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든 흔들리는 눈망울 위에 ㅣ 걷는사람 시인선 148
김주대 지음 / 걷는사람 / 2026년 3월
평점 :
이 시집은 페이지 수도 부담 없고, 문장도 어렵지 않다. 그래서 가볍게 읽히는 시집인가? 싶다가, 중간쯤 지나면 그 판단이 좀 흔들린다. 읽는 속도는 빠른데, 이상하게 몇몇 장면이 계속 남는다.
대화체 중심의 시들은 거의 호흡이 일정하다.
말이 이어지는 방식이 자연스럽고, 군더더기가 없다.
설명 없이 시작하고, 설명 없이 끝난다.
굳이 해석하지 않고 그냥 따라가면 된다.
상황은 익숙하고
감정은 직설적이고
문장은 짧다
근데 여기서 한 가지 미묘한 지점이 있다.
이렇게 잘 읽히는 부분일수록, 오히려 기억에 덜 남는다는 것.
읽을 때는 공감하면서 쭉 지나가는데,
나중에 다시 떠올리면 구체적인 문장보다는 분위기만 남는다.
이게 의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일상에서 감정을 얼마나 쉽게 소비하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느낌이다.
속도가 느려지는 지점은 '때'와 '꽝' 같은 시들.
여기서는 문장이 갑자기 어려워지지 않는다.
근데 그 담담함 안에 들어 있는 게 다르다.
「때」
사라진 존재
늦게 알아차리는 상황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이런 것들이 노골적으로 설명되지 않고,
그냥 배경처럼 깔려 있다.
「꽝」은 또 다른 방식으로 속도를 늦춘다.
여기서는 개인의 감정이 사회적인 조건이랑 붙는다.
가난, 체면, 선택 같은 것들.
이게 설교처럼 나오지 않는다.
그냥 상황 속에 스며 있다.
이 시집을 다 읽고 나면, 속도의 차이가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빠른 시와 느린 시가 번갈아 나오면서,
리듬을 계속 바꿔 놓는다.
하나는 그냥 읽는 상태,
다른 하나는 생각하게 되는 상태.
이 구조가 교묘하다.
왜냐면 우리는 보통
읽기 편한 텍스트를 더 좋아하고, 더 빨리 소비한다.
근데 이 시집은 그 습관을 이용해서
중요한 부분에서 일부러 속도를 늦춘다.
약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지나칠 수 있는 건 일부러 지나치게 두고,
지나치면 안 되는 건 걸리게 만든다.
재밌는 건, 다 읽고 나면 기억의 분포가 불균형하다.
빠르게 읽힌 시들은 흐릿하게 남고,
느리게 읽힌 시들.. 특히 '때'와 '꽝' 등은 또렷하다.
이건 단순한 취향 문제가 아니라,
읽는 과정에서 이미 그렇게 설계된 결과에 가깝다.
이 시집은
어떤 문장이 좋은가보다
어디에서 멈추는가를 더 중요하게 만든다.
'모든 흔들리는 눈망울 위에'는 읽기 쉬운 시집이다.
근데 그 쉬움이 끝까지 유지되진 않는다.
빠르게 읽히는 부분은 입구고,
느려지는 지점이 핵심이다.
그리고 그 느려짐은 단순한 난해함이 아니라,
감정과 현실이 겹치는 순간에서 발생하는 저항이다.
그래서 이 시집은 결국
읽는 속도를 통해 책을 읽는 사람의 태도를 드러내는 책이다.
어디서 멈췄는지를 보면,
내가 무엇에 반응했는지도 같이 드러난다.
이 점에서 영리한 시집이다.
그리고 약간, 다시 펼치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