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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불투명해도 괜찮아, 내가 선명하니까
릴리 지음 / 모티브 / 2026년 10월
평점 :
“낯선 나라에서 부딪히고 적응하며 살아온 시간들이 모여, 어디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가 되었다.”
미래가 불투명해도 괜찮다니. 그것도 내가 선명하다는 이유로. 어떤 시간을 살아온 사람이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미래가 불투명해도 괜찮아, 내가 선명하니까'는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에서 8년 가까이 생활한 저자의 이야기다. 아름다운 풍경이나 특별한 여행보다 그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겪었던 소소하고 현실적인 일들이 더 눈길을 끈다.
중고차를 구입하고 살 집을 찾아다니는 이야기들. 말로 하면 간단하지만 낯선 나라에서 이 모든 일을 직접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만만치 않게 느껴진다.
특히 자동차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친구의 도움으로 중고차를 구입하고, 사고를 겪은 뒤에는 보험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뉴질랜드에서는 계절에 따라 중고차 가격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외국에서 산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은 순간이 많다. 여행할 때는 어디를 구경할지 고민하지만, 그곳에서 살아야 한다면 당장 탈 차와 머물 집, 생활비부터 걱정해야 한다.
일자리를 구하는 장면도, 매니저를 직접 찾아가 자신의 경력을 설명하고 일할 기회를 얻는 과정이 생생했다. 나도 옛날 호주에 살 때 상점에 무작정 들어가 사람을 구하냐며 묻고 이력서를 주기까지 한참을 망설였던 기억이 난다.
뉴질랜드에서 물을 아끼며 설거지하는 방식이나 공공 화장실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이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이 책이 좋았던 건 저자가 실수하고 뒤늦게 깨닫는 모습들이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 얘기한 문장이 이 책의 전체적인 흐름을 잘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나라에서 겪은 경험들이 쌓여 저자만의 생활 방식과 이야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다만 이 문장만으로는 책의 현실적인 면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중고차 구입과 보험, 구직 과정, 집을 구하는 이야기처럼 해외 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도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출발이 언제나 설레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예상하지 못한 지출이나 낯선 환경에서의 불편함도 함께 따른다.
저자는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정성껏 쌓아온 모래성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익숙한 사람들과 일상을 뒤로하고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신이 모래성을 쌓는 방법을 이미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이번에는 어떤 성을 지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출발을 바라보는 모습이 참 좋았다.
그동안 쌓아온 모래성은 사라질지 몰라도, 그 시간을 보내며 알게 된 것들은 여전히 자신에게 남아 있을 테니까.
책 제목처럼 미래가 불투명해도 괜찮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앞날을 전부 알지 못해도 살아가면서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건,모성을 쌓던 시간까지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인 것 같다.
문득 궁금해진. 저자는 지금 또 어떤 모래성을 쌓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