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나에게 까다로운가
장기표 지음 / 하움출판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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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머문 질문은 하나였다.


“나는 정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아니면 불안해서 나를 그냥 두지 못하는 걸까.”


장기표의 '나는 왜 나에게 까다로운가'는 이 질문을 조용히 건드린다. 책상 위에 식은 스타벅스 아메리카노가 놓여 있고, 카카오톡 알림은 계속 울리고, 밤 11시의 GS25 불빛이 창밖에 켜져 있는 시간. 그때도 나는 묘하게 나 자신을 심문한다. 오늘 충분히 했나. 나는 왜 이것밖에 못 했나. 남들은 다 괜찮아 보이는데, 왜 나만 이렇게 흔들리나.


이 책은 그 흔들림을 실패라고 부르지 않는다. 3장 우리는 왜 확신 앞에서 흔들리는가에서 저자는 흔들리는 마음을 나약함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 쪽으로 옮겨 놓는다. 그 문장이 좋았다. 사람은 확신이 없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느끼기 때문에 흔들리기도 한다. 잃을 것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주저하기도 한다.


책은 대단한 철학 체계를 세우기보다, 일상에서 자주 지나치는 감정을 붙잡는다. 회사 메신저의 답장, 가족에게 다정하지 못했던 저녁, 인스타그램 속 멀쩡해 보이는 타인의 삶, 주말에 혼자 밥을 먹을 때 드는 설명 불가능한 죄책감. 그런 장면들 속에서 이 책은 묻는다. 이건 정말 내 책임인가.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책임에 관한 장이었다. 책임이 경계를 잃는 순간 사람을 잠식한다는 말은 오래 남는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누군가 힘들어하면 내가 나서야 할 것 같아서 자꾸 자기 몫 이상을 떠안는 사람들에게 이 문장은 정확하게 꽂힌다. 착함이 인격이 아니라 습관이 될 때,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잃는다.


나를 설득하려 들기보다 옆에 앉는다. 한강 산책길, 지하철 2호선 막차, 병원 대기실, 퇴근 후 불 꺼진 방 같은 곳에서 읽히는 문장들이다. 괜찮아라고 쉽게 말하지 않고, 괜찮지 않아도 아직 끝난 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쪽에 가깝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이 책은 왜 우리가 이렇게까지 자기 자신에게 가혹해졌는지, 그 사회적 구조를 깊게 파고들지는 않는다. 성과주의, 플랫폼 노동, 자기계발 산업, SNS 비교 문화 같은 문제를 본격적으로 분석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사유의 깊이를 기대하면 다소 얕게 느껴질 수 있다. 몇몇 문장은 좋은 말의 반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의 미덕은 바로 그 단순함에 있다. '나는 왜 나에게 까다로운가'는 혁명적으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 대신 오늘 밤만큼은 자신을 조금 덜 몰아붙이라고 말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전에, 이미 여기까지 온 나를 인정해보라고 말한다.


나는 나를 너무 자주 심사위원처럼 대했다.

이 책은 그 자리에 친구 하나를 앉혀보라고 권한다. 엄격한 채점자가 아니라, 늦은 밤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에 같이 앉아 그래도 오늘은 여기까지 왔잖아라고 말해주는 사람.


그 정도의 위로라면, 충분히 사람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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