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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자본 - 인공지능 시대 당신을 위한 마지막 신분이동의 사다리
황유선 지음 / 예미 / 2026년 9월
평점 :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의 언어자본은 얼마나 많은 말을 할 수 있느냐보다 어떤 말을 감당할 수 있느냐에서 나뉘며, 실패와 책임을 경험한 사람이 언어의 결정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뜻에는 찬성이다. 살아보니 말 한마디가 생각보다 오래 남기도 하고, 무심코 한 말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거나 상처가 되기도 한다. 특히 중요한 순간에 내가 한 말은 결국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조금씩 알게 된다.
그런데 실패와 책임이라는 대가를 치러본 사람만이라는 부분에서는 잠시 멈췄다.
꼭 직접 실패해봐야만 깊이 있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주면서 배우는 것도 있고, 내가 겪어보지 못한 아픔을 이해하려 애쓰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경험이 사람의 말을 깊게 만드는 것은 맞지만, 경험의 많고 적음만으로 그 사람의 언어를 판단할 수는 없지 않을까.
어쩌면 내가 잘 말하는 사람보다 잘 들을 줄 아는 사람의 말을 더 믿는 편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경험을 확신 있게 말하는 사람도 좋지만, 내가 틀릴 수도 있어라는 여지를 남기는 사람의 말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다 보니 이 책이 말하는 언어자본도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요즘은 몇 가지 조건만 입력해도 AI가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준다. 나도 막막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매끄러운 표현을 만날 때도 있다.
하지만 AI가 만든 문장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데서 멈추지 말라고 한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넣어 다시 자기 언어로 바꿔야 한다고. 중요하다, 필요하다, 의미 있다처럼 그럴듯하지만 조금은 막연한 표현도 구체적인 상황과 행동으로 바꿔보라고 권한다.
생각해보면 AI가 잘하는 건 그럴듯하게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반면 그 말이 정말 내 생각인지, 그 말을 하고 난 뒤에도 내가 책임질 수 있는지는 내가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언어자본'을 읽고 나서 오히려 말을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 내 말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서툴러도 내가 실제로 겪은 것이 묻어나는 말,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달라졌다면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는 언어, 멋있어 보이지 않더라도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말. 그런 것이 AI 시대에는 오히려 더 귀해질지도 모르겠다.
언어자본이란 화려한 어휘나 능숙한 말솜씨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온 시간과 생각,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태도, 그리고 내가 한 말을 책임지려는 마음.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 순간 그 사람만의 언어가 되는 것 같다.
'언어자본'은 나는 어떤 말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가를 생각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