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 ㅣ 21세기 시선으로 읽는 동양고전
박찬근 지음 / 청년정신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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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그 자리를 아끼는 길” 


한 사람이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 능사가 아니며, 더 잘할 사람이 나타났을 때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는 것 또한 리더의 도리라는 내용이다.


이 말이 조금 불편했다. 현실에서 어떤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을 배우고, 실수하고, 사람들과 부딪치며 경험을 쌓은 끝에 겨우 자기 몫을 해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더 잘할 사람이 나타났다는 이유만으로 선뜻 자리를 내어줄 수 있을까. 오래 쌓은 경험도 분명 가치가 있고, 때로는 자리를 지키며 끝까지 책임지는 것 역시 리더에게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내가 왜 이 문장에서 불편함을 느꼈는지 돌아보았다.


나는 그동안 자리를 노력해서 얻은 결과나 보상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자리는 내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잠시 맡고 있는 책임에 더 가깝다 생각하니 질문도 조금 달라졌다. 내가 이 자리를 얼마나 오래 지킬 것인가보다 이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자리를 넘겨주는 것과 덕으로 넘겨주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후임에게 직함만 넘겨주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쌓아온 신뢰와 경험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 것. 리더가 후계자를 인정하고 권한을 조금씩 이양하는 과정까지 책임의 일부라고 바라보는 시선이 새로웠다. 좋은 리더십은 앞에 서 있을 때뿐 아니라 어떻게 물러나는가에서도 드러날 수 있다.


솔직히 '서경'이라고 하면 처음에는 어렵고 멀게 느껴졌다. 수천 년 전 제왕과 정치에 관한 이야기가 지금 내 삶과 얼마나 관계가 있을까 싶기도.. 그런데 고전의 문장을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말과 행동, 자리와 책임, 권력과 덕, 위기에 대한 대비 같은 익숙한 문제로 풀어낸다. 그래서 어느 순간 옛 군주의 이야기가 직장과 조직, 그리고 내가 맡고 있는 작은 역할에 대한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말은 쉽고, 행함은 어렵다”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현실에서는 그 당연한 것이 가장 어렵다. 좋은 말을 하는 것과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거리가 있다. 리더라면 더 그렇다. 구성원을 위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실제 결정의 순간에 그들의 삶을 먼저 생각하는 일이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좋은 리더라면 정말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줄 수 있을까?


아직도 나는 모든 경우에 그렇다고 답하지 못하겠다. 때로는 물러나는 것보다 남아서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한 가지를 더 생각하게 됐다. 자리를 지키는 것과 자리를 아끼는 것은 어쩌면 전혀 다른 일일 수 있다는 것.


좋은 고전 해설서는 오래된 문장을 쉽게 설명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문장을 읽는 사람의 오늘을 돌아보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그랬다. 3천 년 전의 이야기를 읽었는데 이상하게 지금 내가 속한 조직과 사회, 그리고 내 태도를 생각하게 된다.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거창한 정답이 아니라 흔들릴 때 다시 꺼내볼 질문과 기준이라면, '서경'이 지금 우리 가까이에 있는 고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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