉴스에 관심이 많지만 TV나 신문 등을 통해 전달되는 과학에 대한 내용이 너무 어렵거나 실생활과 떨어져있어서, 제작자들의 생각만큼 많이 수용하지 못하며 계속해서 '과학은 어려운 거니까 내가 감히 참여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수업을 하며 느낀 점도 이것과 똑같다. 나는 새로운 단원에 들어가기 전에 '왜 학생들이 이것을 알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데, -물론 이유가 없어도 시험을 위해 배워야 하는 암울한 현실이기는 하지만- 이 질문이야말로 그 단원의 핵심이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확실히 할 수 있게 되면 단원의 가장 중요한 개념을 이해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왜 그것을 알아야 할까? 그것이 과학적으로 중요한 개념이라서? 는 절대 아니다. 내가 보기에 이유는 크게 2가진데, 하나는 '그것을 알면 제 때 병원에 갈 수 있고, 다이어트를 제대로 할 수 있고, 음식이 변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고, 에어콘을 놓는 최적의 자리를 알 수 있기 때문. 즉, 첫째는 생활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그것을 알면 수많은 다양한 현상들을 몇 개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신기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기 때문-인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목표다. (첫 번째 이유만 제대로 전해져도 상당히 성공적인 수업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정도를 훨씬 앞서나간다. 과학의 단순함에 대한 아름다움을 넘어, 과학이 얼마나 불확실(예측불가능)한 것인지, 과학자들은 위험과 무지로부터 세상을 수호하는 전사가 결코 아니라는 것(과학과 관련된 문제라고 하는 것에 대해 항상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 이런 것들까지도 제대로 커뮤니케이션 되어야 한다는 거다.  

본인들은 불만이 많지만 내가 보기엔 부럽기만 하다. 우선, 잘 못 한 사례라고 들고 있는 경우들 조차도 우리나라에선 과연 그렇게라도 할까 싶은 것들이 많고, 또한 과학과 관련된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이렇게 한데 모여 워크샵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렇다. 제대로 활용되고 있진 않지만 어쨌든 제대로 만들어진 과학프로그램들도 있다. 경기장보다 과학관 가는 사람들의 수가 (단체든 아니든, 자의든 타의든) 더 많다는 것도, 정치나 연예보다 과학가사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도 놀랍다. 하긴, 10년도 더 전에 'What makes science cool?'이라는 기사가, 우선은 제목이 눈에 번쩍 띄어서 번역했던 적이 있는데, 정말 솔직하게 써놓았더랬다. 과학을 cool하지 않게 만드는 첫째 이유는 과학교사들이 과학을 cool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누가 용감하게 이렇게 쓸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 앞서가는 그네들이 분석한 결과도, 결국은 내가 수업하며 느낀 것과 다를 바 없으니, 그리고 수용자 이해라는 것은 각각 제 나라마다 다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니 그 점에선 참 평등하다. 다만 부러운 것은 그들은 한 교실에 있는 학생 수가 우리보다 훨씬 적다는 것. 둘 다 (미국, 영국) 영어를 쓰는 국가니 특정 타깃(가령 진화생물학을 좋아할만한 독자)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를 만들어도 수지가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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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와 구더기 -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 현대의 지성 111
카를로 진즈부르그 지음, 김정하.유제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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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앗간 주인이 당시의 성직자계급에 반하는 우주관, 계몽적인 종교관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를, 그가 읽은 책과 당시의 사상을 두루 살펴보며 추적해가는 책. 말로만 듣던 '미시사'라는 게 도대체 어떤 건지 궁금해서 사 본 책인데, 이렇게 하는 거였구나. 일단은 분석 대상이 된 방앗간 주인의 생각 자체가 흥미롭고 나름 꽉 짜인 체계를 지니고 있어 계속해서 그의 말을 듣고 싶어진다. 당시의 이단심문관들도 그래서 계속해서 질문을 하고 긴 대답을 듣고자 했으리라. 또 번역을 잘해서인지 당시의 말투일 것이라고 생각되는 말투로 되어 있어 상당히 현장감이 느껴진다. 옮긴이의 말처럼 이 사람의 이러저러한 주장들이 과연 어디서 나왔는지를 추적하는 과정은 마치 추리소설을 방불케한다. 학술서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저자는 당시에는 소위 민중들이 글도 몰랐고 그들에 대한 기록도 별로 없으며 설령 글을 읽었다 하더라도 진지한 책이 아니라 통속적인 글이나 읽었기 때문에 민중의 문화는 지배계급의 문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반기를 든다. 그렇다고 반대로 민중의 적극적이고 독립적인 어떤 대항 문화가 꼭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상황과 맥락, 그리고 개성을 가진 살아있는 인물의 주위를 잘 탐색하여, 특히 지배계급과 민중의 틈새에 있었던 한 인물을 자세히 들여다봄으로써 실체없는 평균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을 엿보자는 것이다.  

