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소녀 상상 고래 27
차율이 지음, 도밍 그림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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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소녀'는 처음엔 조용하고 예쁜 분위기의 이야기처럼 보였다. 표지 그림도 그렇고, 머리에 꽃이 핀 아이들이 등장하는 설정도 그렇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처음 몇 장을 읽을 때는 감상적인 동화쯤으로 생각했다. 아이들이 겪는 상처를 환상으로 풀어내는 이야기겠구나, 하고 어느 정도 예측한 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읽을수록 이 책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환상적인 장면들이 많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전혀 가볍지 않다. 아이들이 겪는 외로움, 두려움, 어른들에게서 반복해서 느끼는 실망감 같은 것들이 환상의 형태로 드러나는데, 오히려 그래서 더 또렷하게 다가왔다.


환상이 꼭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한 장치는 아니라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새롭게 느낀 점이다. '투명한 소녀'에서 환상은 아이들이 겪은 일을 예쁘게 포장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과 상황을 다른 모습으로 보여준다. 머리에 꽃이 피는 설정이나 몸이 변해 가는 장면들은 성장의 은유라기보다는, 아이가 감당해야 했던 감정의 무게처럼 느껴졌다. 그 변화가 아름답게 그려질수록, 그만큼 그 아이가 얼마나 혼자 버텨왔는지도 더 분명해졌다.


읽으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것도 많았다. 특히 너를 위해서라는 말이 반복해서 떠올랐다. 어른들이 아이에게 건네는 말이지만, 그 말이 항상 아이를 보호해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이 책에서는 여러 장면을 통해 드러난다. 누군가는 진심으로 아이를 걱정하지만, 그 방식이 아이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은 어른을 악당으로 만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이해해 주지도 않는다. 그 애매한 거리감이 오히려 현실과 닮아 있어서 더 마음에 남았다.


이야기를 읽다 보니, 이 책을 성장 이야기로만 보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 문제를 극복하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아이가 끝내 이해받지 못한 채 다른 존재가 되어 가는 기록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그래서 읽는 동안 마음이 자주 불편해졌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이 책을 계속 붙잡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난 뒤에도 변하지 않은 생각이 있다면 나는 이런 이야기가 여전히 필요하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이 책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도 않고, 희망적인 결말만을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조용히 남긴다. 누군가의 아픔이 사소한 성장 과정으로 정리되지 않도록, 쉽게 잊히지 않도록 말이다.


'투명한 소녀'는 다 읽고 나서 바로 마음이 정리되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조금 지나야 장면들이 다시 떠오르고, 그때마다 다른 감정이 올라온다. 읽는 동안보다 읽고 난 뒤에 더 오래 생각하게 되는 책이었다. 예쁘지만 가볍지 않고,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남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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