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와 구더기 -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 현대의 지성 111
카를로 진즈부르그 지음, 김정하.유제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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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앗간 주인이 당시의 성직자계급에 반하는 우주관, 계몽적인 종교관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를, 그가 읽은 책과 당시의 사상을 두루 살펴보며 추적해가는 책. 말로만 듣던 '미시사'라는 게 도대체 어떤 건지 궁금해서 사 본 책인데, 이렇게 하는 거였구나. 일단은 분석 대상이 된 방앗간 주인의 생각 자체가 흥미롭고 나름 꽉 짜인 체계를 지니고 있어 계속해서 그의 말을 듣고 싶어진다. 당시의 이단심문관들도 그래서 계속해서 질문을 하고 긴 대답을 듣고자 했으리라. 또 번역을 잘해서인지 당시의 말투일 것이라고 생각되는 말투로 되어 있어 상당히 현장감이 느껴진다. 옮긴이의 말처럼 이 사람의 이러저러한 주장들이 과연 어디서 나왔는지를 추적하는 과정은 마치 추리소설을 방불케한다. 학술서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저자는 당시에는 소위 민중들이 글도 몰랐고 그들에 대한 기록도 별로 없으며 설령 글을 읽었다 하더라도 진지한 책이 아니라 통속적인 글이나 읽었기 때문에 민중의 문화는 지배계급의 문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반기를 든다. 그렇다고 반대로 민중의 적극적이고 독립적인 어떤 대항 문화가 꼭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상황과 맥락, 그리고 개성을 가진 살아있는 인물의 주위를 잘 탐색하여, 특히 지배계급과 민중의 틈새에 있었던 한 인물을 자세히 들여다봄으로써 실체없는 평균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을 엿보자는 것이다.  

요새 같이 읽었던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의 저자도 과학논문 형식에 대해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정형화되고 깔끔하게 정리된(실수와 에둘러가기, 오류가 다 제거된) 서술을 통해서는 실제과학의 모습을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정량화하려하고 정리하려하고 거대한 이론 몇 개에 역사를 쑤셔넣으려하는 것을 환원주의라 부를 수 있다면, 두 저자 모두 환원주의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환원주의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꼭 그런 방법만 써야 되는 건 아니지. 이렇게도 해보면 그 전에 몰랐던 면을 볼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거다.  

방법론적으로 누가 우세하고 효율적일지는 각 분야의 학자들이 알아서 할 것이지만, 어쨌든 그 분야에 문외한인 나처럼 평범한 독자에게는, 구체적이고 이야기식으로 쓴 이런 식의 역사이야기가 더 재밌는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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