요새 같이 읽었던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의 저자도 과학논문 형식에 대해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정형화되고 깔끔하게 정리된(실수와 에둘러가기, 오류가 다 제거된) 서술을 통해서는 실제과학의 모습을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정량화하려하고 정리하려하고 거대한 이론 몇 개에 역사를 쑤셔넣으려하는 것을 환원주의라 부를 수 있다면, 두 저자 모두 환원주의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환원주의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꼭 그런 방법만 써야 되는 건 아니지. 이렇게도 해보면 그 전에 몰랐던 면을 볼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거다.  

방법론적으로 누가 우세하고 효율적일지는 각 분야의 학자들이 알아서 할 것이지만, 어쨌든 그 분야에 문외한인 나처럼 평범한 독자에게는, 구체적이고 이야기식으로 쓴 이런 식의 역사이야기가 더 재밌는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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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 일본 문화 - 동경대 특별 강좌
이토 아비토 지음, 임경택 옮김 / 소와당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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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우리나라보다 중앙집권화가 늦게 되어서인지, 일본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농부로 사는 게 아니라 산촌에서는 산촌대로, 떠돌이 어부는 떠돌이 어부대로 다르게 삶을 살았고, 그런 다른 모습들이 '비정상'이 아니라 삶의 다양한 방식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조직문화, 튀면 안 된다고 흔히 말해지는 것들도, 이에(家)의 문화라는 점에서 보면 좀 달라 보인다. 개인보다 이에가 우선한 것은 사실이나, 그 이에는 우리나라의 집안처럼 폐쇄적이고 불변인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외부 사람이 대를 이을 수도, 아들이 아니라 딸이 이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즉, 자기가 그 이에의 문화가 맘에 안 들면 나가면 되는 것이다. 속을 알 수 없는 입에 발린 소리? 그건 다시 보자면 상대방에게 무안을 주지 않고 체면을 살려주는  매너일 수도 있다.  

일본은 말이 아니라 물건을 중요시하는 사회라 한다. 말로 고맙다는 건 쓸데없고 물건을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말은 오히려 적을수록 좋다) 기술을 익히는 것도, 말은 필요없이 실제 행동 하나하나를 아주 세밀히 배워야 한다. 그러다보니 추상적인 개념 같은 게 들어설 여지가 없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말로 다 해먹는다'(좀 나쁘게 말하자면) 미안함을 표시할 때도, 그 미안함의 원인을 고치는 게 아니라 말로 다 때운다. 고통받는 사람들이 물건(집, 음식, 돈)이 없는 것은 모른 척하고 '선진 한국'이니 '경제 부국'이니 하는 아무 쓸데없는 구호로 다 덮어버린다. 또 일본은 사람이 아닌 다른 생물을 인간과 크게 다르다고 보지 않았다고 하는데 요즘말로 하자면 전일적 관점, 시스템적인 사고다. 그래서 나무 한 그루를 베면 반드시 어린 한 그루를 다시 심는다든지 물길이나 돌길을 이유없이 함부로 바꾸지 않았다고 하는데,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정말로 그런 분위기라면 우리나라의 4대강 같은 무리한 계획은 아마 나오기 힘들 것이다. 

