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료시카 꺼내기 상상 동시집 39
송선미 지음, 문지나 그림 / 상상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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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를 처음 봤을 때, 작고 단정한 동시집, 부드러운 색연필 질감의 그림, 마트료시카라는 제목이 아마도 따뜻하고 귀여운 이야기들이 들어 있겠지,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만한 책이겠지 하는 정도의 기대였다. 마음이 피곤한 날에 가볍게 넘기기 좋은 책일 것 같았다.


그런데 몇 편을 지나가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이 책의 시들은 귀엽다기보다 조용하다. 그리고 그 조용함 속에 오래 남는 감정이 있다.


'닫힌 문’이라는 시에서는 꿈속에서 계속 문을 여는 장면이 반복된다. 문 안에 또 문이 있고, 그 문을 다시 열면 또 다른 문이 있는 식이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라고 부르자 정말 엄마가 나타나고 둘이 함께 꿈의 문을 열어버린다. 그 뒤로는 더 이상 그 꿈이 나타나지 않는다. 읽고 나면 아주 간단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불안한 마음이나 혼자서는 열리지 않는 어떤 세계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또 다른 시에서는 무지개가 약속을 지켜 하얀 자루 하나를 주는데, 그 안에 들어 있는 무지개 그림자 사과를 아무리 꺼내 먹어도 자루가 줄지 않는다. 어린이의 상상력 같은 장면인데, 읽다 보면 기억이나 위로 같은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어떤 감정은 쓰면 쓸수록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계속 남아 있다는 식으로.


이 책은 작고 단순한 언어로 마음의 구조를 살짝 보여준다. 말이 어렵지 않아서 쉽게 읽히지만, 몇 구절은 이상하게 머릿속에서 오래 맴돈다.


마지막 페이지의 그림을 잠깐 더 보고 책을 가방에 넣었다.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이 책도 안에 또 다른 감정이 하나 더 들어 있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다가, 천천히 열어볼수록 하나씩 나타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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