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양고전으로 배우는 성찰의 인문학
정형권 지음 / 렛츠북 / 2026년 3월
평점 :
책을 읽는 내내 흥미로웠던 건, 어떤 특정한 이야기를 따라가는 책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줄거리랄 것도 거의 없고, 대신 여러 고전의 문장들이 툭툭 던져진다. 그런데 그게 묘하게 지금 내 상태랑 맞물리면서 읽히니까, 단순한 인용이 아니라 거의 질문처럼 느껴졌다. 특히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마주해야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할 수 있다는 식의 흐름은,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는 얘기인데도 좀 다르게 와닿았다.
그중에서도 낳았으되 소유하지 않고 / 이루어도 거기에 기대지 않고 / 길러주고도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 이 문장.
처음엔 그냥 좋은 말이네 하고 넘기려다가, 다시 읽고, 또 다시 읽게 됐다. 이게 단순히 이상적인 태도를 말하는 게 아니라, 내가 평소에 얼마나 반대로 살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문장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뭔가를 이루면 거기에 기대고 싶고, 그걸 기반으로 더 인정받고 싶고, 관계에서도 내가 투자한 만큼은 돌려받고 싶고.. 이런 감각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문제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는데, 이 문장을 보니까 그 자연스러움 자체가 조금 흔들렸다.
특히 이루어도 거기에 기대지 않는다는 구절에서 오래 생각에 잠겼다.
단순히 겸손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성취를 발판이 아니라 집착의 근거로 바꾸지 말라는 얘기처럼 들렸다. 근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거의 반대로 배우지 않나. 계속 쌓고, 계속 이어가고, 계속 확장하는 것. 그게 성장이라고 믿으니까. 그래서 더 낯설었고, 그래서 더 오래 남았다.
이 책의 장점은 바로 이런 식의 작동 방식이다. 설명은 과하게 밀어붙이지 않고, 고전 문장을 중심에 두고 약간의 해설만 붙인다. 그래서 자기 상황을 거기에 끼워 넣게 만든다. 이게 강력하다. 누가 직접적으로 이렇게 살아라라고 말하면 반감이 생기는데, 여기서는 그냥 문장 하나 던져놓고 물러나 있으니까, 오히려 내가 스스로 끌려들어가는 느낌이다.
또 하나, 유가,도가,불가를 하나의 연속선상에서 다루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보통은 이걸 각각 다른 사상으로 배우는데, 이 책에서는 그냥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 하나로 묶어버린다. 예를 들어 무위(無爲)의 태도, 무주심(無住心), 그리고 유가의 중(中)과 성(誠) 같은 개념들이 따로 놀지 않고, 하나의 마음 다루기 문제로 연결된다. 이게 생각보다 설득력이 있다. 이론적으로 깊게 파고든다기보다는, 실제 삶의 태도로 번역하는 데 집중한 느낌.
특히 돌아갈 곳이 없구나라는 구절이 나오는 대목도 기억에 남는다. 이건 단순한 허무가 아니라, 기존의 기준이나 기대에 더 이상 기대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처럼 이해했다. 약간 불안하면서도, 동시에 묘하게 가벼운 상태. 그런 감각이 요즘 내 상태랑도 겹쳐서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결국 이 책은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것들을 다시 낯설게 만든다. 그래서 문장들이 머릿속에 남아서 계속 변형되고,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로 다시 떠오른다.
그래서 이걸 한 번 읽고 끝낼 책인지, 아니면 간격을 두고 다시 펼쳐봐야 하는 책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그날 이후로 뭔가를 이루거나 관계를 맺을 때 아주 미세하게나마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긴 했다. 그게 변화라고 부를 수 있는 건지는 아직은 좀 애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