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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대중이 만날 때
브루스 르원스타인 외 지음, 김동광 옮김 / 궁리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미국과학진흥협회 '대중의 과학과 기술 이해 위원회'가, 과학커뮤니케이션이라는 주제로 연 워크숍에서 발표된 내용을 모은 책인 듯 하다. 그 워크숍에는 신문기자, TV다큐멘터리 제작자, 과학관 전시기획자, 과학클럽 조직자, 기업과 대학의 정보 책임자 및 연구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고 하는데,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말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가 중요하다', 즉, 수용자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령, TV에서 과학다큐를 보는 사람들이 그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특히 어떤 것을 궁금해하는가,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용어들을 잘 알고 있는가, 감각적으로 받아들여지고 기억에 남는가 등이 중요한데, 이는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지레짐작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처럼 보이는데도, 아직까지 제작자나 교육자들은 자신들이 말할 내용에만 정성을 쏟았지 수용자에 대한 이해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보기에 일반 '대중'들은 생각외로 과학뉴스에 관심이 많지만 TV나 신문 등을 통해 전달되는 과학에 대한 내용이 너무 어렵거나 실생활과 떨어져있어서, 제작자들의 생각만큼 많이 수용하지 못하며 계속해서 '과학은 어려운 거니까 내가 감히 참여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수업을 하며 느낀 점도 이것과 똑같다. 나는 새로운 단원에 들어가기 전에 '왜 학생들이 이것을 알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데, -물론 이유가 없어도 시험을 위해 배워야 하는 암울한 현실이기는 하지만- 이 질문이야말로 그 단원의 핵심이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확실히 할 수 있게 되면 단원의 가장 중요한 개념을 이해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왜 그것을 알아야 할까? 그것이 과학적으로 중요한 개념이라서? 는 절대 아니다. 내가 보기에 이유는 크게 2가진데, 하나는 '그것을 알면 제 때 병원에 갈 수 있고, 다이어트를 제대로 할 수 있고, 음식이 변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고, 에어콘을 놓는 최적의 자리를 알 수 있기 때문. 즉, 첫째는 생활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그것을 알면 수많은 다양한 현상들을 몇 개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신기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기 때문-인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목표다. (첫 번째 이유만 제대로 전해져도 상당히 성공적인 수업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정도를 훨씬 앞서나간다. 과학의 단순함에 대한 아름다움을 넘어, 과학이 얼마나 불확실(예측불가능)한 것인지, 과학자들은 위험과 무지로부터 세상을 수호하는 전사가 결코 아니라는 것(과학과 관련된 문제라고 하는 것에 대해 항상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 이런 것들까지도 제대로 커뮤니케이션 되어야 한다는 거다.
본인들은 불만이 많지만 내가 보기엔 부럽기만 하다. 우선, 잘 못 한 사례라고 들고 있는 경우들 조차도 우리나라에선 과연 그렇게라도 할까 싶은 것들이 많고, 또한 과학과 관련된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이렇게 한데 모여 워크샵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렇다. 제대로 활용되고 있진 않지만 어쨌든 제대로 만들어진 과학프로그램들도 있다. 경기장보다 과학관 가는 사람들의 수가 (단체든 아니든, 자의든 타의든) 더 많다는 것도, 정치나 연예보다 과학가사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도 놀랍다. 하긴, 10년도 더 전에 'What makes science cool?'이라는 기사가, 우선은 제목이 눈에 번쩍 띄어서 번역했던 적이 있는데, 정말 솔직하게 써놓았더랬다. 과학을 cool하지 않게 만드는 첫째 이유는 과학교사들이 과학을 cool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누가 용감하게 이렇게 쓸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 앞서가는 그네들이 분석한 결과도, 결국은 내가 수업하며 느낀 것과 다를 바 없으니, 그리고 수용자 이해라는 것은 각각 제 나라마다 다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니 그 점에선 참 평등하다. 다만 부러운 것은 그들은 한 교실에 있는 학생 수가 우리보다 훨씬 적다는 것. 둘 다 (미국, 영국) 영어를 쓰는 국가니 특정 타깃(가령 진화생물학을 좋아할만한 독자)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를 만들어도 수지가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