라이프사이클에 대해 얘기하면서, 우리나라는 가령 교수들이 환갑을 넘으면 스스로 나이를 의식해 학문적 활동에 소극적이 되거나 그냥 노인취급을 받는 반면(겉으로는 노인을 공경한다면서 속으로는 쓸모없는 귀챦은 대상으로 여기는) 일본은 노인이 되어서도 일을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는 대목에서도 부끄러웠다. (실제로 이번 오사카 여행에서도 느꼈던 바다. 머리 하얀 운전사, 머리 하얀 주방장, 머리 하얀 역무원, 머리 하얀 카페주인, 머리 하얀 청소원 등 어딜 가나 일하는 노인이 많았다. 노인들의 태도도 당당하고 활기찼다.)     

다원주의의 존중, 말보다는 물건(행동), 공적, 법적인 라이프사이클에 많이 구애받지 않는 것, 모두가 부러운 문화다. 어쩐지 점점 일본 사대주의자가 되어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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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특별한 동물 친구들 - 소년 제리가 들려주는 지중해의 작은 동물들 이야기
제럴드 더럴 지음, 김석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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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을 좋아하는 소년이, 생물이 풍부한 지중해에서 보낸 5년간의 경험을 어른이 되어 회상하며 쓴 책이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거미와 전갈과 거북이, 딱정벌레와 사마귀와 갈매기가, 반딧불이와 고래와 게가 튀어나온다. 그들은 모두 저마다의 개성을 지니고 소년을 무서워하지 않고 제 성질대로 살아간다. 동물배우들만 화려한 게 아니다. 개성이 무지 강한 형과 누나, 허용적이며 담대한 과부인 어머니, 어디 연극에서 튀어나온 듯한 그리스 사람들-, 모든 페이지가 색채감 있고 화사하고 세밀하며 그러면서도 소박하고 시적이다. 

소년의 눈에는 모든 생물이 개성과 멋을 가진 인간처럼 보이는 듯하다. 그들은 말하고 노래하고 싸우고 자존심을 세우고 고집을 부리고 장난을 건다. 무너져가는 회벽, 이끼낀 자갈 밑, 바위와 파도가 섞이는 바닷가, 논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습지, 올리브나무 숲, 심지어는 자기의 침대조차 소년에게는 각각 하나의 세계가 된다. 그는 운이 좋게도 자신을 이해하고 관심을 공유할 수 있는 좋은 가정교사를 만나 학문의 세계와 동물의 세계를 연결시킬 수도 있었다. 그리고 길길이 날뛰면서도 결국은 다 받아주는 예술적 끼가 가득한 형제들과, 한없이 포용적인 방파제같은 엄마가 있었다. 그리고 직접 언급은 없지만 아마 돈도 무지 많았던 것 같다.(아주 쉽게 이사도 가고 배도 사고 생일 선물도 말 그대로 한 보따리 씩 준다. 현미경도 척척 사준다) 

저자는 결국 동물보호 운동가가 되었다는데, 이 책은 교훈이고 뭐고가  다 필요없다. 책장을 펼치면 아름다운 지중해의 4차원 세계가 펼쳐진다. 이 책 덕분에 배경이 되었던 그 섬이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도 꼭 가보고 싶다. 유리병에 채집을 하고 보트로 탐험을 하고 물뱀과 전갈을 손으로 잡을 순 없겠지만, 누구든 무장해제시키고 어떤 일도 가능하게 만든다는 지중해의 바람을 맡으며 올리브 숲과 해안가의 동물들을 몇 가지라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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