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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 만든 세상 - 젊은 세대를 위한 단 한권의 디자인 이야기 ㅣ 공학과의 새로운 만남 20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문은실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완벽한 디자인은 없다, 그리고 완벽한 디자인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잘 적응한다- 이 책의 주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디자인은 당시의 기술 수준, 생활방식, 사람들의 기대치, 그리고 경제적 비용 등의 타협의 결과라는 것. (제목 번역이 이상한데, 원제는'왜 완벽한 디자인은 없을까'다)
마트의 동선은 최대한 많이 팔기 위한 (소비자가 물건들을 많이 보고 충동구매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판매자와 최대한 빨리 사기 위한 소비자의 타협의 결과, 칫솔 손잡이의 모양은 인체공학적 편의성과 이미 있던 칫솔보관대 모양과의 타협의 결과, 식사 시 메뉴선택은 최선을 선택하고픈 마음과 조급한 시간의 타협의 결과, 전화기 자판은 미학적인 면과 기술적인 면의 타협의 결과, 종이봉투를 밀어낸 비닐쇼핑백은 편의성, 견고성, 비용 등의 타협의 결과 등등
저자는 '디자인'이라는 말을, 보통의 어법보다 훨씬 넓게, 다시 말해 '모든 선택의 순간에 고려하는 모든 것들' 정도로 보고 있어서,(예를 들어, 식사할 때; 어느 식당에서, 어느 쪽 의자에 앉아, 무얼 먹을까? 고기는 어느 정도로 익히고? ) 저자의 어법을 따르면 아무 데서나 아무 것에나 다 '디자인'이란 말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어떤 행동 또는 결정은 다 타협의 산물'이라는 결론이 나오는데, 이 말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하고도 광범위한 말이어서, 책의 매력이 명확히 다가오질 않는다. 가령, '완벽한 의자는 있을 수 없다, 키가 다 다르고 엉덩이의 살집도 다 다르기 때문- 등의 말은 너무 방어적이다, 차라리 그런 '상황'과 관계된 것들은 빼버리고, 나름 완벽한(완벽에 가가운) 디자인이라 칭해지는 몇몇 물건들(손전등, 종이컵, 오랄B 칫솔, 만능테이프, 야채껍질 벗기는 칼, 허먼 밀러의 사무용 의자 등)에 이야기의 초점을 맞추는 게 더 나을 듯 했다. 그런 일상용품들의 탄생과 몰랐던 과거의 모습, 또 사람들이 똑같은 물건을 얼마나 다양한 용도로 쓰는가 등을 보는 것은 꽤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디자인이란 건 없다, 다만 최선의 디자인 일 뿐이다-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비판적 시각이 좀 더 필요하지 않나 싶다. 저자가 말한 최선의 디자인이란 주로 소비자의 인기에 의해 결정되는 듯 한데, 이는 소비자들이 '최선'의 디자인을 선택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결코 최선이 아닌데도 소비자들에게 꾸준히 인기있는 것들이 과연 없을까? 몸에는 안 좋으면서도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는 수많은 안 좋은 과자들(건강을 버리고 순간의 쾌락을 선택한 것이 최선?), 사용가치에 비해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 보이는 소위 명품들(한 달 월급을 가방 하나와 맞바꾸는 것이 최선?), 이런 것들에 대해 저자는 뭐라고 할까? 미디어의 세뇌작용에 너무나 쉽게 넘어가버리는 소비자들 텩시 타협의 디자인을 선택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