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 공화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나와 내 돈, 내 사람을 지키는 최소한의 법률 지식
임호균 지음 / 모티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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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사기, 온라인 사기, 부당 해고, 스토킹 처벌법, 재산 분할 같은 단어들이 한꺼번에 들어오니, 생활 법률 공포 마케팅 책인가 싶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세상은 위험하니 정신 바짝 차려라 같은 자기방어 매뉴얼 정도로.


경찰서, 변호사 사무실, 노동청, 부동산 등기부등본, 임대차계약서, 카톡 대화, 구글 포토와 아이클라우드, 사직서, 저작권 계약서 같은 현실의 장소와 물건을 예로 보여준다. 법은 조문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심코 누른 저장 버튼과 내가 대충 넘긴 계약서 한 줄 속에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책은 고소를 잘하는 법을 선동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고소 이전의 태도다. 저자는 흥분하지 말라고 말한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해서 SNS에 바로 폭로하지 말고, 거래처에 전화해 이 사람 조심하세요라고 말하지도 말라고 한다. 대신 일지 90건, 회의 녹음 12건, 부서 기록 캡처 50건, 진단서 같은 식으로 자료를 모으라고 말한다. 감정은 사적으로 처리하고, 대응은 기록과 절차로 하라는 것이다.


예상 밖이었던 부분은, 법률 조언이 아주 사소한 생활 습관에서 출발한다는 점이었다. 연인 사이의 사진과 영상 문제를 다룬 대목이 특히 그랬다. 반드시 본인의 휴대폰에만 저장하고, 상대방의 휴대폰에는 저장되지 않도록 하라, 헤어질 때 사진과 영상의 처리를 명확히 정리하라, 클라우드 공유를 절대 하지 말라는 조언은 단순한 법률 팁을 넘어선다. 사랑이 끝나는 순간, 추억은 증거가 되거나 약점이 된다. 카톡 한 줄, 공유 앨범 하나, 아이클라우드 접근권 하나가 나중에는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이 될 수 있다는 말은 섬뜩했다.


권고사직 사례도 인상적이었다. 17년 동안 일한 회사에서 갑자기 사직서를 내면 위로금 3개월치를 주겠다는 말을 들은 사람이 있다. 너무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못 했고, 다음 날 사직서 양식까지 받는다. 여기서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 사직서에 서명하는 순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스스로 포기할 수 있다고. 좀 냉정하게 들리지만, 현실에서는 바로 그 냉정함이 사람을 살린다. 노동청 진정, 증거 수집, 민사소송, 신고자 보호 조항 같은 절차는 감정의 언어가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다.


내 생각에 이 책은 나는 법이랑 딱히 상관없이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필요하다. 법은 특별한 사건이 터졌을 때 갑자기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집을 계약할 때, 회사를 그만둘 때, 연인과 헤어질 때, 동업을 시작할 때, 창작물을 판매할 때 이미 작동하고 있다. 문제는 내가 그 작동 방식을 알고 있느냐, 아니면 일이 터진 뒤에야 알게 되느냐다.


‘고소 공화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선의를 믿더라도, 기록 없는 선의는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 점에서 차갑지만 정직하다. 읽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는 책은 아니다. 대신 계약서 한 줄, 카톡 한 문장, 등기부 한 장을 예전보다 조금 다르게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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