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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 마음을 지키는 습관, 한 문장 붙잡기
충희 지음 / 여린풀 / 2026년 2월
평점 :
처음엔 반쯤은 경계하는 마음으로 봤다. 명언을 엮은 책, 다짐을 권하는 문장들, 분홍색으로 덧칠된 표지 디자인. 이런 책은 몇 쪽 넘기다 내려놓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은 이상하게도 끝까지 읽혔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 책은 한 문장을 붙잡게 만들었다. 화려한 이론 대신, 문장 하나를 삶에 대입해 보게 하는 방식이었다.
책은 익숙한 인물들의 말을 가져온다. 나폴레옹의 불가능에 대한 선언, 페르디낭 포슈의 낙관주의, 윌리엄 글래드스턴의 실수에 대한 통찰.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문장들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문장들을 소비하지 않는다. 그리고 돌려준다. 당신의 사전에는 어떤 단어가 들어 있는가, 당신은 무엇을 불가능이라 부르는가. 문장을 읽는 동시에 스스로의 언어 습관을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나를 끝까지 읽게 만든 문장은 이것이었다.
멀리 있는 희망보다 눈앞의 뚜렷함에 집중하라.
미래를 향한 거대한 구호 대신, 지금 손에 잡히는 한 걸음에 집중하라는 말. 흔한 조언처럼 들리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쓴 에너지라는 표현이 정확했다. 불안이 미래 때문이 아니라 상상에 대한 과잉 투자라는 사실을, 그 문장이 또렷하게 보여준다. 그 지점에서 나는 이 책을 한 문장씩 붙잡으며 따라가고 있었다. 막연한 다짐이 아니라 구체적인 태도의 전환으로.
실수에 대한 해석도 인상적이었다. 보통 실수는 성취의 반대편에 놓인다. 그러나 이 책은 실수를 인격의 성숙과 연결한다. 실수를 겪은 사람만이 타인의 실수에 쉽게 돌을 던지지 않는다는 관점. 실패를 극복의 서사로 포장하기보다, 사람을 부드럽게 만드는 과정으로 보는 시선. 이 미묘한 전환이 이 책을 계속 넘기게 했다. 실수를 지워야 할 오점이 아니라, 인격을 단련하는 시간으로 바라보게 한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어둠을 다루는 방식이다. 어둠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내 안의 별을 드러내는 캔버스라고 말한다. 고난을 낭만화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삶의 배경으로 재배치한다. 어둠이 없다면 별을 인식할 수 없다는 역설. 이 재배치가 이 책의 핵심이다. 위로에 머무르지 않고, 상황을 해석하는 틀을 바꾸어 준다는 점에서 힘이 있었다.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은 강해지라고 소리치는 대신 묻는다. 어떤 문장을 붙잡고 살 것인가. 삶이 흔들릴 때, 모든 답을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다만 무너지지 않게 해 줄 한 문장, 스스로 허락하지 않는 한 주저앉지 않게 할 한 문장을 고르라고 말한다. 그 선택이 반복될 때 태도가 되고, 태도가 결국 삶의 방향을 만든다는 메시지가 은근히 스며든다.
책을 덮고 나서 나는 몇 줄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공책에 한 문장을 옮겨 적었다. 아마도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한 힘은 거기에 있다. 타인의 문장이 잠시 나의 문장이 되는 순간. 읽는 행위가 곧 선택의 행위가 되는 경험. 그 조용한 변환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나를 데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