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좋은 동시 2025
안도현 외 엮음, 손미현 그림 / 상상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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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동안,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 한 번 더 숨을 고르게 되고, 시를 다 읽고 나서도 바로 다음 장으로 가지 않게 됐다. 글이 어렵거나 무거워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 조금 더 있고 싶어서였다.


'올해의 좋은 동시 2025'는 조용한 책이다. 크게 웃기지도 않고, 눈에 띄는 말을 하지도 않는다. 대신 아주 작은 장면들을 내어놓는다. 손이 움직이는 모습, 밥을 먹는 시간, 가만히 서 있는 나무, 아무 말 없이 지나가는 오후 같은 것들. 그런 장면들이 시 속에서 특별해지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마음에 남는다.


이 책의 시들은 아이에게 다가갈 때 조심스럽다. 무언가를 알려 주려 들지 않고 먼저 손을 잡으려 하지도 않는다. 아이가 이미 보고 있고 이미 느끼고 있다는 걸 믿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믿음이 문장 사이사이에 깔려 있다. 읽는 동안 이건 아이를 위해 쉽게 만든 말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그림도 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다. 시를 설명하지 않고 감정을 대신 말해 주지도 않는다.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시간을 건너는 것처럼. 그래서 어떤 날에는 그림을 먼저 오래 보고, 어떤 날에는 시를 여러 번 다시 읽게 된다. 그 순서가 매번 달라도 괜찮다.


아이에게 읽어 주다가 문득 멈춘 적이 있다. 더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굳이 말을 붙이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였다. 아이는 그림을 보고 있었고, 나는 시를 다시 읽고 있었다. 같은 페이지를 펼친 채,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시간이 참 드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읽고 나서 무언가를 남기기보다, 조금 덜어낸 상태를 남긴다. 설명해야 할 말이 줄어들고, 서두를 필요가 없어진다.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그런 시간을 허락하는 책이다.


다 읽고 나서 책을 덮었을 때, 마음이 환해졌다기보다는 낮아졌다. 차분해졌고, 조용해졌다. 그래서 좋았다. 오래 곁에 두고, 가끔 아무 이유 없이 다시 펼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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