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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넬레스키의 돔 -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대성당 이야기
로스 킹 지음, 이희재 옮김 / 세미콜론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피렌체라고? 꼭 가서 브루넬레스키의 돔(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을 봐야지. 그 속의 계단들도 올라가서 창 밖 풍경을 봐야지-. 이 책을 덮으며 생긴 결심 하나. 나에게 확실한 여행지를 정해준 세 번 째 책이다. (첫 번째는 '숲 속 수의사의 자연일기'인데, 책을 읽고 홋카이도를 다녀오고야 말았다. 두 번째는 '런던자연사박물관'으로, 내년 겨울이 목표다)
이탈리아가 여러 공화국으로 나뉘어 있던 1296년 피렌체 산타마리아 대성당의 주춧돌이 놓여졌다. 하지만 당시 그것을 설계한 사람은 공학적 가능성은 별로 염두에 두지 않았나보다. 그저 후일 기술이 더 발달할 때를 기다리며 엄청나게 거대한 돔을 그려만 놓았다. 1418년에 돔을 어떻게 올릴지 설계안이 공모에 부쳐지고, 필리포 브로넬레스키라는 금세공사가 당선된다. 돔을 쌓아올리는 것은 참으로 지난한 과정이었다. 큰 무게를 옆으로 분산시키기 위한 부벽을 꼴사납다하여 거부하고, 당시엔 당연했던 나무 비계도 사용하지 않고, 무거운 돌을 올리기 위한 기중기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위험한 작업장을 위한 엄한 규율을 만들어 거의 사고 없이 일을 마치고, 경쟁자들의 모략도 물리쳐야했다. 중간중간 전쟁이 일어나 자재와 노동력이 끊어지기도 하고, 재료를 먼 곳에서 운반하던 배(이 역시 자신이 직접 설계한)가 가라앉아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무사슬과 돌사슬(돔이 옆으로 퍼져 주저앉는 것을 막아주는), 제각각 다른 모양의 벽돌, 내벽과 외벽 사이 아홉 개의 수평 테두리, 반원형이 아닌 첨두형의 꼭대기 부분 등을 사용한 브루넬레스키의 돔은 결국 성공했고 1436년 드디어 헌당식을 가졌다.
이 이야기는 모두 사실에 바탕을 두고 씌어진 것이라는데, 저자의 글솜씨가 워낙 탁월하다. 브루넬레스키라는 개성강한 주인공은 물론, 그의 경쟁자인 로렌초 기베르티, 돔 공사를 주관하고 있는 사업단 사람들, 일꾼들, 공사가 진행중인 것을 바라보는 주변사람들이 숨결이 바로 옆에서 느껴지고, 한층한층 올라가고 있는 돔의 모습도 눈 앞에 보이는 듯 하다. 당시 교회가 '위용'을 얼마나 중시했는지, 멋진 건물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준비하고 투자하는지, 어떻게 하여 '걸작'이 태어나는지를 생생히 알 수 있었다. 요즘과 같은 빨리빨리 시대, 빨리 짓고 빨리 허물어 버리는 천박한 1회용품의 시대, 예술이 상품이 되어 버린 시대, 이미 똑같이 만들어진 조잡한 부품들을 조립만 하여 뚝딱뚝딱 짓는 시대에서 보자면 하염없이 늘어지는 기약없는 작업이었건만 결과는 영원한 인류의 보물로 남을 브루넬레스키의 돔-. 이탈리아가 패션의 본고장인 것도 이런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저번에 '치즈와 구더기'라는 미시사 책도 참 재밌게 읽었는데, 저자들의 글솜씨도 글솜씨려니와 이탈리아라는 나라에 대한 환상이 점점 생겨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