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지면 꽃이 되리 - 배형균 두 번째 시집
배형균 지음 / 하움출판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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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 시를 읽다 보면 의미는 숨기고 이미지는 증식시키며, 읽는 사람에게 해석의 몫을 남겨두는 작품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 시집은 정반대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교훈을 피하지 않으며, 하고 싶은 말을 비교적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예를 들어 '계단의 교훈'은 제목부터 메시지가 분명하다. 엘리베이터 성공보다 / 한 계단씩 오르는 계단의 성공이 / 참진리라는 구절은 상징과 암시보다 삶의 태도를 내세운다. '좋은 아침'에서는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감사가 꾸밈없이 드러나고, '고구마'에서는 농부의 노동과 결실이 삶의 윤리로 연결된다. 처음에는 솔직히 조금 어색했다. 시를 읽는다기보다 동네 문학회에서 만난 선배의 이야기를 듣는 느낌 같아서..


하지만 '아버지'를 읽으며 시집이 품고 있는 정서의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건설 현장 다리 밑에서 가마니를 깔고 잠을 청하며 여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아버지의 모습은 화려한 비유 없이도 묵직하게 다가온다. 특히 지구보다 무거운 책임감으로라는 표현에는 산업화 시대를 통과한 한국의 아버지 세대가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언어의 새로움이 아니라 기억의 진정성이다.


그 이후에는 처음의 낯섦이 점차 익숙함으로 바뀌었다. 교훈처럼 보였던 문장들은 사실 시인이 살아온 삶의 방식이었고, 직설적인 감정 표현은 문학적 미숙함이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 같았다. '영등포 쪽방촌에 별이 들었다'에서 드러나는 서민 공동체에 대한 애정, '세월'에서 느껴지는 노년과 상실의 감각, '회상'에 흐르는 지나간 사랑의 그림자는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그것은 결국 사람에 대한 신뢰와 그리움이다.


이 시집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그 부분에 있다. 서울 영등포 쪽방촌, 건설 현장, 선산 산자락, 농부의 밭고랑 같은 구체적인 장소들이 등장할 때 시는 추상적인 감상을 넘어 한 시대의 생활사를 품게 된다. 배형균 시인의 시는 거대한 담론보다 생활의 현장을 본다. 그래서 읽다 보면 한 사람의 생애를 따라 걷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리워지면 꽃이 되리'는 호감이 남는 시집이다. 읽고 난 뒤 기억에 남는 것은 개별 문장의 기교가 아니라 사람 냄새 나는 풍경들이다. 아버지의 굽은 허리, 지팡이를 짚고 골목에 나선 노인들, 저녁상을 차려 놓은 아내, 수확철 농부의 검게 그을린 얼굴 같은 장면들 말이다. 어쩌면 이 시집의 꽃은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그런 기억들 속에서 피어난다.


처음에는 교훈적이라 낯설었지만, 끝내는 그 교훈마저도 한 사람의 삶에서 우러난 체온처럼 읽혔다. 그리움이 꽃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래 살아낸 삶 자체가 이미 꽃이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해야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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