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의 버릇
신모래 지음 / 든해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영원히 만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날까 봐 나는 혼자 깨어난 거야.라는 대목이다. 처음엔 그냥 쓸쓸한 문장이라고 생각했는데 곱씹을수록 방향이 좀 이상하다. 보통은 헤어질까 봐 무서워서 피하거나 붙잡는데, 여기서는 너무 좋아질까 봐 먼저 거리를 둔다. 이건 감정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그 감정이 남기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 같다. 관계 자체보다, 그 관계가 끝난 뒤에도 계속 남아버릴 잔상. 그게 더 무서운 거다.


이 감정이 생각보다 낯설지 않다. 사람을 좋아하는 일보다, 그 사람이 내 안에 남아버리는 게 더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는 거. 이걸 이렇게 건조하게, 설명 없이 던져버리는 게 좀 세게 와닿았다. 괜히 과장하거나 감정을 부풀리지 않아서 더 현실적이다.


이 책의 장점은 확실히 그 비워둠에 있다. 문장이 짧고 단순한데, 그 단순함이 설명 부족이 아니라 의도된 공백처럼 느껴진다. 나의 경험을 끼워넣을 수 있는 구조. 그래서 같은 문장을 읽어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한테는 어떤 기억이 떠올랐고, 다른 사람은 전혀 다른 장면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


또 인상 깊었던 건, 꿈 이야기 나오는 부분. 이제는 볼 수 없는 친구가 꿈에 나오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이젠 다 싫다고 말하고 떠나는 장면. 이게 되게 이상하다. 보통 꿈속 재회는 위로나 회복 쪽으로 가는데, 여기서는 오히려 단절을 더 분명하게 만든다. 심지어 꿈인데도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다. 이건 좀 잔인한데, 동시에 되게 솔직하다. 현실에서 끝난 관계는, 꿈에서도 완전히 복구되지 않는다는 식의 태도. 이게 이 책 전체의 정조랑 이어진다.


근데 솔직히 아쉬운 점도 있다. 감정의 톤이 너무 일정하다. 계속 잔잔하게 유지되는데, 그게 어느 순간부터는 약간 단조롭게 느껴진다. 큰 파형 없이 계속 같은 높이의 파동만 반복되는 느낌. 그래서 중간중간 집중이 흐트러지기도 했다. 특히 비슷한 문장 구조가 이어질 때는, 읽으면서 살짝 멍해지는 구간도 있었고.


그래도 분명한 건, 이 책은 읽는 타이밍을 많이 탄다는 거다. 낮에, 밝은 데서, 집중해서 읽으면 지금처럼 남았을까 싶다. 오히려 이렇게 애매하게 지쳐 있고, 생각이 정리 안 된 상태에서 읽었기 때문에 더 깊게 들어온 것 같다. 그래서 내용보다도, 읽었던 상태랑 같이 기억될 것 같다.


다 읽고 나서도 바로 잠이 오진 않았다. 몇 문장이 계속 머릿속에서 반복됐다. 그렇다고 감정이 정리된 건 아니고, 오히려 더 흐릿해진 느낌? 근데 그게 나쁘진 않았다. 그냥…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남겨두는 것도 하나의 방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좋은 책인지 아닌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근데 적어도, 어떤 밤에는 다시 꺼내보게 될 것 같긴 하고, 또 어떤 밤에는 전혀 손이 안 갈 수도 있겠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