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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숲을 지나 나를 만나다 - 삶의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
천하이센 지음, 하은지 옮김 / 알토북스 / 2026년 6월
평점 :
자기계발서는 대개 답을 먼저 내놓는다. 이렇게 하면 된다는 공식을 제시하고, 그 공식을 자신의 삶에 대입한다. 그런데 '검은 숲을 지나 나를 만나다'는 조금 다른 길을 택한다. 인생의 전환기를 검은 숲이라는 은유로 설명하면서, 그 숲을 통과하는 사람들의 상담 사례를 쌓아 올린다. 심리학 이론을 설명하는 책이라기보다 상담실에서 들은 이야기를 따라가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남편과의 관계를 붙들고 있던 한 여성이 상담자에게 결혼 생활을 이어가려면 무엇을 바꿔야 할까요? 라고 묻는다. 그런데 상담자는 의외의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지금 남느냐 떠나느냐 사이에서 선택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인정하느냐 부정하느냐 사이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결국 그녀는 현실을 인정할게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묻는다. 남편의 대답은 짧고 차갑다.
"나는 돌아올 수 없어. 우리 사이는 진작부터 가망이 없었어."
이 장면을 읽는데, 묘하게 조앤 디디온의 마법 같은 사고가 떠올랐다. 상실 앞에서 인간은 사실보다 희망을 붙드는 존재라는 점에서 닮아 있기 때문에.. 이 책이 특별했던 건 희망을 버리라고 말해서가 아니라, 현실을 인정하는 순간이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감상적으로 포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담자는 위로보다 현실을 건넨다. 그래서 오히려 더 아팠고, 더 설득력이 있었다.
이 책은 최근 유행하는 자기계발서들과는 결이 다르다. 이를테면 제임스 클리어의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 행동의 기술을 말한다면, 이 책은 행동 이전에 도대체 나는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가를 묻는다. 또 브레네 브라운이 취약성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이야기한다면, 천하이센은 상실과 혼란을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방법론보다 존재론에 가까운 접근이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책이 제시하는 여정은 지나치게 정돈돼 있다. 실제 삶은 몇 번이고 원점으로 돌아가고, 어떤 사람은 1단계와 3단계를 오가며 몇 년을 보내기도 한다. 그래서 이 모델을 삶의 정답이라기보다 방향을 잡기 위한 지도 정도로 읽는 편이 더 적절해 보인다.
그래도 책장을 덮고 나니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여러 단계의 도식이 아니었다. 상담실에서 어렵게 현실을 인정할게요.라고 말하던 사람의 표정이었다. '검은 숲을 지나 나를 만나다'의 감정적 설득력은 심리학 이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검은 숲 한가운데서도 한 걸음을 떼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나온다.
쓰다 보니 문득 생각났다. 좋은 자기계발서는 정답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질문을 바꾸게 만드는 책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적어도 그 점에서는 성공했다. 오히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부터 읽기가 시작되는 책 같았다. 읽히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