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 필사 나는 쓴다 - 시니어를 위한 하루 10분 마음정리 예쁜글씨 교정! ㅣ 나는 쓴다
김소월 지음 / 비타민북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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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쓴다'는 제목보다도 시니어를 위한 하루 10분 마음정리 예쁜글씨 교정이라는 부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처음에는 대형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필사 교재, 혹은 두뇌 훈련용 노트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했다. 좋은 문장을 따라 쓰면서 글씨를 다듬고 집중력을 기르는 실용서 정도?


기대도 그 정도였다. 하루 10분 정도 마음을 가라앉히며 몇 문장 베껴 쓰고 끝내는 책.


그런데 이 책은 필사책이지만, 생각보다 훨씬 시집에 가까운 필사책이다.


특히 수록 작품의 무게감이 예상 밖이었다. 김소월의 '비단안개', '새벽', '산', '부귀공명' 같은 작품들이 이어지는데, 단순히 좋은 문장을 모아놓은 수준이 아니라 한국 근대시의 정서를 손으로 다시 읽게 만든다.


요즘은 시를 읽어도 대개 눈으로만 훑고 지나간다. 그런데 필사는 다르다. 한 글자 한 글자를 따라 적는 동안 시의 리듬과 숨결이 몸 안으로 천천히 들어온다. 읽을 때는 지나쳤던 단어가 손끝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 같은 기분.


필사하면 가장 눈에 들어온 부분은 김소월의 시에 나오는 다음 문장이었다.


"그래도 우리 남어 있는 날은

언제나 새 가슴이 젖어 있지요."


처음엔 그저 아름다운 문장이라고 생각 했는데 직접 써 보니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어진 사람에게도, 혹은 상실과 실패를 겪은 사람에게도 삶은 여전히 젖어 있는 감정의 가능성을 남겨둔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특히 남어 있는 날이라는 표현이 좋았다. 김소월 특유의 구어적 정서가 더 깊게 남았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이 부분이었다.


"그래도 우리 남어 있는 날은

해마다 새꽃을 피게 들지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결국 상실의 존재지만, 동시에 회복의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 무언가를 잃고 또 잃어도 계절이 바뀌면 꽃이 피듯 삶 역시 다시 시작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 책은 글씨보다 더 크게 남은 것이 읽는 속도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우리는 스마트폰 화면에서 하루에도 수백 개의 문장을 소비한다. 하지만 필사는 소비가 아니라 체류다. 문장 안에 머무는 일이다.


특히 김소월의 '비단안개'를 따라 쓰면서는 한국어가 가진 음악성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대학 시절 국문학 강의에서 읽었던 김소월과, 손으로 옮겨 적으며 만난 김소월은 전혀 다른 시인이었다.


이 책은 단순한 글씨 교정책이 아니다. 오히려 디지털 시대에 잃어버린 느린 독서의 감각을 복원하는 장치 같았다. 손으로 문장을 옮겨 적는 행위가 단순한 필기를 넘어 사유의 과정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웠던 것은 필사가 기억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써 보니 알겠더라. 필사는 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장 안에서 천천히 살아 보기 위해 하는 일이라는걸.


글씨를 고치려고 시작했는데, 결국은 김소월을 다시 읽게 되었고, 더 나아가 내가 문장을 읽는 방식 자체를 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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